‘최초’ ‘유일’ 타이틀 추가하고 있는 시흥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3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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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국내 유일 ‘에코뮤지엄’ 사업 운영 중

시흥시의 옥구공원은 ‘경기정원문화박람회’의 첫 번째 개최지였다. 경기도가 2010년부터 열고 있는 ‘경기정원문화박람회’는 서울보다도 먼저 시도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 참여형 공원프로젝트다.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지만, 옥구공원에서는 여전히 정원박람회의 성과들을 볼 수 있다. 흔한 근린공원 같아 보이는 이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남한 최대의 염전이 있었고 신사 터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사연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랬던 곳이 시민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정원박람회 문화를 선도하게 된 것이다.

시흥시에는 옥구공원 외에도 인상적인 녹지공간들이 많다. 갯골생태공원과 곰솔누리숲이 대표적이다. 시흥시의 지역 스토리가 잘 녹아 있는 이 장소들은 경기만 에코뮤지엄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시흥시를 넘어 경기만 지역 전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갯골생태공원의 흔들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 1934년 조성된 소래염전이 폐염한 후 10년 간 방치되어 있다가 2014년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김지나
갯골생태공원의 흔들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 1934년 조성된 소래염전이 폐염한 후 10년 간 방치되어 있다가 2014년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김지나

뉴욕 센트럴파크 연상시키는 곰솔누리숲

2016년부터 시작된 경기만 에코뮤지엄은 우리나라에서 에코뮤지엄 사업을 명시적으로 하고 있는 유일한 사례다. 에코뮤지엄이 무엇인지 간단명료하게 정의내리긴 어렵지만, ‘지역사회가 컬렉션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형태의 박물관’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전통적인 박물관처럼 한 건물 안에 유물들을 모아 전시하는 방식이 아니다보니, 포인트가 되는 장소가 필요했다. 그렇게 경기만 일대에서 6개의 ‘거점센터’가 선정됐다. 시흥시에서는 옛 소래염전의 소금창고가 있는 갯골생태공원과 곰솔누리숲이 거점센터로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지역에서 특별한 장소란 의미다. 갯골생태공원 주변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내만 갯벌이 있다. 내만 갯벌은 내륙 안쪽에 만들어진 갯벌이란 뜻인데, 내만 갯골이라고도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일대에 염전이 조성돼있었다. 그 시절의 소금창고와 염전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어 독특한 정취를 풍긴다. 옛 소금창고와 염전에 대한 역사적 기억이 이 장소의 생태적 가치와 어우러져 더 역동적인 감흥을 일으켰다. 진짜 소금창고는 단 두 채밖에 없지만, 오리지널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갯골생태공원이 이만한 아우라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공원으로 재탄생되기 전, 40채의 소금창고 중 38채가 문화재 등록을 코앞에 두고 땅 소유주에 의해 기습 철거된 사실이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곰솔누리숲은 시화공단의 완충녹지로 만들어졌다. 작년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세먼지 저감 효과가 입증되기도 했다. 본래 ‘시흥중앙완충녹지’란 건조한 이름이었으나, 경기만 에코뮤지엄 사업을 통해 ‘곰솔누리숲’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됐다. ‘곰솔’은 지금 이 숲을 울창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해송(海松)의 순 우리말이다. 시화간척지 위에 세워진 도시인만큼, 바닷가 지역이었다는 옛 자취를 상기시키기기도 한다. 곰솔누리숲은 면적이 20만 평을 넘어 마치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연상시킬 정도로 압도적인 그린스페이스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옥구공원에서 이어지는 구조라, 탁 트인 녹지와 울창한 숲을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공원도시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시흥시에서 떠올리기 쉬운 ‘시화공단’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었다.

곰솔누리숲은 시화산업단지에서 주거단지로 오염물질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1996년 조성된 완충녹지로, '곰솔'은 해송(海松), '누리'는 세상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김지나
곰솔누리숲은 시화산업단지에서 주거단지로 오염물질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1996년 조성된 완충녹지로, '곰솔'은 해송(海松), '누리'는 세상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김지나

‘시흥은 어떤 도시’ 이미지 더 각인시켜야

앞으로도 이 도시에서는 새로운 변화들이 다양하게 일어날 예정이다.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이슈가 한동안 뜨거운 감자였고, 최근에는 해양수산부의 2020년 해양레저관광 거점 조성사업 대상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흥시는 평균연령 38세 이하의 젊은 도시다. 대학도시, 해양관광도시란 타이틀은 시흥시의 이런 성격과 맞물려 창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기에 고무적이다.

이렇듯 굵직굵직한 도시 이슈들이 시흥시를 무대로 펼쳐져 오고 있다. ‘최초의’, ‘유일한’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자원들이 적지 않다. 역사적으로, 또 생태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들도 많다. 그럼에도 시흥시의 도시 브랜드는 여전히 애매한 수준이다. 이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도시의 생활권이 여러 개로 분리돼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도시의 문화적 중심이 없다는 뜻이다.

서해안의 생태환경, 젊은 친환경 도시, 스마트캠퍼스 등, 미래적인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도입하고자 하는 노력은 좋다. 하지만 뚜렷하고 개성적인 비전 아래 프로젝트들을 통합해 도시 브랜드로 승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시흥시가 어떤 도시다’라는 이미지가 시민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공감하는 도시 비전이 뒷받침됐을 때, 시흥시의 도전들은 좀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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