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 극복 위해 등장한 ‘포케팅’과 ‘오케팅’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4.05 10:00
  • 호수 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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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대신 팔아주기’로 지역 농수산물 판매 대박…품질 보장·유통망 구축 등 남은 과제도

강원도 감자 10kg을 택배비 없이 5000원에 판매한다는 강원마트 사이트에 접속했다. 오전 9시50분부터 접속자가 폭주하면서 사이트가 마비되기 시작했다. 판매 시각인 10시에 새로고침 버튼을 계속 눌러봤지만, 결국 보이는 화면은 ‘준비한 물량이 소진됐다’는 친절한 안내뿐이었다. 3월15일 준비된 감자 8000상자는 단 1분30초 만에 모두 판매됐다. 그렇게 며칠을 재도전했지만 매진 열풍인 감자를 만나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3월24일 마지막으로 준비된 5만 상자는 곧 마지막 희망이었다. 물량이 비교적 많았던 탓에 7분 정도 진행된 감자 판매 속에서, 크롬과 익스플로러 창을 오간 분투 끝에 10kg의 감자 한 상자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유명 아이돌 콘서트 티케팅(ticketing)보다 어렵다는, BTS보다 보기 어렵다는 PTS(POTATOS)를 얻기 위한 10일간의 ‘포케팅(Potato+ticketing)’ 성공기다. ‘집콕’이 일상화됐던 3월. 포케팅은 강원도 감자의 맛을 알게 해 줬을 뿐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지친 사람들에게 일종의 흥미와 승부욕, 구매 성공의 희열을 맛보게 해 줬다.

최문순 강원지사가 직접 SNS를 통해 홍보한 강원도 감자는 ‘포케팅’ ‘PTS’ 등 신조어를 남기며 완판됐다. ⓒ 뉴스1
최문순 강원지사가 직접 SNS를 통해 홍보한 강원도 감자는 ‘포케팅’ ‘PTS’ 등 신조어를 남기며 완판됐다. ⓒ뉴스1

이렇게 ‘감자 열풍’을 불러왔던 포케팅은 지자체의 감자 대신 팔아주기 운동에 따라 ‘오픈’됐다. 농가들은 학교급식지원센터 등과 계약재배를 하는 경우가 많다. 1년 분량을 계약해 납품 기일에 맞춰 출하하는 방식으로 판매가 이뤄지는 것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유치원을 포함한 전국 학교의 개학이 미뤄지면서 학교 급식 역시 연기됐고, 이는 농가의 시름으로 연결됐다. 1만1000톤에 달하는 감자가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특히 2019년은 강원도 감자 재배면적이 늘고 기상 상황도 좋아 평년보다 감자 생산량이 21% 증가한 해였다.

최문순 강원지사는 직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감자를 홍보했다. 최 지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외식 불황, 학교 식자재 감소 등으로 고통받는 강원도 감자 농가에 힘을 보태기 위해 감자 영업을 시작한다”며 “강원 핵꿀감자가 완판되는 그날까지 함께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달라”고 참여를 독려했다. 10kg에 5000원이라는 판매금액은 강원도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감자 산업 육성 예산 일부를 이용해 택배비 2500원과 상자 값 950원, 카드 수수료 등의 지원에 나선 것이다. 감자는 연일 매진 행렬을 이루며 완판됐다. 본래 4월7일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2주 앞서 판매가 끝났다.

지자체는 SNS를 통해 ‘대신 팔아주기’ 홍보에 나섰다. 최문순 강원지사와 이재명 경기지사는 착한 소비 동참을 호소했다. 동해시의 오징어 역시 SNS를 통해 홍보되면서 ‘완판’됐다.
지자체는 SNS를 통해 ‘대신 팔아주기’ 홍보에 나섰다. 최문순 강원지사와 이재명 경기지사는 착한 소비 동참을 호소했다. 동해시의 오징어 역시 SNS를 통해 홍보되면서 ‘완판’됐다.

감자로 시작된 ‘대신 팔아주기’, 오징어가 이어

강원도가 쏘아 올린 ‘농수산물 소비운동’의 공은 동해시가 넘겨받았다. 품목은 동해에서 유명한 오징어. 역시 코로나19에 따른 수산물 소비량 감소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어민들을 돕기 위한 취지였다. 3월30일 오후 1시부터 오징어 2000상자가 선착순 판매됐다. 동해산 손질 오징어를 10마리씩 포장한 구성으로, 가격은 2만원이었다. 시중 가격보다 7500원 저렴하고, 택배비는 무료였다. 수산물 소비 촉진과 지역 특산품 홍보를 위해 동해시에서 정상가의 차액 부분을 일부 지원하고, 수협에서 택배비와 카드 수수료를 부담했기에 가능한 금액이었다.

이번에는 오징어가 서버를 터뜨렸다. 동해시가 오징어 팔아주기 운동에 나선 첫날, 개시와 동시에 판매 사이트인 동해시 수협 쇼핑몰 서버는 다운됐다. 일명 '오케팅(오징어+ticketing)'. 겨우 쇼핑몰에 접속했을 때는 이미 2000박스가 모두 매진된 후였다. 판매처를 기존에 공지한 동해몰에서 수협 쇼핑몰로 바꾸고 서버를 증설했지만, 수산물 소비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소비자들을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농어민을 돕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지자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강원도 양구군은 지역 대표 특산물인 곰취 판매에 나섰다. 코로나19로 인해 4월 초로 예정됐던 곰취축제가 취소되면서 판매가 부진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양구군은 축제장에서 판매할 계획이었던 계약물량 7200상자에 대해 곰취 팔아주기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판매가격은 1kg 1상자에 1만원. 양구군이 택배비를 지원한다. 정선군도 정선농협 쇼핑몰을 통해 지역 대표 특산물인 더덕 팔아주기 운동을 시작했다.

시금치와 얼갈이, 대파, 애호박 등 친환경 농산물도 판로를 잃자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도 등장했다. 급식이 연기되면서 소비되지 않아 창고에 쌓인 채소를 소비자들에게 소포장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경기도와 농식품유통진흥원은 3월11일 1차 특별 판촉행사를 통해 친환경 딸기 9.5톤과 친환경 꾸러미 7200상자를 판매했고, 3월23일 2차 친환경 꾸러미 1만5000상자를 판매하면서 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학교 급식용 경기미와 잡곡 세트도 포함됐다. 전라남도는 ‘친환경 농산물 공동구매 캠페인’ 추진에 나섰다. 온라인 쇼핑몰 남도장터를 통해 중앙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 군부대 등을 대상으로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 공동구매 행사를 기획했다.

최근 온라인 개학 발표에 따라 급식 재개가 더 연기된 가운데, 정부도 친환경 농가에 대한 긴급 추가 지원 대책을 마련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3월31일 “전국 학교 급식이 한 달 추가로 중단될 경우 친환경 농산물 약 812톤이 피해를 볼 우려가 높다”면서 “농산물 폐기 등 피해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 달간의 피해 예상 물량의 전량 판매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600톤의 농산물 등에 대해 온·오프라인에서 20% 할인 판매를 추진하고, 나머지 물량은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 캠페인을 확대 운영하는 방식으로 배송비, 포장비 등을 추가 지원할 방침이다.

 

SNS와 온라인 배경으로 ‘착한 소비’ 활성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지자체의 ‘대신 팔아주기’에서 살펴볼 수 있는 키워드는 두 가지다. SNS와 온라인몰이다. 지자체는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최문순 강원지사는 스스로 ‘감자 파는 도지사’라고 이름 붙이고 감자 팔기에 적극적이었고, 이재명 경기지사도 개인 SNS를 통해 피해 농가 돕기를 위한 착한 소비 동참을 호소했다. 강원도는 트위터를 통해 오징어 홍보에 나섰다. 지자체가 판을 열어주면, 소비자들은 각자의 SNS를 통해 정보를 나르면서 판매를 이끈다. 블로그나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착한 소비’를 하자는 움직임이 퍼졌다. 상생이라는 사회적 가치의 확산이 SNS를 통해 일어난 것이다.

이 효과에 힘입어 지역 온라인몰도 재조명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온라인 소비는 더 활성화되는 추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식품소비행태조사 결과, 온라인으로 식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는 2016년 29.1%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9년 44.6%까지 치솟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비자들의 온라인 식품 구매 확대는 향후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직후 대형 소매점의 주간 매출액은 5% 감소한 반면, 온라인 매출액은 30%나 증가했다.

이커머스를 활용한 플랫폼은 크게 성장했지만 지금까지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는 지역 온라인몰에는 소비자들의 유입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자체들이 ‘대신 팔아주기’의 터를 지역 온라인몰로 잡으면서 가입 회원들이 크게 늘어났고, 산지 제품과 질 좋은 지역 특산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함께 증가했다. 감자를 판매했던 강원마트는 4월30일까지 19% 할인 쿠폰을 제공하면서 강원도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을 착한 소비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성공적인 팔아주기 운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남은 과제는 아직 있다. 바로 품질에 대한 검증과 유통망 확충이다. 감자 열풍이 착한 소비의 첫 깃발을 꽂았지만 엄청난 경쟁을 뚫고 감자를 구매한 소비자 중 품질에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막상 감자를 받고 나니 썩거나 싹이 많이 나서 먹을 수 없는 감자가 많다는 것이었다. 반품해 달라는 민원도 속속 들어왔다. 농가를 돕자는 취지로 마련된 이벤트니만큼 반품이나 환불이 적절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지만,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해도 제품의 정확한 정보 고지와 품질 보장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품질 검증과 시스템·유통망 확충이 과제

강원도 측은 환불 문의가 들어올 경우 해당 산지 농협이나 농가에서 교환이 이뤄지게끔 연결해 주고 있다고 밝혔다. 강원도 관계자에 따르면 초기 물량은 농협에서 직접 선별해 나갔지만, 이후에는 농가에서 직접 포장해 판매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농가의 양심이 지켜지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생산자의 양심, 판매 중개 사이트의 검증이 뒷받침돼야만 착한 소비가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을 이용한 새로운 농수산물 유통구조가 주목받는 만큼, 시스템과 유통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강원도 감자 역시 소비자들의 접속 폭주로 서버 문제를 겪다가 네이버가 서버를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판매를 마친 바 있다. 수산물 판매 유통망도 확충이 필요하다. 당분간 온라인을 통한 수산물 소비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유통 과정에서의 변질 우려 때문에 주로 거래되는 품목은 냉동·가공품에 치우쳤다. 최근 식품 전문몰과 외식업체에서 취급하는 신선회는 배송 지역이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다. 판매 다변화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KMI는 3월31일 동향분석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수산물도 언택트(untact) 소비가 확산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존 온라인 유통 플랫폼을 활용하기 위한 전략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활어 전문 유통센터 조성 등을 계획하고 있지만 유통 경로·재고 관리를 위한 DB화, 선별 및 품질 관리, 안전성 검사 등을 갖출 필요가 있다. 데이터 기반의 정확한 수요 예측을 통해 생산지부터 판매처, 소비자까지 최적 재고 물량을 관리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닌, 농수산물과 농어촌을 지속적으로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도 남은 과제다.

한국유통학회 명예회장인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갑작스러운 사태에 대비해 행사가 진행되다 보니, 고객 가치에 미달하는 사례가 나올 것"이라며 "공급자도 고객의 가치 만족에 초점을 맞춰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공급체계를 갖추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코로나19 사태를 이겨내기 위해 삶의 터전을 보전하고 농어촌을 살리는 가치 있는 활동이니만큼, 개인 고객 가치 만족에서 나아가 사회적 가치를 창조해 낼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현 사태 극복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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