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언제 다 같이 모여 놀까
  • 송혜진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08 18:00
  • 호수 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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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에 치일지라도 그 여럿 속에 끼어 한바탕 놀다 와야 성이 풀리는 꽃놀이 철이 그냥 지나간다. 언제든 날만 잡으면 그만이었던 평범한 일들이 ‘못 해서 아쉽고, 꼭 하고 싶은 것’이 될 줄이야. 올봄 참 이상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속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이즈음은 놀기 바쁜 철이었다. 300여 년 전, 이름난 가수였던 김유기라는 분이 ‘오늘은 천렵하고, 내일은 사냥 가세/ 꽃달임 모레 하고, 마을모임일랑 글피 하리/ 그글피 활쏘기대회 때는 술안주 각자 준비하시고요’라고 노래 불렀던 것처럼. 꽃 피는 봄날은 오늘,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까지 노는 약속으로 꽉 차 있어 즐거운 때였다.

ⓒ시사저널 고성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꽃길 입구에 통행 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차로는 1일부터 11일까지, 보행로는 2일부터 10일까지 통행이 금지된다. ⓒ시사저널 고성준

이렇게 여럿이 어울려 흥겹게 노니는 일이 눈살 찌푸리게 할 유흥이 아니라, 살맛 나게 해 주는 풍류였기에 봄을 즐기는 ‘상춘(賞春)’ 문화는 우리의 오래된 풍속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올봄에는 모여 놀 데가 없다. 꽃축제도 멈추고, 공연장, 전시장도 닫혔다. 그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문화예술 온라인 서비스’ 물꼬가 터졌다. 베를린 필하모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같은 세계 유명 예술단의 공연을 손쉽게 볼 수 있게 됐다는 소식과 함께 국내에서도 국립국악원, 예술의전당 같은 예술기관에서 실시간 감상 콘텐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언제까지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 않냐’며 음악가들이 온라인에서 만나 함께 연주하는 콘서트를 선보이고, 활동 수입 ‘0’의 상태로 내몰린 개인 예술가들이 ‘방구석 클래식 갈라 콘서트’ 같은 기획으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앉아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보게 됐으니 좋은 점도 있다. 특히 오랫동안 좋은 콘텐츠를 쌓아온 예술단체에서는 공연뿐만 아니라 공연 이해를 돕는 인터뷰와 작품 해설,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예술 향유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어 볼 것도, 배울 것도 많다.

이렇게 준비해 왔던 것을 이번 코로나 사태를 기회로 무료 대방출하면서 일시에,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는 앞선 이들에 대한 부러운 마음, 우리는 언제 그렇게 될까 싶은 조바심도 든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들이 ‘온전히 당신을 위해 연주합니다’라며 나를 VIP처럼 대우해 준다 해도 집에 앉아 온라인 서비스를 즐기는 일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함께 모여 즐기던 그 재미는 쏙 빠졌기 때문이다. 재미가 없으니 흥이 날 리 없고, 흥이 나지 않으니 성에 차지 않는다.

전망컨대 예술 향유의 방식이 급속도로 변화할 것이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런 환경에 적응하게 될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다 같이 모여 놀기’에 방점을 찍어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대사회부터 모여 놀기를 잘했다. 음식을 즐기고, 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며 모여 놀면서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라는 걸 공감했다. 이런 속성이 세계 보편적인 것이긴 하나,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특성으로 꼽혀온 문화 DNA라는 거다.

지금 다들 살기 어려운 시점에 웬 ‘노는 타령’이냐 흉보시는 이도 있겠지만 잘 놀아야 잘산다는 말을 믿는다. 건강하게 자연과 예술을 즐기며 노는 일이야말로 삶의 원천이다. ‘정부보조금’처럼 돈으로 풀어야 하는 것 말고도, 누군가는 다 같이 모여 놀 궁리, 잘 놀면서 삶의 기운을 충전하는 일을 잘 꾸려가야 한다. 잘 차려진 축제마당, 놀이판, 다양한 공연공간에서 예술가들과 청중이 함께 모여 살맛 나는 에너지를 나누는 날을 기다린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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