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약체질 개선’ 처방 받으려다 ‘특혜 시비’ 휘말린 두산重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4.09 08:00
  • 호수 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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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 후유증 vs 경영 패착에 따른 체질 개선 실패

두산중공업은 3월26일 장 마감 후 공시를 통해 1조원의 대출 약정을 산업은행 및 수출입은행과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올해 4조2000억원의 차입금 만기를 앞둔 두산중공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주가가 화답했다. 3월27일 장이 시작하자마자 두산중공업 주가는 전날보다 20% 넘게 치솟았다. 오후 들어 오름세가 주춤하기는 했지만, 이날 하루에만 10% 정도 오른 3590원으로 장을 마쳤다.

정작 돈을 빌려주기로 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들 은행은 “공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발을 뺐다. 두산중공업에도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두산중공업이 두 차례나 공시를 수정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회사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다음 날 열리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두산중공업의 유동성 지원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었다”며 “이 돈을 분담하는 은행들과 조율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두산중공업이 먼저 내용을 공표해 사달이 난 것 같다”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은 최근 1조원대 긴급 지원금을 정부로부터 수혈 받으면서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연합뉴스
최근 자금난을 겪고 있는 두산중공업이 1조원대 긴급 지원금을 정부로부터 수혈 받는 과정에서 특혜 대출 논란에 휩싸였다. ⓒ연합뉴스

두산重 1조원 긴급 운영자금에 뒷말 여전

정부가 독자적으로 1조원 규모의 자금 조달 계획을, 그것도 특정 기업에 지원하도록 하면서 특혜 논란도 일었다. 정부 일각에서는 “그만큼 정부가 부담을 느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한다. 두산중공업의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과 상당 부분 맞물려 있다.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을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게 골자인데, 원전 관련 기기와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주력인 두산중공업은 피해가 불가피하게 됐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두산중공업의 실적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말 기준 두산중공업의 연결매출은 15조6597억원, 영업이익은 1조769억원으로 비교적 양호한 실적을 보였다. 하지만 금융비용이 매년 증가하면서 당기순손실 1044억원을 기록했다. 그나마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와 손자회사인 두산밥캣의 실적이 양호해 이 정도였다. 지난해 두산중공업은 495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두산중공업은 최근 타개책 마련 차원에서 과장급 이상 직원 2400여 명의 순환휴직을 단행했다. 임원도 20% 이상 감원했지만 경영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정부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이 경영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특혜 지원’이라는 비난에도 정부가 ‘두산중공업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인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게 정부나 재계 일각의 분석이다.

두산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의 시각은 달랐다. 그는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으로 두산중공업의 경영위기가 가중됐다는 지적은 내부 상황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그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수준이다. 장기적으론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두산 경영진이 세계 발전 시장의 흐름에 재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12월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후 세계 화력발전 시장 규모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화력발전소 건설 건수는 2011년 249기에서 2016년 122기로 51%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두산중공업의 매출은 연결 기준으로 21조원대에서 13조원대로 떨어졌다. 앞서의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말 두산건설 지분을 100% 확보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이 때문에 재무부담이 한층 가중됐다”고 꼬집었다.

2015년 A+였던 두산중공업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은 현재 BBB(한국신용평가)까지 하락한 상태다. 그나마 한국신용평가는 3월24일 신용등급을 ‘부정적’에서 ‘하향 검토’로 전환했다. 정익수 한국신용평가 선임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불리한 사업 환경으로 수주 부진에 따른 외형 감소와 수익성 저하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차입 규모 역시 5조9000억원으로 수익창출력 대비 12.2배에 달한다”며 “빠른 시일 내에 대규모 재무구조 개선안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신용등급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성배 두산중공업 노조위원장이 3월25일 경남 창원시청에서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성배 두산중공업 노조위원장이 3월25일 경남 창원시청에서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영진 패착” 성토 목소리도 이어져

이 회사 외부감사인인 삼정회계법인의 경우 2019년 감사보고서에서 “누적된 손실과 유동차입금 수준, 유동자산을 크게 상회하는 유동부채 등을 근거로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유의적인 의문이 제기된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은 주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4월1일 기준으로 최근 1년간 두산중공업 주가는 고점(7620원) 대비 53%(3585원)나 하락했다. 범위를 3년이나 5년으로 넓히면 하락률은 더 가팔라진다. 고점 대비 3년간 하락률은 83%(2만1614원→3585원), 5년간 하락률은 87%(2만8301원→3583원)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그룹의 지주회사이자 두산중공업의 대주주인 (주)두산의 주가도 최근 1년간 61%(8만9014원→3만5000원)나 감소했다.

지난 3월30일 서울 강남구 두산빌딩에서 진행된 두산중공업 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경영진을 성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회사 구조조정으로 직원들의 복지는 축소되고 임금은 삭감됐다. 그럼에도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은 지난해 연봉으로 15억4000만원을 수령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지난해 상여금까지 합쳐 31억원가량을 받았다”며 “회사 경영이 어려워 채권단으로부터 1조원의 긴급 자금을 수혈받은 점을 감안할 때 오너 일가의 도덕적 논란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두산중공업 측은 “업계 공통의 문제다”라고 해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의 실적 하락은 글로벌 발전 시장 침체와 정부의 전력수급 계획의 빠른 변화가 겹쳐진 결과다”며 “미국의 GE나 독일 지멘스의 에너지부문, 일본 미쓰비스 등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회사는 그동안 미래 먹거리 발굴 차원에서 풍력발전과 가스터빈 시장 개척에 공을 들였다”며 “그동안 노력했던 결과가 최근 조금씩 나오고 있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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