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세계경제, V자형 반등일까 L자형 침체일까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4 08:00
  • 호수 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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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망]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시작된 세계화 종말 올 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는 예상치 못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거의 80년 만에 찾아온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이다. 한국의 경우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비롯해 수많은 사회·경제적 위기를 겪어왔기 때문에 다시 찾아온 또 하나의 이벤트라고 생각하지만 그동안 비교적 평안하게 살아왔던 국가들, 특히 유럽 국가들은 혹독한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하루에 수백 명이 감염병으로 목숨을 잃는 것은 전쟁과 다름없다. 전 세계가 현시점에서 1차로 맞서야 할 상대는 코로나19며, 2차로 상대할 적은 코로나19가 가져오는 생산활동 위축과 경기 후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트라우마가 강한 미국과 유럽 각국은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나서 국채는 물론 회사채, 심지어 주식까지 매입하며 유동성을 주입하고 있다. 예산으로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국민에게는 현금을 지급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상상하기도 힘든 ‘수조 달러’라는 표현은 이제 익숙한 단위가 돼 간다. 선진국 가운데 재정 건전성과 부채비율에 과민할 정도로 민감한 독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정 및 금융정책을 집행할 것임을 수차례 밝히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충격과 혼란이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미국과 영국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감소하는 4월 중순 및 하순부터는 최악의 상황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이 많지만, 내년 연말이 돼야 수습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과연 세계경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의 영향으로 서울 영등포구 영화관 매표소 앞에 아르바이트생들만 서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의 영향으로 서울 영등포구 영화관 매표소 앞에 아르바이트생들만 서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시나리오 1: V자형 반등

코로나19로 인한 급박한 상황을 일단 넘긴 각국 정부는 빈사 상태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일 것이다. 이미 집행되고 있는 각종 금융정책에 더해 정부의 예산으로 의료·보건 분야, 그리고 경기부양 효과가 큰 SOC에 막대한 투자를 집행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확정되진 않았지만 8000조원에 이르는 경기부양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도 수조 달러의 재정을 집행하기로 합의했으며, 규모는 얼마든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보건의료 체계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선진국들은 이와 관련한 대규모 투자를 늘려갈 가능성이 높다. 

봉쇄와 이동 제한 등으로 억눌려 왔던 개인들 역시 그동안 잠재됐던 소비성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 ‘보복적 소비’라고 불리는 이러한 경향은 이미 중국에서 관찰되고 있으며, 일상 소비재는 물론 주택, 자동차, 가구 등 내구재까지 그 대상에 포함된다. 수요 증가는 당연히 경기 회복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며 이는 급속한 침체 이후 회복으로 이어지게 된다.

재난수당 지급과 대규모 재정 집행은 국가의 부채비율을 급상승시키게 된다. 부채비율 상승을 해소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적절한 수준의 인플레이션 유발이다. 통화가치의 하락 속도가 부채 증가 속도보다 더 빠를 경우 부채 규모는 증가하더라도 정부 부담은 감소하게 되며, GDP의 성장에 따라 부채비율은 점차 안정세를 보이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제로 금리를 통한 유동성 공급은 이뤄졌지만 정부의 재정 집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수요를 촉발하는 데 실패해 인플레이션 형성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의 경우 거의 모든 정부가 대규모 재정 집행과 국민에 대한 현금 지원을 약속하고 있으므로 과거와는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상황이 진전되면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유리한 국면을 점하게 된다. 충분한 제조업 기반이 존재하고,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을 덜 받았기 때문에 경기 호전의 이득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된다. 반면에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자산가치 급등은 자산 보유에 따른 양극화를 심화시키게 된다. 이러한 V자형 반등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확실한 치료제 또는 백신의 개발을 통해 코로나19가 과거 사스나 메르스처럼 소멸된다는 전제조건이다. 

 

시나리오 2: L자형 침체

V자형의 기본조건인 치료제와 백신 개발이 진행되지 못한다면 세계경제는 L자형으로 대표되는 장기침체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재발과 확산이 반복되면서 과거와 같은 인력 및 물자의 유통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며, 2000년대 이후 형성돼 온 글로벌 제조 공급망은 붕괴를 맞이하게 된다. 글로벌 제조 공급망의 붕괴 및 세계화 추세의 종말에 따라 지난 20년 동안 이익을 누려온 개도국들은 경기 침체와 자국 통화 약세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선진국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보건·의료 부문의 투자 확대가 이어지지만 이는 재정적 부담으로 연결된다. 이뿐만 아니라 커다란 사회적 충격이 반복됨에 따라 소비처로서의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며 과거 1980년대 초반과 같은 대규모 실업 상태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규모 재정투입에도 불구하고 고용 및 경기 활성화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대폭적인 정부 부채 증가만 남게 된다. 경기 침체에 따른 디플레이션 기조의 강화는 부채로 인한 어려움을 가중시키게 되며 이는 이후 정부 투자를 통한 경기 회복의 가능성을 더욱 낮추게 된다. 1990년대 초반 이후 일본에서 나타났던 장기 경기 침체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지속되는 새로운 의미의 ‘뉴 노멀’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코로나19의 대응 과정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함에 따라 국제 정치 및 통상에서 발언권이 약화되며, 과거와 같은 선진국 역할보다는 자국 이기주의에 따른 각종 장벽의 신설, 국제협력의 붕괴로 연결되게 된다. 이런 상황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1990년대 이후 30년간 지속됐던 세계화와 글로벌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은 막을 내리고 전 세계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코로나19는 발생 이후 100일 만에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전 세계가 밀접하게 연관된 만큼 그 확산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지만 국제사회와 정부들은 이에 대응할 만큼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의 등장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시작된 세계화 추세의 종말을 예고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세계경제는 통합과 분열을 주기적으로 반복해 왔다. 이번 코로나19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신호탄이 될 것인지, 아니면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발언대로 자연재해와 같은 일시적 충격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코로나19는 사람들의 인식과 마음에 큰 충격을 줬으며, 이제 세계는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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