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수 전주시장 “전례 없는 재난 상황에선 전례 없는 일 해야”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3 16:00
  • 호수 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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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난기본소득 전국 최초 도입한 김승수 전주시장

조선 왕조를 태동시킨 변혁의 땅. 하지만 ‘전주(全州)’ 하면 떠오르는 게 능소화 늘어진 한옥 담장 옆을 갓 쓴 노인이 도포를 휘날리며 팔자걸음을 한 발 한 발 뗀다는 이미지다. 전주는 근대화 이후 오랜 시간 고요했다. 새로움보다는 낡음이, 활기보다는 침묵이, 중심보다는 변방이, 미래보다는 과거가 전주에 더 어울리는 것처럼 화석화됐다. 지금 전주가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표준을 제시하는 혁신정책의 발신지가 됐다는 점이다.

시사저널은 ‘리더도시’ 전주를 이끌고 있는 김승수 전주시장(51)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김 시장은 최근 뉴스의 중심에 섰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개념 있는 ‘전주형 시책’을 잇따라 내면서다. 그는 ‘인간’을 시정의 최우선에 두고 기존 토건행정과는 판이하게 다른 문법의 혁신행정을 펴고 있다. 각계각층으로 들불처럼 번져 나가는 ‘착한 임대인 운동’과 ‘재난기본소득’ 등을 전국 최초로 시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혁신도시 지역인재 35% 의무채용 제안’ 역시 정부가 국가정책으로 받아들여 지금은 전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때론 관성을 깨는 ‘과격한 상상’이 필요하다는 게 김 시장의 소신이다. 지방도시임에도 전국 최초의 정책들을 자주 발굴한 것 또한 이런 소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김 시장은 “무언가를 최초로 시행한다는 것은 시기나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라고 했다.

ⓒ전주시 제공
ⓒ전주시 제공

기존 토건행정과 다른 전주시 ‘행정문법’

그 연장선상에서 전주시는 전국 자치단체 중 가장 먼저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했다. ‘코로나 보릿고개’에 직면한 서민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다. 재난기본소득을 채택한 이유를 묻자 “코로나19 여파로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시민들에게 ‘희망의 끈’을 잡게 하겠다는 의지가 시발점이었다”는 답이 거침없이 돌아왔다.

“현장에 나가 보면 시민들의 일상이 무너지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대한민국 전체가 재난 현장이다. 사회적 재난이나 경제위기가 오면 가장 먼저, 가장 깊게 고통을 받는 분들이 바로 저소득층을 포함한 취약계층이다. 이 취약계층 시민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해 주는 것이 다급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이다.” 그가 설파하는 이른바 ‘사회적 재난 3가장론’이다.

지역정가에서는 김 시장의 뛰어난 방향감각과 저돌적인 추진력을 높이 산다. 사실 이론과 실천 사이에는 갭이 있게 마련이다. 재난기본소득 도입은 김경수 경남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등이 선창했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의 재정 지출을 요구하며 선뜻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김 시장은 당찼다. 전주시의 재난소득정책 추진의 윤리적 기초를 ‘인간 삶에 대한 존중’으로 설정했다고 김 시장은 설명했다.

“예산은 모든 도시가 부족하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가 중요하다. 전주도 물론 재정이 넉넉하지 않다. 전주도 뻥 뚫린 도로가 필요하고 대형 건물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19로 경제 시스템이 붕괴 직전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로 하나 내는 것보다 시민들의 삶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시민들을 먼저 살려내야 한다. 투입 예산이 263억원인데 시민들의 희망자금으로 쓸 가치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일각에선 굳이 지자체가 나서 재난기본소득을 지원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일상이 붕괴되고 서민들이 생계 절벽에 부닥친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진 상황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김 시장의 지론이다.

“위기가 오면 속도의 엄중함이 따르게 된다. 정부가 추경을 통해 좋은 정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투입까지 시간차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역 입장에서 보면 필연적으로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시민들이 처한 천차만별의 간절한 상황은 간접지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시민들의 낯빛과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게 자치단체다. 위기에 대처하는 속도,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 시민들의 다양한 처지, 이 세 가지를 해결하는 대안이 재난기본소득이라고 판단했다.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은 누군가 힘들 때 ‘당신 곁에 우리가 함께한다’는 사회적 연대의 증거다.”

재난기본소득 추진은 한편으론 코로나19 여파로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는 ‘승수효과’도 기대된다.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은 코로나19로 갑자기 위기를 맞은 5만여 명의 시민에게 긴급생활비로 1인당 52만7158원을 현금카드로 지급하고 3개월 이내 소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지역 내 소비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 또한 모색하자는 취지다. 김 시장의 말이다.

“이를 두고 학계 등에서 논란이 분분하지만 정부가 지출을 늘렸을 때 경기부양 효과가 있다는 케인스학파의 주장처럼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다. 넓게 보면 이는 전주 독립경제 실험과도 맥이 닿는다.”

‘착한 임대인 운동’ 역시 지역을 넘어섰다. 전주 한옥마을이 물꼬를 튼 이 운동의 파급력은 엄청나다. 민간 건물주들은 물론 정부·자치단체·공공기관·교육기관·종교계에 이어 기업과 연예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정부와 각 자치단체에서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더해 주면서 전국 수만 곳의 건물주가 참여하는 국민적 상생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착한 임대인 운동’은 나아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둥지 내몰림)을 극복하는 대안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김 시장의 소회다.

김승수 전주시장(왼쪽 두 번째)이 5월27일 전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주형 재난기본소득’ 지원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주시 제공
김승수 전주시장(왼쪽 두 번째)이 5월27일 전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주형 재난기본소득’ 지원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주시 제공

“도로 하나 더 뚫어준다고 자부심 생길까”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선뜻 동의해 준 건물주들은 진정한 영웅이다. 전주에서 시작된 착한 임대운동의 건물주들은 대부분 기업형 건물주가 아니다. 나도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위해 위로하는 마음으로 임대료를 인하한 것이다. 이제 그 진심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전국에서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임대료 인하 자체도 고마운 일이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 신뢰와 연대라는 사회적 자본이 단단하게 쌓여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김 시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힘주어 했다.

“취임 초기에 ‘저 전주 사람입니다’를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사는 도시’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더니 전주가 뭐 내세울 것 있느냐는 핀잔도 적잖게 들었다. 그러나 서울의 길을 가지 않고 전주의 길을 꾸준히 가다 보니 이제는 시민들의 자부심도 커졌다. 착한 임대운동과 재난기본소득 추진을 통해 이를 더욱 피부로 느낀다. 도로 하나 내는 데 200억원 정도 든다. 도로 하나 내준다고 해서 이 정도 자부심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결국 도시에 대한 자부심은 건물이 아니라 시정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책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의 도시 전주에 대한 철학은 확고하다.

“전주는 다른 도시를 따라가는 도시가 아니고 다른 도시를 끌고 가는 ‘리더도시’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본질은 끝까지 지키는 뚝심 있는 도시, 자존심을 잃지 않고 전주다움으로 세계와 승부하는 도시를 시민들과 만들어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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