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포노사피엔스’ 문명 알리는 신호탄
  •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boong33@skku.edu)
  • 승인 2020.04.14 10:00
  • 호수 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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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문명 전망] 대만의 ‘코로나 대전’ 선봉장은 30대 장관…국회, 스마트폰 서비스 제약 말아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촉발된 팬데믹(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 쇼크가 전 지구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 참담한 쇼크가 앞으로는 더 자주 올 것이라는 학자들의 한결같은 예고다. 결국 우리는 팬데믹 쇼크가 반드시 또 온다는 전제하에 생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회사 출근 대신 재택근무가 상식이 됐고, 아이들도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다. 식사는 식당이 아니라 집에서 해결하거나 배달을 시키고, 장보기도 마트가 아닌 온라인 쇼핑이 표준이 돼 버렸다. 생존의 조건이 된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을 실천하다 보니 ‘언택트 문화(접촉이 없는 문화, 즉 사람을 만나지 않는 방식의 생활)’가 일상이 돼 버린 것이다.

탕펑(영어명 오드리 탕) 대만 디지털 정무위원이 2017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국제 해킹 방어 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탕펑(영어명 오드리 탕) 대만 디지털 정무위원이 2017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국제 해킹 방어 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노사피엔스 문명은 곧 ‘언택트 문명’

그런데 이 새로운 생활방식이 알고 보면 코로나19 탓에 강제로 경험하는 포노사피엔스 문명이다.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는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다. 쉽게 말해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현대인을 의미한다. 전 세계 40억 명의 인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구의 95%가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고 하니 어찌 보면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스마트폰을 활용하며 사는 생활은 새로운 인류의 표준 문명이 됐다고 할 수 있다.

포노사피엔스 문명은 언택트 문명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팬데믹 쇼크를 통해 포노사피엔스 문명을 강제로 경험하고 있고, 동시에 여기에 적응하는 것이 생존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우리나라도 국민의 단합된 힘을 통해 잘 극복하고 있지만, 시스템적으로는 대만(376명 확진, 5명 사망)이 가장 우수한 대응국가로 꼽힌다. 우리가 마스크 구매를 위한 줄서기 대란이 벌어졌을 때 줄서기 없이 마스크를 구매하게 해 준 나라가 대만이다.

이걸 실현한 주인공은 대만의 디지털 정무위원(우리로 치면 과학기술부 장관) 오드리 탕(중국명 탕펑)이다. 39세인 탕 장관은 특이하게도 해커 출신이다. 국무회의에서 마스크 배분 방법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라는 지시를 받자 탕 장관은 그날로 페이스북 대만 개발자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포노사피엔스들이 늘 하는 대로. 그러자 한 친구가 ‘마침 앱을 개발하고 있으니 약국 주소와 마스크 수량만 제공하면 온 국민이 지도 기반으로 위치와 개수를 확인할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3일 만에 개발이 완료됐고, 대만 국민은 줄서기 없이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요가 더 늘어나자 바로 온라인 구매체계로 전환해 국민 편익을 도모하고 코로나19 확산도 줄일 수 있었다. 우리 정부는 못 했지만 우리 청년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코로나맵·코로나알리미 등 국민이 편히 쓸 수 있는 앱들을 개발해 국민 편익에 기여했고, 심지어 중3 학생들도 멋진 사이트를 만들어 동참했다. 포노족(族) 문명이 확실히 생존에 유리하다는 걸 보여준다.

공적 마스크 판매처와 수량 등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앱)과 웹 서비스가 시작된 3월11일 서울 시내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공적 마스크 판매처와 수량 등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앱)과 웹 서비스가 시작된 3월11일 서울 시내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스위스, 데이터 이용 30분 만에 소상공인 대출

또 하나는 소상공인 긴급대출 문제다. 마음이 급한 우리 소상공인들이 대출 시작 첫날부터 줄서기 대란을 일으킨 반면 스위스는 온라인 신청으로 30분 만에 대출이 완료됐다고 한다. 비결은 기존의 신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해 대출 가능 여부를 결정한 시스템 덕분이라고 한다. 우리는 대출서류 만들고 접수하는 데만도 며칠이 걸리고 돈 받는 데는 빨라야 5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심지어 복불복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역시 포노족 문명이 훨씬 생존에 유리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술이 없어서 못 하는 걸까. 아니다. 절대 그 문명으로 가지 않겠다는 기성세대의 고집이 온갖 규제로 막다 보니 기술이 있어도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코로나 일상을 다시 한번 바라보자. 재택근무에 필요한 온라인 도구를 잘 쓰는 사람, 온라인 강의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사람, 온라인 서비스에 익숙한 소상공인, 온라인 기반의 공공 서비스가 표준인 정부, 이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생존 가능성이 훨씬 높은 사회가 아닐까.

물론 소외된 사람들은 챙겨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온라인 문명을 가르치기 위해 많은 세금을 투입하고 온 국민을 도와야 한다. 두려움만 극복하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는 게 디지털 문명이다. 문명의 표준이 바뀌었다면 다 함께 도우며 그렇게 도전하는 것이 생존의 길이다. 위기만 닥치면 서로 돕는 게 우리의 놀라운 전통 아닌가.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배달앱이 독점 횡포를 한다고 공공앱을 만들겠다며 인기몰이에 정신이 없다. 그만큼 플랫폼 경제, 디지털 문명에 대해 무지한 탓에 나오는 발언들이다. 그까짓 앱 하나 만들어버릴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 유튜브도, 카카오도, 네이버도 전부 공공앱으로 전환할 것인가? 모두 그까짓 앱일 뿐인데. 플랫폼은 소비자의 선택으로 성장한 엄연한 삶의 근간이다. 소상공인, 식당이 어렵다면 그들에게 포노사피엔스라는 새로운 소비자를 어떻게 만족시켜 선택을 받을 것인지 교육하고 지원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생존 가능성을 높여줘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 입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세계적 표준이 된 포노사피엔스 문명을 대한민국 표준으로 바꿔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인의 의무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생존의 문제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 후보들은 어느 문명을 지지하는지 분명히 밝히자. 국민들도 눈 크게 뜨고 제대로 투표하자. 우리 사회 생존 가능성을 높일 사람을 뽑아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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