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개미운동 확산으로 증권업계 ‘새판 짜기’ 가속화
  • 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romancer@sisajournal-e.com)
  • 승인 2020.04.15 14:00
  • 호수 159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미 투자자들 적극 매수…증권사들도 브로커리지로 포트폴리오 재조정

국내 증권업계의 ‘지각변동’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변화의 주체는 외국인이나 기관투자가가 아니었다. 그동안 주식시장에서 천대받던 개미투자자였다. 이들은 최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 세계적인 폭락장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우량주를 매수하고 있다. 1894년 발생한 ‘동학농민운동’에 빗대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국내 증권업계 역시 전세를 가다듬고 있다. 주요 증권사들은 그동안 IB(기업금융)에 치중해 왔다. 하지만 최근 동학개미운동이 급속히 확산하면서 브로커리지(주식위탁매매)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아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증권사들의 IB 업무는 사실상 멈춘 반면, 주식투자 열풍으로 이른바 주린이(주식+어린이, 주식 초보자를 일컫는 말)들이 증시에 대거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투자 열풍, 브로커리지의 ‘반격’

무엇보다 신규 투자자들은 대부분 20~30대들로 비대면 서비스를 통해 증권계좌를 만들고 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증권사들 역시 카카오와 유튜브 등 비대면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면서 브로커리지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식거래는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다. 2월 14조2035억원이었던 일평균 거래대금은 3월 전달보다 30.2% 늘어난 18조4922억원을 기록했다. 4월 들어서는 7일 기준으로 22조4126억원까지 거래금액이 증가했다.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 역시 연일 최대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주식거래 활동계좌는 예탁자산이 10만원 이상이고, 6개월 동안 한 차례 이상 거래한 적이 있는 증권계좌를 말한다. 올해 초 2935만6620개이던 주식거래 활동계좌는 3월6일 3000만 개 고지를 넘더니, 4월6일에는 3087만7884개까지 늘어났다. 1월에는 20만7500개, 2월에는 34만3065개, 3월에는 86만1829개로 늘어나는 등 증가세도 점점 가팔라지고 있다.

증권사별로 살펴보면 개인투자자 대상 시장점유율 1위(30%)인 키움증권의 경우 3월 한 달 동안 신규 계좌만 43만1000개가 늘어났다. 올해 1월 14만3000계좌에서 두 달 만에 3배가량 급증한 것이다. NH투자증권 역시 3월에만 30만 개의 신규 계좌가 늘어났으며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 역시 20만 개 이상의 신규 계좌가 유입됐다.

주식매매 활성화로 증권사들의 올해 1분기 포트폴리오 역시 변화가 예상된다. 강승건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래에셋대우, 한국금융지주(한국투자증권 지주사), 삼성증권, NH투자증권, 키움증권 등 5개사의 올해 1분기 실적을 전망하며 브로커리지 부문 이익이 전분기보다 23.5% 늘어난 6151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에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악영향을 이유로 1분기 IB 및 기타손익은 지난해 4분기보다 31.1% 감소한 2288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1분기 트레이딩부문 손익은 주가연계증권(ELS) 운용손실과 증거금 조달비용 증가, 주식평가손실 등으로 전분기보다 93.1% 감소한 335억원 흑자에 그칠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비대면 계좌의 급증은 최근 주목되는 변화로 꼽히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활발해지면서 증권사 창구를 찾지 않고 스마트폰을 이용해 증권계좌를 개설하는 신규 고객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증권사들은 카카오나 유튜브 같은 모바일 플랫폼의 영향력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3월부터, NH투자증권은 올해 2월24일부터 카카오뱅크를 통해 증권계좌 신규 개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신규 가입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3월말까지 카카오뱅크를 통한 누적 신규 계좌가 145만654개를 기록했다. NH투자증권도 2월24일 서비스 시작 이후 카카오뱅크를 통해 32만6164개의 신규 계좌를 늘렸다.

증권사들은 유튜브에도 집중하고 있다. 이번에 신규 유입된 투자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초보 투자자니만큼 투자정보와 투자기법 등에 대한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자체적으로 유튜브 서비스를 강화해 이들을 장기거래 고객으로 묶어두려고 하고 있다.

 

카카오톡 등 비대면 플랫폼 통해 거래 활성화

여기에 간편송금업체 토스가 조만간 자체 플랫폼을 통해 주식매매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비대면 증권계좌 유치전 판도에 또 한 번 변화가 올 것이라고 업계는 바라본다. 토스는 3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사전 예비인가를 받고 현재 ‘토스증권’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토스는 키움증권 출신 인력을 대거 영입해 새로운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은 2000년대까지 브로커리지 분야가 주요 사업이었다. 그러나 수수료 인하 경쟁으로 수익성이 점차 악화되자 2010년대부터 증권사들은 타 사업 비중을 적극 늘리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 대형 증권사들의 사업 수익은 IB와 자산관리(WM), 자기자본 투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브로커리지 분야는 증권업종이 고성장한 최근 5년 동안 ‘나홀로 역성장’을 거뒀다. 한국신용평가가 4월7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의 IB분야 수익은 2015년 2조789억원에서 2019년 4조9803억원으로 140% 늘었다. 같은 기간 자산관리(WM)분야 수익은 8837억원에서 1조180억원으로 15.2% 증가했고 자기매매 및 운용도 3조5129억원에서 4조9061억원으로 39.7% 늘었다. 반면에 브로커리지 부문 수익은 2015년 4조4789억원에서 3조8833억원으로 13.3%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1분기 브로커리지의 부활 현상이 반짝 효과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바라본다. 김고은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당분간 브로커리지가 증권사 수익에서 주요한 부분을 담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승건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IB부분 실적은 당분간 부진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며 “코로나19 확산이 완화된다면 자산실사나 계약체결 등이 재개되겠지만 투자자들의 투자심리 회복에는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