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비서관’ 정태인 “전염병·경제위기 동시에 막는 방법은 고용대책”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4 14:00
  • 호수 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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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정태인 “대통령이 해고 기업엔 지원 없다는 메시지 줘야”

“코로나19발(發) 두 번째 위기는 실업대란에서 올 가능성이 높다. 지금 고용대책에 과감히 재정을 쓰는 게 더 큰 위기를 막는 길이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4월8일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 전 비서관은 실업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면 코로나19로 인한 ‘감염 확산 위기’와 ‘경제위기’가 상승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면서 이를 동시에 막는 방법은 미리 과감한 고용 유지 정책을 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잘해 온 방역 성과가 대규모 실업 사태로 구직을 위해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게 되면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규모 실업 사태가 대규모 감염 확산 위기를 낳고, 감염 위기가 다시 경제위기를 낳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로 평가받는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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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의 진앙지가 대규모 실업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맞다. 대통령이 한시적 해고 금지를 이야기하고, 해고를 하는 기업엔 재정 지원이 없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줘야 한다.”

왜 ‘해고 금지’ 메시지가 중요한가.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면 감염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염 위기와 경제위기의 접점에 대규모 실업이 있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다고 상상해 보라. 당장 먹고살려면,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을 수 없다. 즉 ‘물리적 거리 두기’를 할 여력이 확 준다. 실업자와 임대료 등을 내지 못해 집과 가게에서 쫓겨나는 집단, 이 두 집단이 커지면 감염 위기와 경제위기는 상승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결론적으로 전염병과 경제위기를 동시에 막는 방법이 바로 일터와 보금자리에서 쫓겨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일자리 고용대책이 지금 절실한 이유다.”

고용대란이 얼마나 심각하게 올까.

“미국만큼은 아니겠지만 유럽보다는 더 심각한 수준으로 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정부는 이번 위기가 이전에 찾아왔던 위기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위기의 성격이 다르면 해결법도 다르다. 한국이 그동안 위기에 대처해 온 대표적인 해결 방법이 바로 ‘해고’였다. 1998년 IMF 외환위기를 비롯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에서 해고는 문제 해결 방식의 핵심이었다. 이렇게 비용을 줄인 대기업들이 위기로 인해 떨어진 원화가치를 발판 삼아 수출로 점점 회복해 나갔다. 하지만 이 방식은 작동되지 않는다. 지금은 원화가치가 떨어져도 수출을 할 곳이 없다.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진 상황이다. 수출을 하려야 할 국가가 없다. 해외 수출에서 활로를 찾을 수 없다는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결국 우리 경제가 회복하는 데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내수가 중요하다. 내수를 지키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용 유지다.”

이런 맥락에서 ‘해고 금지’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정부는 어려운 기업을 지원하되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지원해야 한다. 기업들이 정부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해고를 못 하게 만들어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금은 경제위기와 감염 위기가 중첩돼 있는 상황이다. 실업자가 늘면 사회 위기와 경제위기가 증폭된다. 긴급재난지원금처럼 개인에 대한 지원만큼 고용 유지를 위한 기업 지원에 보다 과감한 재정을 넣어야 한다. 돈을 퍼부어서라도 기업도, 사람도 살려야 할 때다.”

지금 정부가 이런 준비에 미흡하다고 보나.

“정부가 ‘코로나발 경제위기’에 투입하는 재정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 남짓으로 주요 선진국에 크게 못 미친다. 아무리 방역을 잘해도 대규모 실업이 쏟아지면 다 무용지물이 된다. 고용대란은 이제 시작이다. 한국 경제의 높은 대외 의존도를 감안하면 수출이 앞으로 더 어려워질 텐데 그러면 상황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관련 예산을 미리 확보해 놔야 적기에 필요한 곳에 딱딱 투입할 수 있다. 정부의 위기의식이 떨어지니 대책 마련도 늦고, 정책집행도 늦는 모습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지금 세 단계의 대책이 필요하다. 첫 단계는 해고를 하지 않게 유도하는 것이다. 여기에 선제적으로, 과감한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상황이 정말 나빠지면 해고는 피할 수 없다. 그러면 고용보험 확대로 대응해야 한다. 현재 통계에 잡히지 않아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등이 너무 많다. 고용보험의 혜택 범위를 확대해 일시적으로라도 이들을 안전망 안에 넣어야 한다. 즉 고용보험 대상을 확대하고 기금을 확대해야 한다. 그럼에도 안 되는 분들은 복지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첫 번째 단계다. 여기서 막아야 비용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여기서 뚫리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정부가 또 해야 할 준비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은 전시 상황과 다름없다. 전쟁 때는 배급이 기본이다. 필수재가 다 떨어졌을 때의 상황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식량과 에너지, 의료와 관련한 필수재 확보 계획은 이미 다 짜여 있어야 한다. 지금 목도하고 있지만 글로벌 공급망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국내적으로도 필수재 생산 시스템이 무너지면 이를 어떻게 공급해 국민들에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다 나와 있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지금 위기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굉장히 긴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가치사슬 때문에 한국만 방역에 성공한다고 해서 우리 경제가 바로 회복되지 않는다. 다른 나라도 방역에 성공해야 하는데,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침체가 길어져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가 고용과 복지를 유지하면서 경제 성장까지 가져가려면, 결국 4차 산업혁명과 기후변화 모두와 연관된 ‘그린뉴딜’밖에 답이 없다. 그린뉴딜은 다 인프라 투자다. 에너지와 교통, 건물이라는 3대 부문의 인프라를 다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앞장서야 기업이 따라온다.”

‘경제 방역’을 두고 청와대 책임론도 제기된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처럼 금융위기에 대한 대비는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는데, 그에 비해 산업과 고용 등에 대한 대책이 너무 약하다. 청와대에 좋은 분이 많이 가 있는데, 왜 이렇게 못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청와대의 대응은 ‘미적미적’과 ‘찔끔찔끔’이라는 두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대통령이 ‘전례 없는 위기’라고 했는데, 지금 ‘전례 있는 대책’만 내놓고 있다. 보통의 위기 상황이 아닌데,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는 교과서에 나오는 대책만 늘어놓고 있다. 그러니 위기의식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 위기의식이 커 보이지도 않는다.”

청와대가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뭘까.

“일각에서 제기하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책임론에 동의한다. 기재부가 말하는 재정 건전성을 지금 한가하게 논의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초 재난지원금의 기준이 소득 하위 70% 가구로 잡힌 것은 기재부 안에 청와대가 동의했기 때문이다. 지금 당청(黨靑)은 ‘총선에 나쁜 영향을 미치면 어떻게 하나’ 식의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결국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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