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도 투표권이 있다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1 17:00
  • 호수 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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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해결에 투표하자”

이제 곧 투표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다양하고 심오한 의미를 많이 지닌다. 나는 늘 선거의 캠페인은 극도의 계몽주의라고, 그렇게 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가까운 시대부터 말하면 2010년 지자체 선거에 등장한 무상급식 의제가 있다.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 이건희 손자에게도 공짜 점심을 주어야 하느냐는 반대론과 이건희 손자와 달동네 아이가 같은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찬성론 중에 어느 쪽이 이겼는지는 다들 기억하실 터. 역사의 반동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한 이명박 당선 선거조차도 교훈은 있었다. 오로지 경제동물의 감정으로 투표하면 국고를 사유화하는 위정자를 만난다는 것. 복고풍 선거였던 2012년 대선은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나라가 가라앉는다는 끔찍한 교훈을 주었다. 2017년 대선의 의제는 과거와의 단절 그 자체였다. 비록 미진했지만. 그래서 이번 총선의 의미는 무엇이어야 할까.

선거법 개혁이 도리어 악몽이 돼, 이렇게까지 정책의제가 실종된 일도 드물다 싶을 정도로 정책대결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외부에서 부여된 의제가 쓰나미처럼 덮쳤다. 코로나19로 인한 생존위협 극복, n번방 사건 해결이라는 의제다. 어쩌면 이번 선거의 의미는 우리의 정치 담당자들이 이처럼 크나큰 사건들을 감당할 역량이 있는가를 시험하는 일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3월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시민들이 ‘n번방’ 관계자들의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3월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시민들이 ‘n번방’ 관계자들의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선거가 성폭력 얼룩진 사회 변화시킬 수 있어야

코로나19 대유행은 습관과 타성에 의존하던 많은 일을 근본에서 다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부주의가 남을 해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쾌락만 앞세우는 태도가 얼마나 추한지도 보게 되었다. 얕은 층위에서나마 내 자유가 공동체의 안녕을 해치지 않을 때만 내 자유라는 고전적 자유론의 기초명제가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런 깨달음을 정치가 받아안을 수 있을까.

그러려면 이 공동체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하겠다. 그런 뜻에서 n번방은 경제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 심각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것이 우리 정치의 문제다. 벌써 몇 년 전부터 디지털 성범죄 고발과 미투(#MeToo) 등 성폭력 고발을 많은 여성이 목숨을 걸고 해 왔지만 정치는 여기에 응답하지 않았다. 심지어 12세 소년 운영자가 등장하고, 26만 명 중 상당수가 청소년이라는 보고는 우리 사회의 미래에 드리운 정말로 암울한 그림자다.

이들뿐일까. 성폭력에 경각심이 없는 남성들은 국가라는 공동체가 요청하는 자유와 책임의 틀에서 완전히 이탈한 일종의 ‘폭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겉보기엔 멀쩡한 그들의 선배 남성 세대가 성폭력을 유흥으로 가르치고 경제동물로 사는 것이 성공이라는 착시를 가르쳤다. 이들은 가치전도된 망가진 정신세계라는 배를 타고 갖은 악행으로 얼룩진 인생 항해를 시작해 버렸다. 젠더감수성 1도 없는 정당들이 1, 2당인 현실이 이들의 배후라고 말한들 변명할 수 있나.

그렇더라도 문제가 드러난 이상 해결도 가까워야겠다. 선거가 이들을 포함해 성폭력으로 얼룩진 남성사회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지 못한다면, 어느 당이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닌 진정한 국가 멸망이 예비되는 셈이니까.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당장, 성폭력에 반대하는 후보에게 투표하자.

“#NOMORE_NTHROOM” “#정준영은_벌금_백만원” “#N번방은_판결을_먹고_자랐다” “#갓갓은_아직_잡히지_않았다” “#N번방_가입자_전원_신상공개”에 나는 투표한다. 지금 당장 과거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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