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환대받은 美 투자, 롯데·LG·SK는 속앓이
  • 김도현 시사저널e. 기자 (ok_kd@sisajournal-e.com)
  • 승인 2020.04.22 14:00
  • 호수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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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폭락으로 ‘셰일發’ 금융위기 고조···전기차 수요 줄며 배터리 업계도 시름 커져

미국에 ‘통 큰’ 투자를 감행했던 국내 화학기업들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사망자를 배출했다. 방대한 내수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 내 소비가 위축되고 수요가 줄어들면서 글로벌 경제위기로 확대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 불황과 유가 폭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셰일산업이 그 도화선이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셰일산업은 세계 최대 원유 소비·수입국인 미국을 원유 수출국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일조했다. 채굴 단가를 낮춰 경쟁력을 확보한 탓에 고유가 시대의 경쟁력 있는 사업모델로 평가받았다.

코로나19 여파로 국제유가가 폭락하고 제품 수요가 줄면서 국내 기업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사진은 미국 테네시에 위치한 LG전자 세탁기 공장
코로나19 여파로 국제유가가 폭락하고 제품 수요가 줄면서 국내 기업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사진은 미국 테네시에 위치한 LG전자 세탁기 공장

‘소비 왕국’ 미국의 수요 절벽 현실화

문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원유 가격이 단기간 내 급락했다는 점이다. 미국에 이어 원유 소비국 2위를 차지했던 중국에서 신종 바이러스 확산이 처음 터지다 보니 불확실성이 커졌고, 수요 또한 감소해 원유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히 미국 셰일산업의 경쟁력도 급속도로 악화됐다. 고정비용을 감내할 수 없었던 일부 기업은 파산신청을 하기도 했다.

수요가 줄어들면 감산을 바탕으로 가격 방어에 나서는 게 일반적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리더 격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비(非)OPEC 가입국들에 감산을 제안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해당 제안을 거절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두 국가의 자존심 다툼으로 번지면서 오히려 증산 경쟁을 펼치게 됐고, 이 과정에서 원유 가격은 끝 모를 추락을 거듭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두바이유·서부텍사스유 등은 올해 첫 거래일이던 1월2일까지만 해도 각각 배럴당 65.44달러, 61.18달러에 장을 마쳤다. 하지만 이후 중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50달러 선으로 내려앉았다. 바이러스가 주변국을 넘어 북미·유럽 등으로 번져가는 등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이 되자 40달러 선이 무너졌고, 증산 경쟁이 더해지면서 20달러까지 폭락했다.

두 국가의 증산 경쟁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일단락됐다. 추가적인 가격 하락은 막았지만, 반등에 이르기까지는 힘든 여정을 거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 원유 수요가 급감하면서 재고량이 치솟았고, 코로나19가 미국 등에서 빠르게 확산되면서 수요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셰일산업을 지키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섰으나 상당 기간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됐다.

문제는 국내 기업들이다. 현지 셰일산업에 투자한 기업들의 손실 또한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주로 화학업체들이 투자했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과 지주사 SK 등을 통해 5700억원을 투입했다. E1의 경우 800억원을 투자했다. 가장 많은 자금을 들인 곳은 롯데다. 지난해 5월 롯데케미칼은 3조5000억원을 쏟아 부어 ‘셰일 혁명의 중심지’인 루이지애나 레이크찰스에 에틸렌 공장을 준공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크게 환영했다. 셰일 혁명 시대에 발맞춰 현지에서 셰일 원유를 공급받아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실제 루이지애나 에틸렌 공장은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기존 방식보다 30~40%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롯데케미칼이 단순히 원가 절감을 위해서만 현지 투자를 감행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 최고 수요처인 북미 시장 공략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저유가 기조에선 힘을 쓰지 못한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미국 수요는 현재 바닥을 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이 하락한 상황에서, 셰일산업에서 촉발된 경제위기가 미국 실물경제를 넘어 국제적 금융위기 등으로 확대된다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차세대 먹거리’인 전기차 배터리 업계도 같은 이유로 고심이 깊다. 전기차뿐 아니라 전체 자동차 수요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줄어들면서 선제적으로 투자에 나섰던 기업들의 이익금 회수가 더뎌질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전기차 3대 시장으로는 유럽·중국·미국 등이 꼽힌다.

우리 기업들의 해외투자도 자연히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3대 시장으로 분류되지만 국가적 사업 육성이 전폭적으로 이뤄진 중국, 환경 규제가 높아지며 전기차 수요가 급증했던 유럽과 달리 미국은 아직 잠재력이 높은 시장 정도로만 평가돼 왔다. 현재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업체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등을 꼽을 수 있다.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

LG화학은 2조원을 투자해 지난 2012년 미시간주 홀랜드에 배터리 생산공장을 설립했다. 단계적으로 자금을 투입해 현재는 최초 완공 때보다 4배 이상 생산량이 높아진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GM(제너럴모터스)과 배터리 합작사를 세우기로 했다. 두 회사는 당초 각각 1조원씩 출자하기로 했으며, 양사 합쳐 최소 2조7000억원에 이르는 추가적인 자금 투입에 합의했다.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 커머스에 자리 잡았다. 1조9000억원을 투입한 배터리 공장이 현재 지어지고 있다. 오는 2022년 가동을 앞두고 최근 인근 부지를 매입해 2공장 건립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SK의 이 같은 투자는 조지아주가 유치한 해외투자 사례로는 역대 최고액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막대한 일자리가 창출될 이 공장을 두고 높은 관심을 표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역시 유럽과 함께 코로나19에 따른 피해가 가장 극심한 지역이어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다른 산업군에 비해 사정이 낫다고 평가되지만, 수요 중심인 미국에서 코로나19와 같은 높은 전염력을 지닌 바이러스 출현과 사태의 장기화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로선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현지 정부에 적극 협조하고, 코로나19 종식 후 시장에 대비하는 게 현명해 보인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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