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은 회장은 왜 작심하고 한은을 비판했나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3 14:00
  • 호수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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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준과 비교해 한국민은행의 문제의식 안일” 지적 미국과의 비교 자체가 ‘난센스’ 시각도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최근 한국은행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문제의식이 안일하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두고 이렇듯 직설적 화법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것도 산업은행이라는 국책은행의 수장이 말이다. 지금 산업은행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정책금융과 회사채, 기업어음 매입 등에 모두 16조6000억원의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 혼자만 애쓰고 있다는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한국은행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는 곳은 산업은행만은 아니다. 미국 연준이 펼치는 전격적인 금리 인하와 무제한의 양적완화를 보면 더욱 비교가 된다. 한국은행은 너무 몸을 사리고 느리며 관료적이다. 온실 속에 안주해 온 탓에, 타성에 젖어 있다는 지적이다. 조직 이기주의도 두드러진다. 한국은행은 사실 금리 인하부터 늦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 연준이 두 번이나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동안 금리를 동결해 비난을 받았다.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 연준이 두 번이나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동안 금리를 동결해 비난을 받았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대책, 한국과 미국 차이 커

코로나19가 급속한 확산세를 보이던 2월27일 금통위에서 한국은행은 금리를 동결했다. 금리를 내린 것은 보름여가 지난 뒤였다. 그사이 미국 연준은 두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1.50%포인트 낮췄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이 퍼붓는 돈은 일단 그 규모부터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양적완화 규모는 무제한이다. 게다가 미국의 연준은 회사채와 기업어음까지 사들여 금융사가 아닌 민간기업에도 직접 돈을 공급한다. 회사채 매입 범위는 투기등급 채권, 상업용 부동산 저당증권, 대출채권담보부증권 등 거의 모든 종류로 확장했다. 현재까지 집행된 연준의 유동성 공급은 1조7000억 달러에 이른다. 이에 비해 한국은행은 환매조건부채권 매매를 통한 금융회사에 대한 자금 공급이 전부다. 그것도 3개월 뒤에 되사는 조건을 붙인다. 이건 양적완화라고 하기도 어렵다. 금융사에 담보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뿐이다. 역시 한국은행은 아직도 소극적이다. 하지만 한국은행만 비난하기에는 곤란한 사연도 있다.

우선 중앙은행 뒤에 있는 정부의 역할에 차이가 있다. 미국 정부의 경기 부양 패키지 법안에는 연준 대출 프로그램 지원금으로 4540억 달러가 배정돼 있다. 연준의 유동성 공급에는 이 자금이 종잣돈으로 쓰인다. 연준은 레버리지를 통해 원래 자금의 10배 정도로 유동성을 늘려 이 돈을 시장에 공급한다. 연준이 6000억 달러를 투입하는 중소기업 지원 대출에는 재무부의 자본금 750억 달러가, 8500억 달러를 공급하는 회사채와 개인 소비자 금융 프로그램에는 재무부가 종잣돈 850억 달러를 제공하는 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정부의 역할은 금융사들을 독려해 자금을 내놓도록 한 것이 거의 전부다. 정부가 100조원 규모라고 발표한 민생·금융안정 프로그램 가운데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자금은 41조8000억원이다. 재원은 대부분 민간 금융회사가 부담한다. 예를 들어 증권시장안정펀드의 경우 정부나 한국은행이 직접 내는 돈은 없다. 출자 규모를 보면 산업은행 2조원, 5대 금융그룹 4조7000억원, 금융투자사 1조5000억원, 생명보험사 8500억원, 지방은행 5000억원, 손해보험사 4500억원 등이다.

연준이 발권력을 동원해 투기등급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사들이는 과정에서도 연방정부는 재정 보증의 역할을 맡는다.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사는 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하는 데 자금 공급은 중앙은행이 담당하고 정부는 상환을 보증해 손실에 대한 부담을 없애주는 것이다. 한국은행도 연준처럼 특수목적기구를 설립하고, 정부가 보증한 기업어음과 회사채를 직접 매입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안했다지만 정부는 계획이 없다.

물론 정부의 역할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미국 연준과 한은을 바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일단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무한정 풀 수 있다. 외화매입 자금을 위한 한은의 통화안정증권 발행 규모는 164조원이지만, 연준은 외화매입 부담 자체가 없다. 이 때문에 자금 운용에도 차이가 크다. 연준은 국채 매입과 기업 대출 및 회사채 매입에 자금을 대부분 쓸 수 있고 또 그렇게 쓰지만, 한은 자금의 76%인 375조원은 외환 보유에 묶여 있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돈을 더 찍어서 마냥 풀 수도 없다. 국내 화폐 수요는 제한적이다. 우리가 미국처럼 원화를 찍어낸다면 자칫 원화의 가치 하락만 유발해 해외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떠나는 원인이 될 수 있기도 하다.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국내 증시의 외국인 투자자금만 450조원을 넘는다.

 

한은 비판에 앞서 제도부터 손질해야

미국도 물론 달러를 무한정 찍어내면 가치 하락이 걱정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달러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도 그랬지만 달러 확보를 위한 통화 스와프를 요구하는 국가가 늘고 해외 부문의 달러 수요가 증가한다. 연준이 달러를 찍어 해외로 보내면 그만큼 미국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 능력은 확대된다. 규모는 굳이 얘기할 것도 없다. 화폐 발행 규모가 한은이 126조원인 데 비해 연준은 한은의 19배 정도다. 한국은행이 미국의 연준을 따라갈 수는 없다.

법적 제도와 여건도 다르다. 한은법 68조는 한은이 자기계산으로 매매할 수 있는 증권에 대해 원리금 상환을 정부가 보증한 유가증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회사채를 한은이 사줘야 하는 상황이라면 먼저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얻어 회사채를 지급보증하고, 한국은행은 금통위의 결정을 거쳐 이를 사들이는 것이 제도의 취지에 맞다.

한국은행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타당하다. 하지만 한은은 원래 신중하고 보수적인 집단이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서 한은에 지나친 부담을 주문하는 것도 무리다. 외환을 관리해야 하는 책임도 져야 하는 한국은행으로서는 지금 수준의 돈 풀기도 낯선 일이다. 1950년 한국은행 설립 이래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그한국은행은 아마 지금 벌이고 있는 일도 사실은 힘에 벅차다고 느낄 것이다. 다른 중앙은행의 모습을 바란다면 먼저 제도와 환경을 바꿔야 한다. 사람은 물론이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전체 자금 가운데 한국은행이 부담하는 돈은 2조5000억원이 전부다. 재정지원 없이 민간 금융회사의 출자에만 의지하는 위기 극복 대책에는 제약이 따른다. 무엇보다 재원이 대부분 민간에서 나오다 보니 손해를 보는 건 곤란하다. 당연히 실제 지원 대상이 제한적이다. 소상공인들이 몰리고 있는 연 1.5%의 초저금리 소상공인 특별대출도 ‘특별’이라는 말이 붙기는 했지만 ‘대출’은 ‘대출’이다. 특별대출 한도는 모두 3조5000억원이다. 1년 뒤에 돌려받아야 하는 돈이다. 이미 소상공인의 정책자금 연체율은 8.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누군가 보전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면 손실은 곤란하다. 은행이 선뜻 대출해 주기 어려운 이유다. 반면에 미국 연준의 긴급대출제도는 손해가 생기면 연준이 95%를 부담하고 민간 금융사는 5%를 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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