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보 시대의 새로운 억압과 통제를 우려한다
  • 김윤태 고려대 교수ㆍ사회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2 16:00
  • 호수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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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21세기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사회는 언제나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다. 과거의 일방향적 의사소통과 달리 이제는 쌍방향적 의사소통의 가능성이 증가한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기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소수의 전문가, 레거시 미디어, 지식인의 영향력이 감소한다. 최근 좌익과 우익을 막론한 포퓰리즘 정치의 강화는 이런 기술적 변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효과와 함께 누가 기술을 소유하고 통제하느냐에 관한 문제도 중요하다. 과거의 권력은 교회, 군주, 정부에서 비롯됐지만 오늘날은 기업 권력이 지배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재벌 대기업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소비주의와 쾌락주의 문화가 확산되고 K팝과 같이 제조화되는 대중문화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만든다. 공론장 또는 집단지성이 등장하는 대신 구글과 페이스북과 같은 인터넷 기업이 사실상 사회를 움직이는 기업 제국을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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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학생혁명이 세계를 휩쓸기 1년 전 프랑스 철학자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spectacle)’이라는 용어를 통해 인간의 삶이 자본주의 기업과 관료제에 의한 외양의 지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상황주의 인터네셔널에 가담한 드보르는 삶의 진실, 삶의 진정한 모습이 은폐되면서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것이 표상과 허위의식뿐이라고 봤다. 현시대에도 문화, 예술, 정치의 토론이 이루어지는 공론장이 쇠퇴하면서 광고, 오락, 대중의 관심을 끄는 스펙터클이 지배하는 매체가 가공할 힘을 가진다. 이 과정에서 문화는 하나의 소비 가능한 상품으로 전락하고 정치는 단지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는 과정으로 간주된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다양한 사고와 가치와 부딪히지만 문화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명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 기업은 예술가와 문화 전문가를 버리고 돈이 되는 가치의 제작자만 유혹한다. 취향의 다양화는 자유시장과 야합하고 선택의 자유는 현상유지를 합리화하는 계율이 된다. 과거의 서사를 부정하고 미래의 전망도 포기한 채 현재만 강조하는 문화는 역설적으로 현재의 억압과 통제의 권력관계를 외면한다. 사익과 공익의 매개였던 정치의 역동성이 쇠퇴하면서 정책 토론이 사라지고 대중 조작, 팬덤 현상, 당파적 동원의 형식으로 선거와 정치적 참여가 변질된다.

소비문화에 대항한 지구적 차원의 혁명이 발생할 희망이 사라진 1994년 드보르는 스스로 삶을 마쳤다. 하지만 소비문화가 지배하는 시대에 대중이 반드시 현상유지에만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2011년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들고 ‘아랍의 봄’을 주도한 젊은이들과 월스트리트를 점령한 보통 사람들의 성난 목소리가 주목을 끌었다. 2016년 스마트폰을 들고 1000만 명이 참여한 한국의 촛불시민혁명은 정부의 부정부패뿐 아니라 불평등과 사회적 세습에 거세게 저항했다. 문화와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로 결집시킨 인터넷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물론 구글이 중국에서 정보의 민주적 운영에 반대하고, 페이스북이 극우 정치세력에 편승하고, 카카오톡이 시장을 지배하는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이 반드시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기술이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듯이 누가 어떻게 기술을 지배하느냐에 따라 사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만들 수 있다. 자유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기술이 교묘한 방식으로 사회를 억압하고 통제하도록 방관하지 않아야 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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