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실적에 눈멀어 비위 은폐한 시중은행의 민낯
  • 김종일·오종탁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9 10:00
  • 호수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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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쪽 분량의 금감원 제재 내용 심층분석
제재안 관통하는 키워드는 ‘위반·허위·은행장’

시사저널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하나·우리은행이 금융 당국으로부터 제재받은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봤다. 단순히 ‘DLF 불완전 판매’라 명명하고 끝내기 힘든 심각한 위법과 도덕적 해이가 방대한 제재안에 기록돼 있었다. 제재안 분량은 A4용지 기준으로 하나은행 32쪽, 우리은행 17쪽에 달한다. 

두 은행의 제재안 내용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키워드는 ‘위반’으로, 총 71차례에 달했다. 특히 하나은행 제재안에는 ‘허위’와 ‘은폐’란 표현이 각각 12번, 11번 나왔다. 허위 보고와 허위 자료 제출, 조직적 은폐 등을 통해 금융 당국을 기만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모든 비위 행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실적’과 ‘목표’인데, 이는 ‘행장’ ‘부행장’과 맞물린다. 제왕적인 은행 경영진은 실적 상승 목표를 무리하게 세워 직원들을 압박, 결국 막대한 고객 피해를 불러왔다. 

DLF 사태가 한창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에 두 은행 수장은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다. 함 부회장은 2015년 9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손 회장은 2017년 12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은행장이었다. 즉 두 사람에게 DLF 불완전 판매 등에 대한 직간접적 책임이 있는 셈이다. 

ⓒ시사저널 박정훈·고성준
ⓒ시사저널 박정훈·고성준

제재안에 ‘위반’ 표현 총 71차례 등장 

금융 당국이 지난 3월4일 확정한 제재안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당시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6개월 업무 일부 정지(사모펀드 신규판매 업무) 조치와 과태료(하나은행 167억8000만원, 우리은행 197억1000만원)를 부과받았다. 

영업 일부 정지의 경우 영업 인허가 취소 또는 등록 취소, 영업·업무 전부 정지 다음으로 제재 수위가 높은 중징계다. 그만큼 두 은행이 국내 금융시장 역사에서 손꼽힐 만한 중대 위법행위를 저질렀다는 방증이다. ‘위반’이란 단어가 하나은행 제재안에는 54건, 우리은행 제재안엔 17건 등장했다. 

금융감독원은 제재안을 통해 “하나은행은 2018년 7월17일부터 2019년 5월23일 사이 120개 영업점에서 일반 투자자 773명을 대상으로 DLF 886건을 판매하면서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 의무 및 설명서 교부 의무, 녹취 의무 등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가입 금액으로 따지면 1837억4000만원가량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법을 위반해 판매한 DLF 계좌는 427개였다. 879억9000만원 및 539만 달러어치다. 

하나은행 제재안에는 ‘허위’라는 말이 12번이나 나온다. 하나은행이 금융감독원에 허위로 보고·진술하고 허위 자료나 경위서를 제출하는 등 조직적인 은폐에 나섰다는 대목에서다. 

제재안이 딱딱한 공식 문서임에도 하나은행의 금감원 검사 업무 방해 사실은 12쪽에 걸쳐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다. 앞서 하나은행은 지난해 6월18일 행장 지시로 비상대책반을 꾸렸다. DLF 불완전 판매 이슈를 집중 관리할 목적에서다. 부행장, 준법감시인 등 핵심 인사들이 비상대책반에 포함됐다. 한 주 뒤인 지난해 6월25일 비상대책반은 DLF 계좌 1936개에 대해 불완전 판매 여부를 점검하기로 했다. 

지난해 7월1~5일 자체 점검한 결과, 서류 미비 계좌가 전체의 43.1%인 834개로 나타났다. 이에 하나은행은 조사 대상 1936개 계좌를 놓고 서류 재점검, 녹취 점검 등 2차 조사를 진행했다. 동시에 자산관리 담당자들에게 완전 판매 여부를 물어본(784건) 결과 서류 미비 계좌가 433개(22.4%)였고, 그중 향후 분쟁으로 이어질 만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 계좌가 169개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듯 충분히 문제가 많은 사안임을 내부에서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상대책반은 최종 점검 내용을 지난해 8월5일 은행장에게 보고했다. 당시 이미 1918개 계좌가 손실 구간에 진입(평균 손실률 -56.5%)한 상태였다. 

그런데 하나은행의 자체 점검 파일은 은행장 보고 다음 날인 8월6일 모조리 삭제됐다. 이후 하나은행은 금융 당국의 조사에 은폐와 꼬리 자르기로 일관했다. 제재안에는 “금감원이 지난해 7월 이후부터 검사 착수 직전까지 하나은행에 DLF 사후 관리 방향에 관해 수차례 문의했으나, 하나은행은 ‘분쟁 조정 신청이 접수된 민원에만 집중하고 있고, 그 외에는 별도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고 허위 보고했다”고 나와 있다. 

제재안에서 ‘은폐’란 단어는 11차례 등장한다. 자체 점검 정황이 드러나 부인할 수 없게 되자 하나은행은 담당 전무, 부장이 양자 간 협의하에 자료 일체를 없애기로 하고, 이를 직원들에게 지시했다고 금감원에 진술했다.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우리·하나은행이 금융 당국으로부터 받은 제재 내용 ⓒ시사저널 임준선·금융감독원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우리·하나은행이 금융 당국으로부터 받은 제재 내용 ⓒ시사저널 임준선·금융감독원

고객은 뒷전, 오직 ‘윗선’에만 충성 

모든 정황과 상식에 비춰볼 때 위법행위의 책임은 단연 일선 직원들이 아닌 하나은행 경영진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우리은행도 마찬가지다. 우리은행 제재안에는 ‘은행장’이 3차례, ‘부행장’이 6차례 등장한다. 

우리은행 제재안을 보면 ‘경영진의 과도한 사모펀드 판매 추진·독려’ 부분에서 “은행장이 2018년도부터 펀드 M/S(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하기 위해 사모펀드 위주의 외형 성장 극대화 전략을 추구했다”고 나와 있다. 

제왕적인 은행장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은행 조직 특성상 전략은 곧바로 실행에 옮겨졌다. 당시 우리은행 부행장보는 영업점 성과평가기준(KPI)과 별개로 자산관리 담당자 KPI와 영업본부·영업점별 펀드 판매 목표를 설정, 펀드 판매를 독려하고 실적을 관리했다. 상품 권유 직원별 실적도 취합해 관리하면서 영업점 포상, 자산관리 담당자 평가 자료 등으로 활용했다. 

하나은행 제재안에도 “부행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펀드 판매 수수료 증대를 위한 무리한 전략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펀드 불완전 판매 방지를 위한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펀드 판매 관련 내부 통제 기준이 제대로 준수되는지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점검 기준 또한 마련하지 않았다”고 적시됐다. 자산관리 담당 직원들이 무리한 펀드 판매 경쟁에 노출되고, 이는 고스란히 고객 피해로 이어졌다. 두 은행의 제재안에 ‘실적’이란 단어는 모두 23번, ‘목표’는 28번 나온다. 

제재안 내용 중 ‘자산관리 영업전략 및 정책 수립의 전결권자인 부행장이 2018년 5월17일 지주사에 보고하기 위한 자산관리 비즈니스 전략 보고서에서, 은행의 수수료 이익을 2018년 1700억원, 2019년 2350억원, 2020년 3000억원까지 증대하겠다는 (무리한) 전략을 제시했다’는 대목에선 하나은행 경영진의 눈이 고객보다는 ‘윗선’으로 향했고, 최종 책임자는 이처럼 비뚤어진 충성심을 방조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어떨까. 임세은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예대마진으로도 충분히 많은 수익을 내는 은행들이 상품 판매 수수료 경쟁에까지 뛰어들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은행 사업 분야 다각화를 통한 금융산업 발전을 도모한다는 기존 취지가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위험 상품 판매에 있어 금융투자회사 직원들보다 숙련되지 않은 은행원들이 실적 경쟁에 내몰리며 불완전 판매가 다발적으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은행이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 중 하나이긴 하지만 다양한 공적 업무도 수행하는 만큼 금융소비자, 즉 국민에 대한 도리를 분명히 지켜야 한다”면서 “금융산업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면 실적 경쟁을 일반 고객이 아닌 기업 대상 영업으로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소송’ 나선 우리, 상황 예의주시하나 

두 은행에 대한 기관 제재가 확정됨에 따라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연임과 금융권 취업에 제한을 받는 중징계(문책 경고)를 받았다. 두 사람은 모두 DLF 사태 당시 은행장을 지냈다. 

손 회장의 연임 문제가 걸려 있는 우리금융은 금감원 제재에 맞서 소송을 제기했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내부 통제 부실의 책임을 물어 경영진을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지를 두고 양측이 벌인 공방이 법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손 회장이 개인 신분 차원에서 법적 대응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이번 소송이 우리은행과는 전혀 별개로 손 회장 개인이 진행하는 것이냐는 시사저널의 질의에 우리은행 측은 “꼭 ‘개인적으로 한다’고만 말하기는 애매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이 금감원 제재에 대해 불복한다거나 금감원과 대립한다거나 이런 건 결코 아니다”라며 “불미스러운 일들을 딛고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 내부적으로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나은행은 아직 별도의 대응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곧 입장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함 부회장이 차기 하나금융 회장직에 도전하려면 이번 문책 경고에 이의를 제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아직 시일이 남아 있기 때문에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방향성이나 공식 입장이 정해지면 대외에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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