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지정 ‘광릉숲’ 품은 경기 포천 국립수목원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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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걱정 속 커지는 숲의 가치

지난 4월5일은 식목일이었다. 본래 식목일은 공휴일이었지만, 2006년 공무원 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공식적인 휴일에서 제외됐다. 관공서 휴일이 너무 많아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토를 푸르게 만들자’던 식목일의 슬로건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도 좋을 만큼 우리나라의 산림은 울창하게 되살아났다. 물론 휴일이 아니라고 해서 식목일의 의미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라, 식목일을 공휴일에서 해제시킨 결정이 문득문득 안타깝게 느껴진다.

식목일이 숲의 소중함을 의식 속에서 환기시키는 상징적인 장치였다면,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경기도 포천의 국립수목원이다. 전국에 많은 수목원이 있지만 국립수목원은 산림청 산하에 있는 우리나라 대표 산림연구기관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이 있다. 여기에는 수목원을 품고 있는 광릉숲의 규모와 역사가 한 몫을 하고 있을 테다.

광릉숲에 위치한 국립수목원. 1987년 광릉수목원으로 조성된 후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승격됐다. ⓒ김지나
광릉숲에 위치한 국립수목원. 1987년 광릉수목원으로 조성된 후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승격됐다. ⓒ김지나

유흥 아닌 숲 생태계 배움의 장으로

국립수목원은 1999년 독립하기 전까지 ‘광릉수목원’으로 불렸다. 지금도 광릉수목원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사람들도 많다. 그만큼 국립수목원을 이야기할 때 광릉숲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조선시대 왕릉의 부속림으로 오랜 역사의 시작을 알린 광릉숲은 한국전쟁 이후의 도벌 위협, 군사정권의 횡포, 90년대 휴양지 개발 붐까지 겪으며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격변을 온몸으로 견뎌내기도 했다. 그러던 2010년 마침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숲의 가치를 공고히 알리는 중이다.

수목원 조성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이루어진 많은 문화 인프라 사업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식물원이 하나쯤 있어야 했고, 광릉숲을 즐길 수 있는 국민적인 관광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점차 이 일대가 각종 오락시설로 뒤덮이자 광릉숲을 보호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산림욕장이나 동물원 같은 관광지는 전면 폐쇄됐으며 수목원은 예약제로 일반인 방문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수목원은 유흥을 즐기는 관광지가 아니라 숲 생태계에 대한 연구와 배움의 장으로 전환됐다.

지금 국립수목원은 연구기관임을 공식적으로 강조한다. 2000년대에 들어 산림생물표본관과 열대식물자원연구센터가 세워지며 수목원의 연구기능을 강화했다. 웅장한 규모의 온실로 이루어진 열대식물자원연구센터는 산림연구기관으로서 국립수목원의 새로운 상징으로 꼽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최근에는 광릉숲을 벗어나 지역과 연계된 식물연구의 거점을 만드는 변화를 꾀하는 중이다. 일자리 창출, 농가 소득 증대와 같이 보다 실용적인 목표를 가진 유용식물증식센터가 경기도 양평에 자리를 잡았다. 강원도 양구에는 DMZ 자생식물원을 개원해 비무장지대 생태계 연구에 대한 국립수목원의 소임을 천명했다. 광릉숲을 경험하기 위한 부속기관 같았던 수목원은 지역의 산업, 생태와 관련된 연구 활동에 뛰어들면서 그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영역이 더욱 풍부해진 셈이다.

국립수목원의 열대식물자원연구센터. 열대식물 자원의 수집, 보존 등을 목표로 하는 연구기관으로 일반인들은 산림교육전문가의 인솔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김지나
국립수목원의 열대식물자원연구센터. 열대식물 자원의 수집, 보존 등을 목표로 하는 곳으로 일반인들은 산림교육전문가의 인솔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김지나

코로나19 속에서도 주말 방문객 가득

한편 일반 사람들에게 수목원은 여전히 매력적인 관광지이자, 가볍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나들이 코스다. 코로나19 사태로 연구시설들의 관람이 중단됐는데도 주말 예약은 일찌감치 마감되고 있다. 사람들은 수목원을 단지 산림연구기관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렵지 않게 일상에서 벗어나 울창한 자연을 누릴 수 있는 휴양의 공간에 가깝다. 광릉숲의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등재로 수목원에서 얻는 경험의 가치가 더욱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다만 이제는 과거에 그랬던 것과 같은 무분별한 유흥이 아니라, 숲의 생태적 가치를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정착돼야 할 것이다.

오래전에는 공휴일을 지정해서 숲의 소중함을 일깨우곤 했었다.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식목일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산업 활동이 멈추자 깨끗해진 하늘을 보며 환경 보호에 대한 경각심이 함께 높아지는 현상도 목격한다. 이럴 때 우리나라 숲과 수목을 연구하는 대표 기관으로서 수목원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국립수목원은 숲을 직접 체험하는 물리적 환경이 그 자체로 배움과 성찰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장소다. 수목원의 연구기능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친환경적 삶을 배우는 문화적 기반으로 일상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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