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제·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해야 진짜 바뀐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9 10:00
  • 호수 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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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기시감이 든다. 한국에서 금융사고가 나면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금융당국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고 한다. 관련 금융회사들은 자정노력을 기울이겠다며 몇 가지 대책을 발표한다. 당초 거론되던 엄중한 징계와 제재 조치는 어물쩍 솜방망이 처벌로 바뀐다. 시간이 흐르고 피해자들의 호소는 점차 “금융 선진화” “금융규제 혁파”라는 말에 가려진다. 헐겁게나마 만들어진 소비자 보호제도는 금세 우회로를 찾은 어떤 이들에게 무용지물이 된다. 그렇게 다시 사고가 터진다. 

같은 ‘장면’의 반복을 막으려면 ‘구조’를 바꿔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굵직한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다. 그는 2013년 설립된 금융정의연대를 통해 금융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계속 동분서주해왔다. 김 대표를 인터뷰했다. 

ⓒ연합뉴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연합뉴스

일련의 금융사고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원죄는 금융당국에게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금융위원회가 발의한 금융규제 완화 입법안(자본시장법 개정)이 국회 심의를 거쳐 2015년 통과됐다. 사모펀드 운용사 등록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개인투자자들의 최소 투자금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내렸다. 파생결합증권(DLF) 피해자들이 속출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 재산이 1억~2억원인 분들에게 이런 고위험 상품을 예금 상품처럼 말하며 불완전 판매했다.”

라임 사태도 같은 영향을 받았다고 보나.

“그렇다. 라임 사태는 금융규제 완화 부작용의 결정판이다. 사기 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사모펀드 규제 수준을 대폭 낮추면서 일반 투자자들까지 사모펀드 시장에 유입되며 시장 규모가 크게 성장했다. 사모펀드의 불완전 판매, 유동성 관리 실패, 운용상 위법 행위 등 부작용이 속출했지만 오히려 금융당국이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은 약화됐다. 금융회사들은 ‘묻지마 판매’를 통해 수수료 챙기기에 열을 올리게 됐다. 지금 와선 오히려 자기들이 ‘사기 당했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금융사고는 계속 터져 나올 것이다.”

구조를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금융소비자보호법은 큰 의미를 갖고 있지만 이 두 가지가 빠지면서 내용 면에서는 반쪽짜리가 되어버렸다. 아쉬움이 크다.”

왜 집단소송제가 중요한가. 

“현재는 피해자들의 대항력이 너무 약하다. 금융 피해는 구제되는데 상당한 시간과 자원이 소요된다. 피해 금액을 보상받고자 돈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하고 별도의 시간을 내는 일이 개인들에게 쉽지 않다. 반면 금융회사들은 대형 로펌을 선임해 대응한다. 설사 승소하더라도 다른 피해자들은 별도의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중 일부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해 승소하면 다른 피해자들은 별도의 소송 없이 이전 피해자의 판결로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번 DLF와 라임 피해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집단적으로 대응하는 일이 쉽지 않다.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집단소송제가 필요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어떤 의미가 있나.

“예방적 차원에서 중요하다. 이번에 금융위가 제도 개선안을 내놨는데 금융회사 내부 시스템 보완과 감독당국 모니터링 강화 정도에 그쳤다. 현재 구조에서는 금융회사가 불완전 판매를 줄일 유인보다 수수료를 더 많이 챙길 유인이 크다. 불완전 판매에 대해 판매사들에게 50% 정도의 과징금을 물리는 것은 절대로 ‘징벌적’이라고 할 수 없다. 금융회사들의 잘못이 명백히 밝혀져도 수익금의 절반만 내어주면 된다면 불완전 판매 같은 관행을 없앨 이유가 없다. 부실 상품을 팔아 수수료로 200억원의 수익을 거뒀는데 과징금은 100억원이라면 누가 처벌을 겁내겠나.”

정부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부정적이다.

“우리가 사형제를 유지하는 이유가 뭔가. 예방적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금융회사 직원들에게 빠져나갈 길을 터주는 의미가 있다. 이 제도가 있다면 회사에서 부당한 지시를 내리면 자기가 살기 위해서라도 안 하게 된다. 이게 바로 바로 미국식이다. 충분한 자유와 권리를 준다. 대신 걸리면 센 징계를 받는다. 금융시장에서 퇴출되고, 사면․석방 없는 실형을 받게 된다. 우리는 금융사기로 한 몫 잡고 10년 감옥에서 때우고 나오면 된다는 인식이 사회 전체에 퍼져 있다. 이 인식의 전환 없이는 계속 사고는 나올 수밖에 없다. 진짜 금융 선진화의 길로 갈 때다.”

일련의 사고에 대해 금융위와 금감원 중 누구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보나.

“윤석헌 원장의 금감원은 이전 정부보다는 분명 진일보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DLF 등 관련해서 금융회사들에게 징계를 내리는 수준을 보면 이전과는 분명 다르다. ‘호랑이’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금융위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금융위가 이전 정부와 무엇이 다른지 알기 어렵다. 이번 DLF 사태에 대해서도 금융위는 금감원이 금융회사에 부과한 과태료를 깎아줬다. ‘금융회사 봐주기’에 ‘금감원 견제’에 지나지 않는다. 금융위는 자신들의 원죄를 개선하는데 어떤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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