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만든 역설…佛 대통령 마크롱 ‘지지율 상승’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2 10:00
  • 호수 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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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늘 국가 위기에서 대통령 지지율 반등해

4월20일 프랑스 여론조사 전문기관 BVA가 라디오 방송사 ‘유럽1’의 의뢰로 독점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프랑스 정부의 대처에 대한 신뢰도는 35%였다. 이것은 한 주 전 발표된 37%에서 2%p 하락한 수치다. 4월초 쏟아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급상승’이라는 여론조사 발표와 그 보도를 무색하게 하는 결과다.

실제 4월1일 주간지 ‘파리마치’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이폽(IFOP)에 의뢰해 발표한 조사에선 마크롱에 대한 국정 수행능력 지지도는 이전 대비 13%p나 상승한 46%로 나타났다. 2주 뒤인 4월16일, 프랑스 경제 전문지인 ‘레제코’ 역시 프랑스 국민 62%가 대통령과 정부의 대처를 지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수치는 4월13일의 3차 특별담화 직후 또 다른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오피니언웨이(OpinionWay)가 조사 발표한 결과다. 당시의 대통령 담화는 영상 조회 수가 3600만 회에 이르며 기록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동 제한령’이 시행 중인 한적한 프랑스 파리 시내 ⓒAP 연합
‘이동 제한령’이 시행 중인 한적한 프랑스 파리 시내 ⓒAP 연합

우왕좌왕 정부 대처에 여론도 들쭉날쭉

4월초 나타났던 대통령의 지지도 급상승에 대해 당시 여론조사를 담당했던 이폽의 프레데릭 레비 부국장은 “기계적인 반등이며, 내일의 기약이 없는 수치”라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 프랑스는 늘 국가 위기에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반등하는 추세를 보여왔다. 1991년 걸프전 당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두 달 만에 19%p의 지지율 급상승을 기록한 바 있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또한 임기 중 발생한 미국 9·11 테러 직후 14%p나 지지율이 올라갔다. 역대 가장 낮은 지지율로 고전했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2015년 샤를리 에브도 테러 직후 한 달 만에 21%p에 이르는 기록적인 지지율 상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런 상승세는 얼마 못 가 다시 원상태로 고꾸라졌다. 프레데릭 레비 부국장은 “마크롱도 이번 사태의 여파로 닥칠 경제 충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대처능력과 관계없이 대통령 지지도가 깜짝 반등을 보이지만, 결국 이전보다 더 내려앉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21%p나 급상승했던 올랑드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사태가 진정된 후 집권 말기까지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으며, 급기야 지지율 3%까지 주저앉아 재선은커녕 다음 선거에 입후보조차 하지 못했다.

종잡을 수 없는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지지율처럼, 정부의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여론조사 역시 들쭉날쭉한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4월13일 대통령 담화에 대한 여론 동향도 마찬가지다. 보도 전문채널 ‘BFM’이 의뢰하고 여론조사 기관인 엘라브가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이동 제한’ 종료 시점인 5월11일 이후 전 국민이 마스크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선 프랑스 국민 94%가 환영한다고 밝혔지만, 동시에 국민 65%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회의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견해는 우호적이지만 정부의 대처능력을 깊이 신뢰하진 못하는 것이다.

여론조사 기관들이 내놓는 결과 차이도 현저하다. 엘라브의 경우 5월11일부터 시행되는 단계적 개학에 대해 응답자 55%가 찬성했다고 발표한 반면, 비슷한 시기 나온 또 다른 기관의 조사에선 과반이 ‘나쁜 결정’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가장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는 ‘감염자 추적조사’ 역시, 프랑스 여론조사 기업 오독사의 조사에선 94%가 찬성한 반면, 엘라브의 조사에선 62%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다. 같은 사안을 두고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더군다나 두 조사는 4월13~14일 같은 날 실시된 것이다. 여론조사는 보통 정부 당국의 결정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데, 이처럼 여론조사 결과마다 상반되게 나오는 혼선을 빚자 결국 하원은 원점에서 의원들의 표결을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여론의 동향이 이처럼 갈팡질팡, 혼란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동안 프랑스 정부가 보여온 지그재그 행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는 코로나 사태 초기인 지난 3월 ‘이동 제한령’ 발표를 앞두고 실시된 지방선거 투표와 대국민 담화였다. 지방선거 1차 투표일을 사흘 앞둔 3월12일 대국민 담화에 나선 마크롱은 ‘이동 자제’를 강력하게 권고하면서도 전 국민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모순적인 권고안을 내놨다. 일각에서 선거 연기론이 불거지는데도 1차 투표를 강행한 이튿날, 마크롱은 다시 방송을 통해 “우리는 전쟁 중”이라며 2차 담화를 발표했다. 투표를 독려하고 실시하자마자 다시 경고 수위를 높인 것이다.

프랑스 한 가정에서 4월13일(현지시간) 코로나19와 관련한 마크롱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AP 연합
프랑스 한 가정에서 4월13일(현지시간) 코로나19와 관련한 마크롱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AP 연합

국가 위기 속 ‘지도자 흔들기’ 자제 중이지만…

2차 담화에 이어 ‘이동 제한령’이 실시된 후에도 프랑스 정부는 엄중한 경고와 안이한 대처의 이중 행보를 보이며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여기에 마크롱의 막말까지 더해져 바닥 여론을 더욱 싸늘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경고에도 국민이 심각하게 사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국민을 향해 “바보 같다”는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뒤늦게 여론을 수습하기 위해 4월8일 파리 북쪽 생드니 의료시설을 방문한 마크롱은 예고 없이 인근 주민들을 격려한다며 거리로 나섰다가 인파들을 운집하게 만들어 또 한번 논란을 만들었다.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 온 ‘사회적 거리 두기’와 ‘인파 운집 금지’ 조항이 대통령으로 인해, 대통령 앞에서 무너진 것이다. 엘리제궁은 공식 입장을 통해 “근처 우체국을 찾은 시민들이 잠시 모여든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언론은 대통령의 부주의한 행동을 일제히 보도했다.

잇따른 실수와 미온적인 대처에도 ‘평상시’에 비해 대통령의 지지도나 여론의 비판 강도가 일정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건 국민과 언론 모두 ‘지도자 흔들기’보다 ‘국가 위기의 안정화’를 최우선으로 두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마크롱 정부를 두고 ‘아마추어 정부’라고 꾸준히 강도 높게 비판해 온 프랑스 정치평론가 알랭 뒤아멜 역시 코로나19 사태에서 마크롱 정부를 더 이상 ‘아마추어’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통령의 담화 내용을 칭찬하는 등 힘을 실어주고 있다. 결국 이런 심각한 시국이 자신이 비판해 온 ‘아마추어 정부’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동 제한령이 시행된 이후 프랑스 국민은 저녁 8시 일제히 창가와 베란다에 나와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을 갖는다. 함께 의료진의 노고에 감사하는 의미로 박수를 치는 순서도 마련했다. 좀체 신뢰도 있는 답을 명쾌하게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정부가 아닌, 국민들끼리 서로를 의지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연대가 얼마나 더 공고히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어느덧 6주를 넘기고 있는 이동 제한령 기간에 가정폭력은 48%나 늘었으며, 청소년 범죄 등의 증가도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의 우왕좌왕 대처와 느슨해진 감시망이 낳고 있는 또 다른 심각한 부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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