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째 이어진 마스크 사태…집에 갇힌 장애인들
  • 이진성 세종취재본부 기자 (sisa415@sisapress.com)
  • 승인 2020.04.2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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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배급에만 집중…취약계층 배려 미흡
올 겨울 코로나19 재확산 우려…정책 보완 필요

#1.대전광역시에 거주하는 정신지체 장애인인 A씨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3월에 외출을 커녕 제대로된 식사 한끼 챙겨먹지 못했다. 평소 생활을 챙겨주던 활동지원사가 코로나19 감염우려로 방문을 피했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음식물을 구입하려 마트에 갈려고도 해봤지만, 마스크가 없었던 A씨는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결국 방문을 열지 못했다.

#2. 지체장애인인 B씨는 최근 휠체어를 타고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경기도 수원의 한 약국을 방문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긴 줄이 이어진 상태였고, 약 20분의 기다림에도 B씨를 마스크를 얻지 못했다. 마스크가 꼭 필요했던 B씨는 수소문 끝에 복지관으로 가면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바로 이동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정부가 코로나19 감염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복지관 강제 휴업을 결정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정부가 여전히 사회보호계층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장애인들은 휠체어를 끌고 나와야 했고, 미성년자인 10대 청소년 한명은 쌀쌀한 날에 이 행렬에 동참했다가 원인모를 폐렴으로 숨졌다.

정부는 장애인들을 위한 공적마스크 구매 확대과 활동지원사 지원 등의 역할을 다했다고는 하지만 현장에서는 허점이 쉽게 드러났다. 마스크 물량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사회취약계층인 장애인과 미성년자 등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평가다.

마스크 5부제 시행 첫 날인 3월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시사저널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시사저널

마스크 배급에만 집중…취약계층 배려 미흡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전국적으로 마스크 재고가 부족해지자 정부는 지난 3월 5부제를 적용했다. 마스크를 직접 구입하기 어려운 만 10세 이하(2010년 이후 출생) 어린이나 만 80세 이상(1940년 이전 출생) 노인, 장기요양급여 수급자, 장애인 등은 대리 구매자를 통해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대리 구매를 위해선 대상자의 해당 요일에 방문해야 하는 조건은 장애인들에겐 특히 높은 장벽이었다. 본인 마스크를 구하기도 어려운 시점에 다른 이들의 것을 위해 또 다시 긴 줄을 서야 했기에, 장애인이나 그 가족, 활동지원사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활동지원을 받는 C씨는 "활동지원사도 마스크가 부족한 상황인데 내 것을 구매해달라고 몇 시간이 될지 모르는 긴 줄에 서달라고 부탁하기가 어려웠다"면서 "그나마 이웃들이 사정을 알고 지원해준 마스크로 버텼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활동지원사가 평상시와 같이 활동에 전념하다 양성 판정을 받는 사례도 있었다. 이 사례로 인해 활동지원사와 접촉한 사람들에 대한 감염우려까지 커지면서 장애인들이 스스로 활동지원을 거부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충청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활동지원사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평상시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지침외에 마스크 배급은 물론 감염 예방 관리 등에 대한 교육 조차 제공하지 않았다"면서 "활동지원사도 감염관리에 사각지대에 있었던 셈"이라며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지적했다.

정부는 4월27일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해 뒤늦게 대리 구매자와 대리구매 대상자 중 어느 한 명의 구매 요일에 맞춰 한 번만 판매처를 방문해 함께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미 한달 넘게 시간이 흘러 마스크 물량이 여유로운 시점이라 효과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올 겨울 코로나19 재확산 우려…정책 보완 필요

문제는 이러한 사례가 계속 이어질 지 모른다는 점이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 유행이 완화와 강화를 반복하다가 오는 겨울 다시 대유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은 4월20일 정례 브리핑에서 "겨울철이 되면 바이러스가 생기기 좋은 환경이 돼 대유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전파력이 높아 금방 종식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1년 혹은 몇년간 계속 유행이 지속할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

정부의 대응방법이 지금과 같다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만 11세 이상의 미성년자들 같은 취약계층들은 다시 마스크 구매를 위한 길 줄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미다. 가령 대구에서는 한 고등학생이 아버지를 대신해 쌀쌀한 날에 마스크 구매행령에 동참했다가 폐렴 증상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장애인 단체 한 관계자는 "4월초만 해도 장애인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에 불과한 어린아이들이 마스크를 산다고 긴 행렬에 끼어있는 모습을 흔히 볼수 있었다"면서 "정부가 보호가 필요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보다 현실성있게 추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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