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선 전두환, 선택적 침묵·혐의 부인 ‘반복’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조현중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7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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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5·18 법정서도 참회 대신 ‘꾸벅꾸벅’ 졸았다
헬기 사격 대목에선 ‘정신 번쩍’…“사격 없었다” 부인
전두환 전 대통령, 13개월 만에 광주법원 재판정에 출석

4월27일 오후 4시 42분. 광주시 지산동 광주지방법원 법정동 출입구 앞에 전두환 전 대통령(89) 내외가 모습을 드러내자 포토라인 오른쪽에서 있던 광주 시민과 5·18 회원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어 소란이 벌어졌다. 전씨의 퇴정을 3시간 가까이 지켜보던 일부 시민들은 경찰들이 펼친 우산 보호를 받으며 전씨가 나타나자 계란을 투척했으며 “전두환 XX야” “잡어! 잡어!”하며 외쳤다.

‘법원 떠나는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이 4월 27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형사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하고 나서 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 떠나는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이 4월27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형사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하고 나서 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들, 퇴정하는 전씨 향해 “잡어!”

서울에서 출발할 때에는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나 차에서 내릴 당시에는 모자를 벗고 마스크만 쓰고 있었다. 전씨는 경찰이 미리 대기해놓은 카니발 승용차에 타고 법원 후문에서 좌회전한 후 광주제2순환도로 쪽으로 빠져 나갔다. 그가 법원을 빠져나가는데 걸린 시간은 2분여 가량이었다. 이를 지켜본 한 시민은 “광주경찰 (경호)끝내준다”며 “광주의 역적 전두환을 보호해줄 필요가 있느냐”며 힐난했다.

전씨가 후문을 통해 법정에 도착할 당시 정문 길 양쪽에서는 5·18 시민단체 회원 등 300여명은 ‘임을 향한 행진곡’과 ‘5월의 노래’ 등을 부른 후 “전두환은 5.18 영령 앞에 사죄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전두환은 5·18의 진실을 밝혀라’ ‘5·18역사왜곡처벌법 제정하라’ 등의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소복을 입은 5·18 희생자 어머니들과 5·18 단체 관계자들, 일반 시민들은 전씨가 들어간 법정 출입구 앞에 모여 전씨의 사죄를 촉구했다. 

앞서 이날 오전 8시 25분, 마스크와 중절모를 착용한 전씨는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하기 위해 자택을 나섰다. 자택을 출발한지 4시간만인 오전 12시 19분께 광주지법 법정동에 도착한 전씨는 부인 이순자(82)씨와 함께 광주지방법원 후문에 검정색 세단 차량에서 내린 뒤 곧바로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지난해 3월 11일 피고인으로 광주지법에 출석한 지 1년여 만이다. 경호 차량과 전씨 부부가 탄 차량 등 승용차 3대는 당초 예정됐던 법원 정문이 아닌 후문을 통과해 청사로 진입했다. 신뢰관계인 자격으로 동석하게 해달라고 신청한 부인 이씨도 법정으로 함께 이동했다.

 

“왜 책임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묵묵부답’

전씨는 “왜 책임지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건물로 들어갔다. 취재진은 전씨에게 “이렇게나 많은 죄를 짓고도 왜 반성하지 않는가.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왜 책임지지 않는가”라고 물었으나 전씨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경호원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재판은 이날 오후 1시 57분부터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전씨는 청각 보조장치를 착용하고 재판에 참여했다. 그는 잘 들리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고 부인 이순자씨의 도움을 받아 생년월일과 직업, 거주지 등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을 진행했다. 생년월일과 직업 등을 물을 때는 잘 안 들린다며 이씨에게서 한 번 더 설명을 들었지만, 주소를 확인할 때는 맞는다고 답변했다.

‘전두환을 지켜라’ 4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경찰들이 우산을 펼쳐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호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두환을 지켜라’ 4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경찰들이 우산을 펼쳐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호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씨는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재판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잠시 물을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이날 오후 5시 22분 재판이 끝날 때까지 조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선택적인 침묵과 혐의 부인을 반복한 것이다. 그는 이날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인 인정신문에서는 부인 이씨의 도움을 받아 생년월일과 주소 등을 묻는 말에 “맞습니다”라고 답했다. 자신의 법률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가 고(故) 조비오 신부의 5·18 기간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영상·사진 자료를 제시할 때는 유심히 화면을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이 길어지자 재판 내내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전씨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명확하게 표현하며 혐의를 부인했다. 전씨는 “만약에 헬기에서 사격했더라면 많은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무모한 헬기 사격을 대한민국의 아들인 헬기 사격수 중위나 대위가 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법정 질서 유지를 당부했고, 재판이 1시간 20분 이상 이어지자 변호인의 요청으로 10분간 휴정한 후 재판을 재개했다.

 

헬기사격 입증되면 ‘유죄’…‘자위권’ 논리 붕괴

5·18 시민단체 회원 등 300여명은 광주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법원 후문을 통해 법정에 도착할 당시 “전두환은 5.18 영령 앞에 사죄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시사저널 조현중
5·18 시민단체 회원 등 300여명은 광주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법원 후문을 통해 법정에 도착할 당시 “전두환은 5.18 영령 앞에 사죄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시사저널 조현중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의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조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씨는 인정신문을 위해 지난해 한차례 재판에 출석한 이후 그동안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출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장이 바뀌면서 공판 절차를 갱신하게 됐다. 전씨는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의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전씨 형사재판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헬기사격이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와 전씨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조 신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자서전에 포함했는지 여부다. 5·18 때 헬기사격이 있었고 전씨가 이를 알고 있었다면 조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죄가 성립되고 헬기사격이 없었다면 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전씨는 당시 헬기사격은 없었고 자서전의 관련 내용은 “문학적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재판부가 헬기 사격을 인정할 경우 그동안 발포를 정당화하기 위해 전씨 등 신군부가 주장해온 ‘자위권 발동’ 논리는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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