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교과서, 평범한 이웃의 특별한 일상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04.2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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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ㅣ복병학 지음ㅣ모아북스ㅣ256쪽ㅣ1만5000원

“국가가 빚을 안 지면, 국민이 빚을 져야 합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긴급재난지원금을 국민들에게 지급하는 정책을 두고 최근 국민들 사이에 빛났던 발언이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탄 이 말은 사실 훨씬 전에 SNS에서 같은 말을 했던 다른 사람이 있었다. 다만 그가 평범한 시민인 탓에 그의 명언(?)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을 뿐이다. 철학자의 전문용어를 빌리자면, 베이컨의 ‘극장의 우상’에 해당된다. 같은 말도 공자님 말씀이면 세기의 명언이지만 서민이 하면 넋두리로 끝나는 이치다.

책도 그렇다. 이미 유명세를 얻었거나 누구나 인정할 만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 쓴 책은 실상 내용에 별 것이 없더라도 일단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다. 심지어 어떤 책들은 베스트셀러라는 ‘과분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반대로 내용이 알차더라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저자의 책은 출판에 의미를 두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복병학의 산문집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도 그리 될 처지가 농후하다. 저자가 지극히 평범한 우리네 이웃 아저씨이기 때문이다.

복씨는 올해 딱 만 60세 환갑에 이른 장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IT 대기업에서 임원에 이르고 퇴직한 후 보험회사에 자리를 잡은, 매우 평범한 직장인이자 성실한 가장이다. 그에게는 상당히 남다른 면이 몇 가지 있다. 고등학교 때 열혈 문학청년이었던 그는 문예반 지도 선생님이었던 ‘징게맹개의 시인 정양’으로부터 재능을 잘 살려보라는 뜻이 담긴 운강(雲崗, 산마루에 오래 머무르는 구름)을 필호로 받았다. 그때부터 꾸준히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저자가 얼마나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꾸준한 사람인지는 그가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지인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전달하는 ‘삼삼뉴스’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일 조간신문의 주요 기사를 요약해 브리핑해주는 삼삼뉴스를 제작하기 위해 그는 새벽 5시에 어김없이 책상에 앉는다. 언론사에서 잔뼈가 굵은 기자도 아닌 저자가 제공하는 삼삼뉴스는 올해로 만 10년이 됐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큰돈이 되는 것도 아닌 이 일을 저자는 그저 스스로의 재미로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신문이 나오지 않는 휴일에는 산과 꽃을 좋아하는 취미를 녹인 ‘야생화 스토리’를 브리핑한다.

공자님 말씀 중 인자요산(仁者樂山)이 있다. 글쓰기 못지 않게 산을 좋아하는 저자는 백두대간 753Km 종주증을 받았을 정도로 매니아급 산악인이기도 하다. 주말마다 도시 근교 산은 등산객들이 넘치지만 이들 중 백두대간을 종주한 이는 매우 드물다. 저자가 지난 육십 년의 삶을 얼마나 진지하게 살아왔는지를 대변하고도 남는다.

놀라운 일이 더 있다. 저자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됐던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합창단 에반젤 코러스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출연했던 배우이기도 하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이 일이 저자에게 가능했던 것 역시 ‘자기 자신을 위해 후회 없이 오늘을 사는’ 그의 삶의 자세 탓임이 분명하다.

삶의 진정한 선생은 저 멀리 강당보다 내 주변의 이웃에게서 찾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저자의 성씨인 면천 복씨(沔川 卜氏)의 시조는 고려건국 공신 복지겸 장군이다. 충남 당진군 면천면 초등학교의 은행나무와 면천 두견주에 복씨 천년의 스토리가 숨어있다. 면천 두견주는 2018년 4월27일 전세계를 흥분시켰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 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건배주였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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