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100일 브리핑 분석] 상황은 흔들려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1 10:00
  • 호수 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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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영웅’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100일 브리핑 키워드 전수 분석
285번의 ‘당부’ 59번의 ‘권고’ 20번의 ‘명복’

“국민과 의료진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지난 1월20일 국내 코로나19 첫 확진자 발생 후 99일째를 맞은 4월27일, 코로나 정국 100일 소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답은 짧았다. 지난날에 대한 회고도 장밋빛 낙관도 그 안엔 없었다. 전날 ‘세계 최고의 바이러스 사냥꾼’(영국 가디언)이라 극찬받은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는 물론, 질병관리본부에 대한 그 어떠한 치적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 100일, 총 65차례 이뤄진 그의 브리핑과도 닮아 있었다.

그간 집단감염 등 각종 변수로 끊임없이 상황은 흔들렸지만, 단상에 올라 이를 전하는 정 본부장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낮고 차분함을 유지하는 그의 ‘말’ 속엔 늘 힘이 실렸다. 정 본부장이 전하는 현황과 권고의 내용에 누구도 ‘감히’ 의심을 품지 않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대로 “그가 믿는 것이 곧 사실”이었다. 그 신뢰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정 본부장의 말이 가진 힘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시사저널은 지난 100일간 그의 브리핑 내용 전체를 ‘word counter’ 프로그램을 이용해 키워드 분석을 했다. 정 본부장은 1월20일 국내 첫 확진 소식을 시작으로 2월말까지 한 달여 동안 거의 매일 혼자 브리핑을 진행했다. 그러다 2월28일 권준욱 부본부장이 임명된 후부턴 권 부본부장과 하루씩 번갈아 단상에 섰다. 그렇게 그가 100일간 65차례 소화한 브리핑 분량은 A4용지로 약 200쪽, 4만여 단어에 이른다. 매번 브리핑 후 이어지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까지 포함하면 그 양은 배로 늘어난다.

ⓒ뉴스뱅크이미지

정제된 단어와 정확한 수치로 신뢰 높여

분석 결과 브리핑에서 정 본부장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당부’였다. ‘당부드립니다’ ‘당부드리며’ 등의 표현으로 총 285회 언급됐으며, 이는 ‘코로나(221회)’보다도 많이 쓰였다. ‘당부’와 주로 함께 사용된 단어는 ‘준수’ ‘협조’ ‘신고’ ‘자제’ 등이었다. ‘당부’와 비슷한 의미로 ‘권고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등의 표현 또한 각각 59회, 36회로 적지 않게 사용됐다.

두 번째로 빈도가 높은 단어는 ‘자가격리(281회)’였다. 주로 확진자 한 명 한 명의 현 상황을 설명하거나 ‘자가격리 지침을 준수해 달라’고 말할 때 반복돼 사용됐다. 그 밖에 100회 이상 쓰인 표현으로는 ‘예방(145회)’ ‘준수해(143회)’ ‘증가했습니다(137회)’ ‘대구(137회)’ ‘지역사회(127회)’ ‘자제해(109회)’ ‘격리해제(104회)’ 등이 있다.

‘마스크(99회)’ ‘손씻기(94회)’ ‘거리 두기(80회)’ ‘기침예절(60회)’과 같은 기본수칙은 브리핑마다 빠짐없이 강조됐다. 총 48회 쓰인 ‘감소했습니다’는 최근 한 달 들어 ‘치명률’ ‘환자 수’ 등의 단어와 함께 자주 등장했다. 총 22회 쓰인 단어 ‘노력’은 ‘의료진’ ‘지자체’ 등과 함께 붙어 주로 이들의 공을 높일 때 사용됐다. 전날 사망자 현황을 발표하며 빠짐없이 언급한 ‘명복’ 역시 20차례 사용됐다.

정 본부장이 자주 사용한 단어는 대개 감정이 배제된 가치 중립적 표현이 주를 이룬다. 사태의 심각성과 무관하게, 그는 늘 같은 시간을 할애해 정제된 표현들로 브리핑을 채웠다. 그는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강하고 단호한 표현과 화법을 구사해 그 효과를 배가시켰다. 대표적인 예가 총선 직전 일각에서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코로나19 검사 건수를 축소한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다. 당시 정 본부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린다. 의사의 임상적 판단에 개입하는 건 가능하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를 ‘영웅’으로 칭한 WSJ 보도에 대해서도 “코로나에 대응하는 것은 방역대책본부만의 일이 ‘절대’ 아니다”라며 겸손하면서도 강한 어조를 보였다.

브리핑마다 많게는 100여 차례씩 등장하는 각종 수치는 정 본부장의 ‘말’에 더욱 힘을 보탠다. 구체적인 현황 설명과 그 속에 녹아 있는 정확한 수치들은 그가 조직과 상황을 충분히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윤태곤 더모아정치분석 실장). 취재에 따르면, 정 본부장은 100일째 매일 오전 7시 전후 본부로 출근해 늦은 밤 관사에서까지 퇴근 없는 업무를 소화하고 있다. 모든 회의를 챙기고 긴급한 상황을 실시간 체크한다.

이러한 일상의 디테일이 그의 브리핑에 고스란히 담겼다는 평가다. 그의 브리핑과 질의응답에 좀체 ‘버퍼링’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되고 확진자 수가 늘어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정 본부장의 브리핑 속 수치들은 더욱 많아지고 또 정밀해졌다. 윤태곤 실장은 “국민이 품고 있는 체크리스트들을 충족시켜주는 브리핑”이라고 평가했다.

메시지·스피치·이미지 등 시사저널이 만나본 각 분야 전문가들 또한 위기를 애써 숨기지 않고 결코 쉽게 낙관하지 않는 정은경 본부장의 일관성과 솔직함을 신뢰의 주 근원으로 지목했다. 그는 확진자가 급증했을 당시 “감염력이 높고 전파속도가 빠르다”며 상황을 그대로 전했고, 하루 확진자 수가 한 자릿수를 기록했을 때도 “안심할 수 없다”며 손 씻기, 기침 예절 등 예방수칙을 이전과 다름없이 강조했다. 이는 일관되지 않거나 제한된 정보를 전달하던 과거 재난 상황에서의 메신저들과 뚜렷한 차별점으로도 꼽힌다. 그가 부지런한 관리자인 동시에 기술적인 메신저로도 평가받는 이유다.

 

부지런한 관리자이자 기술적인 메신저

전문가들은 정 본부장의 이러한 강점이 그를 둘러싼 여러 ‘비언어적’ 요소와 맞물려 더욱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얗게 센 머리와 수척해진 얼굴, 내용에 더욱 안정감을 주는 목소리 톤이 그것이다. 이 요소들이 어우러져, 보는 이들에게 편안함과 더불어 정 본부장의 진심 또한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역시 단단한 메시지가 뒷받침했기에 얻을 수 있는 시너지란 분석이다. 아무리 낮은 톤에 수수한 외양이어도 그 내용이 부실하거나 뭔가 감추는 느낌을 줬다면 전혀 발휘되지 못했을 것이란 의미다(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장). 실제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으로서 브리핑에 임했을 때, 그는 지금과 비슷한 외양과 음성임에도 제한된 정보 전달로 오히려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메시지 전략가인 유승찬 미디어닷 대표는 또 하나, 정제된 말들 속에 담긴 정 본부장의 뛰어난 ‘공감 능력’에도 주목했다. 그는 코로나 시국을 겪는 국민과 의료진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의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국민의 우울과 답답함을 언급하며 서로 간 격려를 당부했고, ‘학생들이 예전처럼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적 거리 두기의 협조를 바랐다. ‘마스크 자국이 선명한 의료진의 얼굴을 떠올려주길’ 부탁하기도 했다. 그가 지난 65회의 브리핑에서 유독 ‘당부’의 말을 많이 사용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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