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데 ‘38도’? 코로나 틈탄 체온계 불법 판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4 16:00
  • 호수 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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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 불안 속 무허가 제품 거래 판쳐…‘산업용 온도계’ 끼워 팔기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틈타 일부 업자들이 무허가 체온계로 부당이득을 취한 정황이 포착됐다. 정부가 해외 직구(직접구매) 빗장을 풀자, 국내 인증을 안 받은 체온계로 대규모 장사에 나선 것이다. 심지어 산업용 온도계를 체온계로 속여 파는 경우도 발견됐다.

옥션, G마켓, 11번가 등 온라인 오픈마켓에는 수천 개의 체온계 판매 링크가 올라와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국내 정식 수입이 아닌 해외 직구를 통해 판매되고 있었다. 이 자체가 위법은 아니다. 직구한 150달러 이하의 체온계·마스크·손소독제는 수입 신고를 안 해도 된다고 관세청이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6월말까지 유효하다. 코로나 사태로 국내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린 특단의 조치다.

정식 의료기기 판매업자는 식약처 고시에 따라 ‘광고심의필’ 마크를 광고에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시사저널 포토
정식 의료기기 판매업자는 식약처 고시에 따라 ‘광고심의필’ 마크를 광고에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시사저널 포토

수입 문턱 낮아지자 불법 장사 횡행

단 이는 본인이 소량 구입해 쓰기 위한 ‘자가 사용’ 목적일 때만 가능하다. 개인이 대량 직구해 재판매하는 것은 금지된다. 한 체온계 직구 대행업자는 이와 관련해 “자가 사용 목적으로 구매 바랍니다” “개인당 1개씩 통관 가능”이라고 미리 공지했다.

반면에 이러한 공지 없이 1인당 여러 개를 구입할 수 있게 해둔 업자도 있었다. 아예 ‘대량 구매는 따로 문의 달라’ ‘대량 구매 가능합니다’라고 공공연히 밝힌 업자도 눈에 띄었다. 기자가 해당 업자에게 대량 주문 절차에 대해 물었다. 중국인이라고 밝힌 그는 “1000~2000개 구입도 가능하다”며 “세관을 통과하려면 절차가 까다로운데 우리는 다 해결했다”고 말했다. 정식 수입 여부를 묻자 즉답을 피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개인이 정식 수입신고 없이 대량으로 물건을 들여오면 통관 단계에서 막힌다”며 “밀수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체온계 직구 대행업자 중엔 “미국 FDA와 유럽 CE 인증을 받았다”고 강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인증서도 함께 게재돼 있지만, 이는 국내에서 팔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외국 기관의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 국내 인증을 받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체온계는 의료기기법상 의료기기로 분류된다. 업자가 정식으로 수입·판매하려면 수입업 허가와 수입 허가를 따내야 한다. 또 판매 제품은 식약처로부터 의료기기 품목 인증을 받아야 한다. 식약처가 인증한 체온계의 모델은 총 140여 다. 시사저널이 해당 목록에서 온라인 판매 중인 중국 Q사·P사의 체온계를 찾아봤다. 이들 제품은 FDA와 CE 인증을 받았다고 광고 중인 제품이다. 하지만 둘 다 목록에서 검색되지 않았다. 무허가 의료기기 판매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위법행위다.

의혹도 제기된다. 중국 B사의 한 체온계는 국내 오픈마켓에서 개당 7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알리바바에선 같은 모델의 가격이 20~35달러(2만5000~4만3000원)다. 배송비 14달러(1만7000원)를 포함해도 최대 6만원이다. 즉 국내 업자들이 적어도 1만원의 이익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9만원을 붙여 15만원에 내놓은 업자도 있었다. 보통 중국 직구 대행업자들이 물건값의 10%를 수수료로 정하는 걸 감안하면, 2~4배가 넘는 이득을 챙긴 셈이다.

국내 의료기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중국산 무허가 체온계는 AS가 안 되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관련 당국에서 손을 놓은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시장에 (무허가 체온계가) 너무 많이 깔려 있다”고 꼬집었다. 시사저널이 무허가 체온계를 판매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이트의 링크를 식약처에 전달하자 식약처는 “무허가 판매로 확인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식약처 관계자는 “사이버 감시팀에서 계속 불법 판매 상황을 점검하고 있지만, 제품이 워낙 많이 쏟아지다 보니 일일이 확인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조업자나 수입업자가 무허가 제품을 팔다 적발되면 행정처분을 할 수 있고, 유통업자의 경우 검찰에 고발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불법 판매를 묵과한 오픈마켓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단 현행법으론 책임을 묻기 힘들다. 무허가 의료기기 판매와 관련해 법적 책임을 지는 쪽은 ‘판매업자’다. 반면에 오픈마켓은 ‘판매중개업자’로 판매 책임과 거리가 멀다. 대표적 오픈마켓인 옥션과 G마켓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 관계자는 “부적절한 판매 행위는 제재를 가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체온계 해외 직구 대행업자의 대량 판매에 관해선 “당국이 위법이라고 판단하면 당연히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4월29일 옥션, 티몬, 11번가, G마켓 등 각종 오픈마켓에서 판매 중인 체온계. 이들 제품의 모델명은 식약처 인증 목록에서 검색되지 않았다. ⓒ오픈마켓 캡처
4월29일 옥션, 티몬, 11번가, G마켓 등 각종 오픈마켓에서 판매 중인 체온계. 이들 제품의 모델명은 식약처 인증 목록에서 검색되지 않았다. ⓒ오픈마켓 캡처

오판 가능성 큰 ‘온도계’ 위장 판매

한편 산업용 온도계가 체온계로 둔갑해 팔리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네이버 쇼핑몰에서 ‘체온계’로 검색되는 상품 중엔 총 모양의 레이저 온도계가 있다. 상품 이름은 체온계지만, 이는 엄연히 의료기기가 아니다. 식당 등에서 원거리 온도를 측정할 때 쓰는 산업기기다. 판매자는 상품 설명을 통해 “산업용이지만 의료용 체온계가 품절인 상태에서 임시방편으로 구매하는 분이 많다”며 “이 제품이 나은 대안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용 온도계는 물체의 표면 온도를 재도록 만들어졌다. 그런데 체온은 피부 겉면의 온도가 아니라 몸의 내부 온도(심부체온)를 뜻한다. 산업용 온도계로 정확한 체온을 확인할 수 없는 이유다. 오차범위도 1~1.5도 정도로 미열을 재기에 적절하지 않다. 의료용 체온계는 오차범위가 약 0.2~0.3도다.

피해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제품 모델명을 확인한 뒤, 이를 ‘식약처 의료기기 제품정보’ 사이트(emed.mfds.go.kr/#!CECAB01F010)에서 검색해 보는 게 좋다. 이를 통해 의료기기 인증 여부를 알 수 있다. 제품 설명란에 모델명이 없다면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광고심의필’ 마크 여부를 체크하는 간단한 방법도 있다. 정식 업자는 제품을 팔 때 의료기기광고사전심의위원회 규정에 따라 해당 마크를 표시하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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