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레미콘업체 담합 ‘솜방망이 처벌’ 논란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고비호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9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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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권 6개 업체·협의회, 가격·점유율 담합 ‘덜미’
공정위, 과징금 부과·형사 고발 않고 ‘시정 명령’

전남 해남군 소재 6개 레미콘 업체와 관련 협의회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레미콘 가격과 시장점유율을 제멋대로 담합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위의 제재인 시정명령을 내려 유사 사건으로 처벌받은 타 지역 업체들이 과징금 부과와 형사고발을 당했던 것을 감안하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멋대로 가격 ‘짬짜미’

4월 29일 공정위에 따르면 자신들이 정한 가격 밑으로는 레미콘을 팔지 않겠다고 담합한 업체는 남부산업, 금호산업, 일강레미콘, 남향레미콘, 동국레미콘, 삼호산업 등 6곳이다. 여기에 해남권레미콘협의회가 가담했다. 이들 업체와 해남권레미콘협의회는 지난 2017년 11월 민간업체와 거래하면서 레미콘 판매가를 1㎥당 7만8000원 이하로 판매하지 않기로 합의한 뒤 그해 12월부터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공정위는 이를 공정거래법상 ‘부당 가격경쟁 제한’으로 판단했다.

이뿐만 아니다. 이들 6개 업체와 협의회는 시장점유율도 임의로 정했다. 업체 간 수주경쟁을 하지 않고 물량을 배분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들은 2014년 5월 해남권 레미콘 시장 내 업체별 시장점유율을 임의로 정했다. 2015~6년 남부산업, 금호산업, 일강레미콘, 남향레미콘 등 4개 업체와 동국레미콘, 삼호산업 등 2개 업체의 시정점유율 결정비율은 18.3% 대 13.4%(전체 100%)이었다가 2017년에 17.6% 대 14.8%로 조정됐다. 

 

“순위 정하자” 점유율 담합 

해남권 6개 업체와 협의회는 이를 기준으로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각 업체의 레미콘 출하량 과부족을 따졌다. 그 결과 비율을 초과한 사업자들에겐 1㎥당 1만원을 징수했고, 미달한 사업자에겐 1㎥당 7000원을 지급했다. 남은 3000원은 적립해 회비로 사용했다. 해남권레미콘협의회의 2015~18년까지 예산규모는 2억원 가량에 달한다. 공정위는 이러한 행위가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행위 금지, 사업자단체 행위 금지 등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

이처럼 법 위반 정도가 심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부과 내지 형사고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왔으나 시정명령으로 마무리됐다. 공정위의 제재조치에는 법 위반 경중에 따라 경고·시정명령·과징금 부과·형사고발 등이 있다. 일각에선 업체들 간의 일반적인 담합 수준을 뛰어넘어 해남권레미콘협의회가 가담해 주도했다는 점에서 여타 사안보다 더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이들 업체들은 담합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고도 과징금과 형사 고발을 면했으니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 수 밖에 없다. 이들 6개 업체가 공정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동안 총 매출 1452억여원에 17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공정위가 명백히 법을 위반한 레미콘업체들에게 너무 관대하다는 지적을 한다. 실제 공정위는 2018년 4월 인천시 및 경기 김포시 소재 26개 업체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156억9500만원을 부과하고, 26개 업체(법인)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 업체는 중소건설사에 판매하는 레미콘 가격을 권역별로 공동으로 정하고, 일부 권역에서 건설현장 레미콘물량을 배분하기로 합의했다. 일부에선 해남 업체들이 이 같은 처벌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레미콘업체들이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하자 법 위반 사실을 인정하고, 즉각 중단한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진 중단으로 선처를 호소함으로써 일종의 자진신고자감면제에 준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레미콘 가격 담합 해남권 6개사 현황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레미콘 가격 담합 해남권 6개사 현황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공정위 관대한 처분 놓고 ‘뒷말’ 무성

지역사회에서는 공정위의 석연찮은 제재조치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일부에선 공정위가 온정주의에 흘러 봐주기 처분을 했거나 사건이 커질 것을 우려해 시정명령 선에서 마무리 짓고 덮으려고 한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까지 제기됐다. 자칫 사건이 확대될 경우 피해자인  중소건설사와 지역 주민들이 반발과 소송 등에 나설 수 있어 가벼운 처벌 형식을 갖춰 사건을 어물쩍 넘기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가격 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 전속 고발권은 가진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으면 검찰은 혐의를 포착했다고 하더라도 기소를 못한다. 또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는 법원의 1심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검사 역할을 하는 전국의 지방공정거래사무소가 과징금 부과를 상정하면 재판부격인 위원회 위원들이 결정하는 구조다.  

이 같은 시선에 대해 공정위 측은 “전혀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항변했다. 공정위 광주지방공정거래사무소 관계자는 이날 오전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전례인 인천·경기 지역처럼 과징금과 형사 고발 등 더욱 강경한 처분을 내리지 않은 이유를 묻자 “애초 (광주지방사무소는) 과징금 부과를 상정했으나 위원회가 해남의 경우 군단위 내에서만 위반행위가 이뤄져 상대적으로 인천·경기 등에 비해 경제규모나 피해 정도가 작아 경쟁제한성 자체가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답했다. 담합행위가 미치는 경제 규모를 따져 제재조치 수위가 결정됐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다소 의외지만 위원들도 고심 끝에 (업체들이) 조사 중 법 위반 행위를 중단하고 적극 협조한 측면 등을 두루 참작해서 앞으로 같은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행위 금지명령을 조치한 것 같다”며 “이번 제재는 해남지역 내 담합 관행을 시정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해남 지역사회의 시선은 차갑다. 지역에서 사업기반을 닦아온 업체들이 조직적인 가격담합은 주민에 대한 배신행위로 매우 부도덕한 일이라는 것이다. 법 위반의 심각성에다 부정적 지역 정서까지 감안한다면 최소한 과징금 부과는 물론 형사고발이 불가피하다는 게 해남 시민사회단체의 시각이다. 이들은 “향토기업인 레미콘업체들의 노골적인 가격 담합으로 중소건설사는 물론 지역 주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는데도 시정명령에 그친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어 이번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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