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6 14:00
  • 호수 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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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력 확보 위해 ‘무상감자’ ‘지주사 마법’ 등 온갖 방법 동원해 뒷말

한솔그룹은 범삼성가(家)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녀 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1993년 삼성그룹에서 한솔제지(옛 전주제지)를 분리해 그룹 규모로 일궈냈다. 2018년 자산이 5조원 미만으로 줄면서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됐지만, 2000년까지만 해도 재계 서열 11위까지 올랐던 그룹이다.

현재 그룹의 지휘봉은 이 고문의 삼남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이 쥐고 있다. 문제는 그룹에 대한 지배력이 약하다는 점이다. 조 회장은 2001년 이미 후계자로 낙점됐다. 그러나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지주사인 한솔홀딩스의 조 회장 지분율은 10.28%에 불과했다. 오너 일가 전체의 지분을 합쳐도 21.82%가 전부였다.

대표이사 교체 등 특별 결의사항 추진을 막아내기 위해 33.3%를 넘는 지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부 공격에 취약한 상황이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조 회장의 최대 과제가 지분 확보라는 견해가 많았다. 조 회장 역시 이를 의식한 듯 지배력 확대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논란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주주 가치 높이기 위한 조치일 뿐”

오는 5월4일로 예정된 한솔홀딩스의 무상감자가 대표적이다. 한솔홀딩스는 올해 3월30일 자사주 517만5102주를 소각하고 남은 보통주 4200만8577주를 대상으로 주식 병합 없이 액면가를 기존 5000원에서 1000원으로 낮춘다는 내용의 무상감자안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한 바 있다.

소액주주들로 구성된 한솔소액주주연대(이하 연대)는 이를 조 회장의 한솔홀딩스 지분율 확대를 위한 결정으로 판단했다. 이 안건이 가결되면 조 회장은 자사주 소각으로 지배력 확대는 물론, 감자를 통해 발생하는 감자차익(1939억원)을 배당받아 지분 확보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향후 주주들의 동의 없이 유상증자를 실시해 저가로 지분을 대량 확보할 수 있는 길도 함께 열리게 된다. 상법상 유상증자를 포함한 신주 발행은 이사회에 결정 권한이 있다. 그러나 액면가 미만의 신주 발행은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주식 액면가가 5000원인 상황에선 유상증자를 위해 주주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무상감자가 진행된 이후엔 신주 1주당 가격이 1000원만 넘으면 이사회 의결만으로도 유상증자가 가능해진다. 조 회장이 소액주주들의 저항 없이 저가로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율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솔홀딩스는 무상감자안이 배당 가능이익을 늘려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조치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솔그룹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유상증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무상감자와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주가치 제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액주주들은 이런 시나리오대로 흘러갈 경우 주주가치가 크게 훼손될 수도 있다며 한솔홀딩스에 불신의 눈초리를 보냈다. 과거 비슷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6년 한솔제지에 합병된 옛 한솔아트원제지는 2013년 3월 주총에서 감자 안건을 통과시킨 직후 유상증자를 실시한 바 있다.

결국 표 대결에 돌입했다. 연대는 주주들로부터 위임장을 모집해 무상감자에 적극적으로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주주총회 당일 조 회장 측과의 표 대결에서 밀리면서 무상감자안은 결국 가결됐다. 연대는 이번 무상감자가 향후 유상증자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일 것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공익재단’도 지배력 확보에 동원

조 회장은 그동안 지배력 확보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 왔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주식시장이 급락장을 맞은 상황에서 한솔홀딩스 주식을 공격적으로 매수했다. 그 결과 조 회장은 한솔홀딩스 지분 3.09%를 44억원에 매입해 지분율을 13.37%까지 늘렸다. 조 회장은 지난해 한솔홀딩스 주가가 액면가 밑으로 떨어졌을 때도 주식 확보에 열을 올렸다. 조 회장은 그해 7월과 8월 한솔홀딩스 지분 0.37%(9억원)와 0.96%(20억원)를 각각 사들인 바 있다.

오너 일가의 자사주 매입은 주주 및 투자자들에게 호재로 받아들여진다. 그룹 경영실적에 대한 자신감 표출로 해석돼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 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 회장의 자사주 쇼핑을 바라보는 연대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지분 매수에 필요한 재원을 과도한 급여로 충당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조 회장은 그동안 고액연봉 논란에 시달려왔다. 그는 2018년 주력 계열사인 한솔제지와 한솔홀딩스로부터 각각 29억9000만원과 7억4800만원을, 지난해 상반기에는 23억3100만원과 5억8200만원을 지급받았다. 특히 조 회장은 한솔제지의 미등기임원이었다. 이사회에 참여하지도 않고 법적 책임도 없으면서 오너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등기임원인 이상훈 대표보다 5~6배 많은 보수를 받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이와 관련해 한솔홀딩스 관계자는 “현재 이사 보수 한도는 그 수준과 실제 보상지급액이 적정하고 성과 보상 체계와 연계돼 적절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액주주들 사이에선 한솔홀딩스가 흑자를 내고 있음에도 주주들에게 배당을 실현하지 못하는 배경을 두고 조 회장의 고액연봉과 연관 짓는 시선이 적지 않다. 소액주주연대가 올해 초 배당 요구 대신 이사 보수 한도를 기존 4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는 안건을 주주제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 회장은 또 지배력 강화를 위해 공익재단을 활용하기도 했다. 지난해 초 작고한 이 고문의 지분 5.62%를 한솔문화재단에 증여한 것이다. 이를 통해 한솔문화재단이 보유한 한솔홀딩스 지분율은 7.04%로 증가했다. 이는 상속세 부담을 피하면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동안 재벌가에서 애용해 온 방식이다.

만일 조 회장이 정상적으로 이 고문의 지분을 상속받았으면 막대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공익재단에 증여된 이 고문의 지분은 당시 시가로 120억원을 상회한다. 관련법상 30억원 이상 상속에 최대 50%의 세율이 적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60억원 이상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반면에 공익재단에 대한 증여는 5%까지 비과세다. 결국 이 고문 지분의 경우 5%를 초과하는 0.62%에 대해서면 세금이 부과되고, 그마저도 한솔문화재단이 납부하면 된다. 지분은 재단으로 넘어갔지만 의결권은 여전히 조 회장에게 있다. 한솔문화재단의 대표자가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왼쪽)은 한솔홀딩스 지분율이 낮아 그룹에 대한 지배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뉴시스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왼쪽)은 한솔홀딩스 지분율이 낮아 그룹에 대한 지배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뉴시스

적은 지분으로 지배력 확보 위한 ‘지주사 마법’

앞서 조 회장은 적은 지분으로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이른바 ‘지주사 마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는 2015년부터 순환출자 구조이던 지배구조를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주력 계열사인 한솔제지를 투자사업 부문인 한솔홀딩스(존속법인)와 제지사업 부문인 한솔제지(신설법인)로 인적분할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그 뒤 계열사인 한솔로지스틱스와 한솔라이팅, 한솔PNS도 투자부문을 분리해 한솔홀딩스에 합병시켰다.

특히 조 회장은 한솔홀딩스를 지배하던 한솔로지스틱스의 투자부문을 분할해 한솔홀딩스와 합병하는 과정에서 한솔홀딩스 지분을 확보했다. 한솔로지스틱스 사업부문 지분을 한솔홀딩스에 현물출자하는 대신 한솔홀딩스 신주를 받은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 회장은 ‘한솔홀딩스→한솔PNS→한솔인티큐브→기타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섰고, 3%대이던 한솔홀딩스 지분율도 8%대까지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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