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쉽게 취소할 수 없는 이유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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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00주년 맞은 세계 최대 흥행 음악축제
7월 개막 앞두고 오스트리아 정부 개막 여부 고심 중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음악축제 중 하나다. 2020년 올해는 100주년을 맞이해 연초부터 관심이 더욱 뜨거웠다. 코로나19 사태로 유럽의 많은 축제들이 취소되고 있는 가운데, 7월17일 개막을 앞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6월 말까지 모든 공연을 금지하면서, 본격적인 여름축제에 앞서 5월 말에 예정돼 있었던 부활절 페스티벌(Whitsun Festival)은 일찌감치 취소가 됐다.

잘츠부르크가 음악도시로서 가지고 있는 명성은 절대적이다. 그 명성은 모차르트와 폰 카라얀이라는,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세계 최고의 음악가들을 배출한 도시라는 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도 뮤지컬로 꾸준히 상연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라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1965년 작품이지만 여전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어 방문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메인 공연장인 대축제극장의 외관 ⓒ김지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메인 공연장인 대축제극장의 외관 ⓒ김지나

음악도시 정신 압축해놓은 집적체

1920년부터 시작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이 고전적인 음악도시의 스케일과 정신을 압축해 놓은 집적체다. 축제가 열리는 장소만 해도 16곳이며, 공연의 수는 200개에 달한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축제기간 동안 전 세계 80여 나라의 사람들이 이 음악축제를 즐기기 위해 잘츠부르크를 방문하고 있다. 작년에는 역대급으로 흥행성적을 올려, 지나온 역사만큼이나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페스티벌이다. 그런 축제가 100주년을 맞이했으니, 아무리 전염병의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할지라도 쉽사리 취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100년 역사는 세계적인 예술 도시를 꿈꾸며 한 편의 연극을 중앙광장에서 상연한 것이 시작이었다. 야외 공연으로 한 이유는 극장을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920년 8월22일, 그렇게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에서 연극 《예더만(Jedermann)》이 올려졌다. 이 작품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매년 축제 개막일에 공연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역사와 권위를 재확인하는 상징적인 이벤트인 셈이다.

축제의 역사만큼 공연장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메인 공연장인 대축제극장(Grosses Festspielhaus)은 묀히스베르크 산을 깎아서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충분한 무대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는데, 무려 5만5000㎥의 바위들을 폭파시켜 없애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공연장인 ‘펠젠라이트슐레’도 명소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 사람이라면 폰 트랩가의 가족들이 나치를 피해 도망가기 위해서 노래를 부르며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 장소가 바로 ‘펠젠라이트슐레’다. 원래 승마학교로 이용되던 것을 리모델링해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공연장에 얽힌 특별한 사연들은 이곳에서의 경험을 더욱 다채롭게 만드는 촉매제가 된다.

이렇듯 잘츠부르크는 관광객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요소들이 다분하다. 위대한 음악가의 생가가 있고, 대히트를 친 영화의 찰영 장소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게다가 휴가시즌에 맞춰 도시 전체에서 대규모의 축제가 펼쳐진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은 덤이다. 이 중 하나만 있어도 관광지로 성공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기에 잘츠부르크는 매해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오버투어리즘’의 도시이기도 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메인 공연장인 대축제극장. 무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산의 암벽을 깎아내어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김지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메인 공연장인 대축제극장. 무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산의 암벽을 깎아내어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김지나

관광객 흡수하는 문화 축제의 ‘롤모델’

하지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이 도시의 자산들이 단지 ‘관광’으로 가볍게 소비되지 않도록 한다. 프로그램은 양적으로도 풍성하지만 오페라, 교향악, 연극 등 높은 수준의 콘텐츠들로 클래식의 진수를 보여준다. 축제가 펼쳐지는 물리적인 공간들은 음악도시로서 잘츠부르크의 오랜 역사와 예술적 야심을 환기시키는 장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음악을 즐기는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관광객을 위해 축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관광객이 축제의 문화 속으로 포섭되는 것이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평화의 첫 번째 행위(one of the first deeds of peace)’로 시작된 것이었다. 올해 축제가 열리지 않으면 아무렴 어떤가. 그 다음해가 된다 할지라도, 전염병과의 지루한 싸움을 끝내고 다시 한 번 세계의 평화를 기념하는 장이 된다면 이보다 더 100주년을 축하하기에 적합한 기획은 없을 것이다. 수많은 문화축제들의 롤모델로서 또 하나의 인상적인 전례를 남기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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