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가 묻는다 ‘재정지출 어떻게 할까’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4 08:00
  • 호수 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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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건전성·예타 논란 속 빠른 대응은 과연 가능할까

올해 초 많은 전망이 나왔다. 전문가들이 숱한 밤을 지새우며 만든 보고서들은 지금 다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를 위한 시나리오에서나 언급되던 바이러스성 질병이 전 세계적으로 창궐했기 때문이다. 중국 어느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회성 사건인 줄 알았던 감염병은 ‘코로나19’라는 이름을 달고 전 세계를 휘젓고 있다. 

확실한 치료제도, 백신도 없는 상황에서 대다수 정부는 가장 원시적이면서 가장 확실한 조치인 ‘봉쇄’와 ‘이동 제한’을 시행하고 있다. 비록 많은 사망자를 냈지만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이런 조치로 인해 일단은 어느 정도의 수습 국면이다. 

그러나 경제는 사상 유례없는 대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사람의 이동과 물자의 교류가 차단되는 상황은 소비활동을 극단적으로 위축시킴으로써 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 및 정부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을 살포하고 있다. 좌파 일각의 주장으로 치부되던 전 국민에 대한 현금 지급이 순식간에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은행의 대폭적 금리 인하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각종 조치가 나오고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긴급자금 지원이 결정됐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규모도 속도도 뒤처졌지만 그래도 전례 없는 규모의 재정지출이 이뤄졌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직접적인 혜택을 받은 경험이 없는 많은 국민에게 새삼 국가와 공공부문의 존재를 일깨워주고 있다.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명분으로 등장한 예비 타당성 조사는 신속한 사업의 집행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명분으로 등장한 예비 타당성 조사는 신속한 사업의 집행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어디에 쓸 것인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재정 투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지만 정작 ‘어디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명확한 합의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무제한의 재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 어떻게’ 써야 효과가 있을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자주 언급되는 ‘추경’은 추가적인 재정지출을 의미하는데 막상 돈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추경은 임시적 조치라 한 번의 지출로 경제에 큰 파급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며, 향후 지속적인 지출로 연결돼서는 안 된다. 또 사업 관리의 용이성을 위해 다수의 소규모 사업보다는 소수의 대규모 사업이 선호된다. ‘삽질 예산’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추경 때마다 SOC 사업이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은 과거의 경기순환적인 차원의 경기 침체와 다르기 때문에 예산의 사용처를 결정하는 것은 더 중요해졌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을 상대적으로 잘 극복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 독일, 중국이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제조업 강국이라는 점이다. 자국 내에서 필요한 물건을 생산·조달할 수 있다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결정적 유리함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국제무역의 셧다운 상황은 우리 제조업과 일자리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 제조업은 좋은 일자리의 원천이며,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의 버팀목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현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제조업이 일정 수준으로 가동되도록 재정을 통해 인위적으로 수요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수요를 통해 만들어진 생산품으로 사회를 좀 더 안전하고 좋게 만들 수 있다면 더 좋다. 이런 대상을 찾아 정부와 지자체, 공공부문이 인위적으로 수요를 만들어줘야 한다.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국민이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에 대한 투자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지하철 및 철도 차량의 대량 발주는 일감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는 로템과 협력업체에 단비가 될 것이다. 섬과 육지를 오가는 여객선들을 교체한다면 일감이 없어 놀고 있는 조선소, 특히 중소 규모 조선소에 일감을 만들어줄 수 있다. 고용을 유지하고, 산업의 기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제조업 분야에 대한 수요 증대에 과감한 투자가 요구된다. 

 

어떻게 쓸 것인가?

그렇지만 막상 돈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철도 차량을 발주하려 해도, 새로운 인터넷망을 구축하려 해도, 친환경 자동차를 보급하려 해도, 선박을 새로 만들려고 해도 예산 투입의 효율성을 따지는 ‘예비 타당성 조사(예타)’를 거쳐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명분으로 등장한 예타는 신속한 사업의 집행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꼭 해야 할 것 같은 절차지만 OECD 국가 가운데 모든 국가사업에 대해 예타 같은 평가 절차를 진행하는 국가는 우리밖에 없다. 

지난해 일부 SOC 사업을 대상으로 예타 면제 조치가 취해졌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올해부터 일정기간 동안 예타 제도를 한시적으로 중단하는 등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아울러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한 각종 심의, 평가 절차 등도 한시적으로 중단하거나 통폐합해 빠르게 재정 투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류상으로는 돈을 쓴다고 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돈 구경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바로 긴급지원금을 둘러싼 논쟁에서 드러난 예산 당국의 과도한 권한이 적절한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강화된 예산 당국의 권한은 20년이 지나면서 기득권이 됐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부처, 정치권, 심지어 청와대까지 예산 당국의 눈치를 보게 됐다. 예산의 효율적 편성과 집행은 필요하지만 그것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예산 당국이 쥐고 있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예산 범위를 부처별로 총액으로 할당하고, 부처별로 장관 책임하에 집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행정부 내 대다수 부처는 예산 당국의 눈치를 보면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게 됐다. 각 부처가 장관 책임하에 자율성을 발휘해 필요한 일을 빠르게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 

모두가 사고의 전환을 말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람과 조직을 바꿔야 한다. 새로운 일을 잘할 조직과 체계를 만들고, 새로운 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계기로 코로나 사태를 활용해야 한다. 

위기는 예고 없이 온다. 위기들은 기존의 통념과 관행을 무력화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세계화를 가져왔고, 외환위기는 재정 건전성에 대한 강박을 가져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위기 상황에 등장한 조치와 정책들은 일상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이제 다시 변화를 도모할 때가 됐다. 급격한 변화와 위기 때마다 그것을 기회로 만들어 한발씩 앞으로 나가던 우리의 본능을 되살릴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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