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밤중 “우르르 쾅” 지진에 흔들리는 해남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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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간 54번 지진 난 해남 산이면 가보니
“이러다 더 큰 지진 나는 것 아니냐” 불안
공포에 떠는 해남…“원인부터 규명돼야”

국토 최남단 전남 해남이 흔들리고 있다. 빼어난 풍광과 질 좋은 황토밭에 나는 농산물을 자랑하는 해남 서북서 지역이 지진 공포에 떨고 있다. 4일 오후 3시 30분께 도착한 해남군 산이면 부동리 마을회관. 전날 발생한 지진의 진앙지 주변이라곤 밉기지 않게 여느 농촌 풍경처럼 평화로웠다. 마을회관 건너편 상점은 연로한 주인이 한가롭게 가게를 지키고 있었고, 간헐적으로 지나가는 트럭을 제외하고는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쾌청한 날씨에 평온한 모습의 보리밭은 적막함을 더했다.

“보리밭 아래서 무슨 일이?” 5월 4일 오후 최근 잇따라 지진이 발생한 전남 해남군 서북서쪽 21㎞ 지역 간척지 보리밭이 평온한 모습이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26일 규모 1.8 지진을 시작으로 이날 오전 11시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54차례 지진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보리밭 아래서 무슨 일이?” 5월 4일 오후 최근 잇따라 지진이 발생한 전남 해남군 서북서쪽 21㎞ 지역 간척지 보리밭이 평온한 모습이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26일 규모 1.8 지진을 시작으로 이날 오전 11시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54차례 지진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평화롭던 마을 뒤덮은 ‘지진 공포’

하지만 땅속 상황은 달랐다. 바다와 인접한 간척지이자 현재 농경지로 활용되는 해남군 산이면 부동리 흑두마을 일원인 서북서쪽 21㎞ 지역에서는 지난달 26일 규모 1.8지진을 시작으로 이날 오전 11시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54차례 지진이 끊임없이 났다. 42년간 한 번도 지진을 겪어보지 못했던 상당수 마을 주민들은 전날 밤 10시 7분께 3.1규모 지진 발생에 아찔한 체험을 했다.

부동리 상동마을 노인정 앞에서 만난 김준호씨는 3∼4초가량 집안 전체가 좌우로 흔들린 뒤 “꽝”하고 마치 천둥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80대 초반의 그는 “어린 시절에도 간혹 지진이 일어났으며 그때마다 마을 앞 논밭에서 꿩 울음소리가 들리곤 했다”며 “그 뒤 이런 지진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쾅’하는 굉음…집안 전체가 흔들렸다”

때마침 농삿일을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주민 이 아무개(53)씨는 “침대에서 TV를 시청하고 있어서 지진 진동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10여분 후에 ‘지금 지진 났는데 밖으로 당장 피하지 않고 뭐하고 있느냐’는 광주에 사는 딸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실감했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영문을 몰라 잠에서 깬 뒤 기상청의 긴급재난문자를 보고서야 지진이 발생한 사실을 알았다. 인근 구성리에서 만난 주민 김상문(50)씨는 “한밤중에 폭격기가 지나가는 것 같은 굉음으로 집안 전체가 흔들리는 것에 놀라 잠에서 깼는데, 2~3분 뒤 지진이 났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고 했다.

주민들 마음의 평화도 깨졌다. 부동리 마을 주민들의 ‘지진 공포’는 현재진행형이었다. 지난달 28일(규모 2.1)과 지난달 30일(규모 2.4), 지난 2일(규모 2.3)만해도 지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기상청이 통보하는 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잇따랐음에도 직접적인 지진 피해를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해남군 산이면 부동리 상동마을 주민 김준호(82)씨가 최초 지진 진앙지로 지목한 보리밭 부근에서 3일 오후 지진 발생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해남군 산이면 부동리 상동마을 주민 김준호(82)씨가 최초 지진 진앙지로 지목한 보리밭 부근에서 3일 오후 지진 발생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지진 공포 현재진행형

하지만 3.1 지진을 겪은 이후 주민들도 점차 동요하고 있다. 발생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지진 규모(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있어서다. 상동마을 주민 김준호씨가 최초 지진 진앙지로 지목하고 취재진을 안내한 곳은 자신의 집에서 불과 100m 떨어진 보리밭이었다. 그는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으나 지난달 하순께 낯선 외지인 2명이 이 주변을 서성거리는 것을 목격했다”며 “당시에는 외지인 밭주인이 단순히 둘러보기 위해 온 것으로 알았으나 뒤에 (그 사람들이) 기상청 직원이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김씨가 사는 부동리 상동마을 주변에서 첫 지진 발생 이후, 후속 지진이 이곳으로부터 2km 가량 떨어진 흑두 마을 등 주변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규모도 커지고 있다. 규모 1.8의 첫 지진 이후 네 차례에 걸쳐 2,0이 일어났으며, 이날은 3.1에 이어 2.0 이하의 작은 지진이 10여건 발생했다. 특히 이날 지진은 지난 1월30일 경북 상주에서 발생한 지진(규모 3.2) 이후 올해 들어 두 번째로 강한 지진이다.

 

지진 원인 미스터리도 불안감 키워

전남 해남 지진 진앙인 서북서 21km 지점 위치도 ⓒ기상청
전남 해남 지진 진앙인 서북서 21km 지점 위치도 ⓒ기상청

미스터리인 지진의 원인도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통상적으로 지진은 단층이 있어야 발생하는데 해남은 아직 단층의 존재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해남은 1978년 기상청이 공식적으로 계기 관측을 시작한 이래 단 한 차례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아 단층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 주민들 사이에선 “잦은 지진이 대규모 지진 발생의 전조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구성리에 사는 김민원(51)씨는 “해남에서 처음겪는 일이다 보니 주민들이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며 “정부 당국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우선 원인을 면밀하게 규명해서 잘 대처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큰 지진이 날 경우 재난사고에 대한 걱정도 크다. 벽돌과 흙으로 지어져 오래되고 낡은 다수의 마을주택이 대규모 지진 발생시 대부분 붕괴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다. 앞서의 상동마을 두 주민은 이구동성으로 “3.1보다 강한 지진이 한 번 더 오면 건물이 주저앉을 것 같다”며 “건물 붕괴로 인한 주민 인명사고 등에 대해서 군청 등 관계당국이 미리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상청도 해남에 지진이 집중된 데다 규모도 점점 세지고 있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와 해남군 재난관리팀은 이날 오후 지진 진앙인 산이면 부동리 흑두일원(북위 34.66도, 동경 126.40도) 현장을 방문했다. 기상청은 이번 지진이 발생한 진앙지 주변인 산이면사무소에 실시간 임시 관측망을 오후 6시에 설치했고, 문내, 마산 등 3곳에도 5일 관측망을 설치해 원인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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