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정치, ‘전투력’ 아닌 ‘능력’이 주도해야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8 14:00
  • 호수 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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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보다 합리적 소통에 익숙한 정치인에게 더 많은 역할 부여해야”

4·15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은 여전히 어수선한 분위기다. ‘김종인 비대위’를 둘러싼 찬반 논란과 리더십 공백으로 당이 표류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탈북민인 태영호·지성호 두 당선인이 ‘김정은 건강 이상설’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정보력을 과시하려다가 망신만 당하는 대형 사고를 쳤다. 그런가 하면 당 일각에서는 부정선거론을 들고나오거나 그런 황당무계한 주장에 고개를 끄떡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죽었는데도 자신이 죽었음을 알지 못하고 여기저기 물어뜯고 다니니 ‘좀비’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광경이다.

돌아보면 통합당의 참패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여당의 악재가 될 것으로 예상했던 코로나19 사태가 정부의 선방으로 돌연 여당의 승인(勝因)이 된 점도 컸지만, 근본적으로는 박근혜 정부의 2인자였던 황교안 전 대표가 1년 넘게 벌여온 ‘혁신 없는 극한투쟁’의 처참한 결과이기도 했다. 많은 유권자는 황 전 대표로부터는 삭발한 머리를, 나경원 전 원내대표로부터는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빠루’를 들고 서 있던 모습만을 기억할 뿐, 대안세력으로서의 어떤 신뢰도 가질 수 없었다. 그런 극단적 당내 문화는 선거 기간 동안  후보들의 입에서 막말 릴레이가 계속되어도 차명진 같은 후보조차 제명하지 못했던 현실로 이어졌다. 지난 3년간 문재인 정부의 여러 실정이 이어졌음에도 야당이 먼저 심판받게 된 이유였다.

21대 총선에서 통합당의 참패는 이제 품격 없는 ‘전투적 보수정치’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교훈의 의미를 제대로 되씹으며 통합당이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일지는 아직 의문이다. 무엇보다 당선자의 67%가 ‘반(反)문재인’ 정서가 강한 영남권 출신이라는 구조는 통합당으로 하여금 변함없는 ‘묻지마 반대’ 노선으로 몰아갈 위험이 크다. 먼저 야당이 달라지지 않으면 21대 국회에서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코로나 경제와 코로나 이후의 한국 사회를 고민하는 장면은 여전히 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2019년 4월29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 행안위 회의실 앞을 점거한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2019년 4월29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 행안위 회의실 앞을 점거한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총선 끝나자마자 ‘윤석열 검찰’ 압박 나서

압승을 거둔 범여권 쪽이라고 해서 ‘전투적 진보정치’의 불안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열린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가게 된 최강욱 당선인의 일성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는 것이었다. “한 줌도 안 되는 부패한 무리”인 검찰과 언론을 향한 복수혈전의 선전포고였다. 그런가 하면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우희종 공동대표도 “서초동에 모였던 촛불시민은 힘 모아 여의도에서 이제 당신의 거취를 묻고 있다. 그토록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당신, 이제 어찌할 것인가”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를 압박하고 나섰다. 범여권의 일부 인사는 여당 압승으로 끝난 총선 민의를 윤석열 검찰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총선이 끝나자마자 터져나오는 윤석열 검찰에 대한 압박은 다시 민의를 둘로 쪼갤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만사 제쳐놓고 자나 깨나 ‘윤석열’에만 집착하는 모습이, 국민의 힘을 모아 난국을 돌파해야 할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에도 도움이 될 리 없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민주당 지도부가 총선 이후 의제의 ‘우선순위와 완급’을 가려야 함을 강조하며 과거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 실패의 교훈을 상기시키고 있는 점이다. 그래서 여권 내 전사(戰士)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커지지 못하고 겸손론자들이 당을 이끄는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180석 여당은 투쟁하는 주체가 아니라 책임지는 주체라는 사실이다. 열성 지지자들을 결집해 어떻게 하면 ‘적폐세력’들을 척결할까에만 골몰하는 여당의 모습은 집권 초반기에나 해당되는 얘기였다. 투쟁은 약자의 무기다. 반대로 절대강자가 된 초거대 여당의 무기는 더 많은 국민의 마음을 모아갈 포용적 리더십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 역사가 코로나 위기 속 전환기를 맞고 있는 마당에, 고작 검찰총장 찍어내기만 생각하고 있는 좁은 시야로는 우리 사회의 앞길을 선도하는 정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21대 국회에서 여당은 단독이든 범여권 연대든, 제1 야당이 반대해도 패스트트랙 안건을 지정해 통과시킬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힘은 남발되지 않고 절제의 미덕을 갖출 때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여당을 지지하지 않은 50.1%의 의사까지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소통을 통한 합의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일이 여전히 중요한 과제이며 책임이다. 민주당 이인영 전 원내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기자간담회 때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과정을 돌아보며 “공존의 정치, 협치의 새 마당을 만들지 못해 두고두고 아쉽다”고 토로했다. 이미 절차적 요건을 충족시켜 처리한 사안에 대해 굳이 그런 성찰을 한 이유는,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여전히 공존과 협치의 정신임을 말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치의 본령은 대화에 있음을 여야 모두 잊어서는 안 된다.

당면한 코로나 위기 속에서 우리는 가본 적 없던 길을 가야 한다. 사람들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다를 것이라며 기술의 진보가 낳을 비대면(untact) 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을 것이다. 위기의 시대에는 막강한 국가가 만들어지고 자본의 발언권이 강화된다. 당면한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논리 앞에서 다른 문제들은 덮여지고 일방적 통치의 정당성은 강화된다.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려는 단기 대책들에도 사회적 양극화는 오히려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고, 시민의 자유와 권리는 빅브러더의 손바닥 위에서 제약받을 위험이 농후하다.

비상 조치들이 반복되다 보면 이내 고착화해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버린다. 초강력 국가, 보호받는 대자본,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 통제받는 시민 사이의 균형을 지킬 법과 제도를 준비하는 것은 코로나 시대 한복판에 있는 정치의 몫이다. 유발 하라리가 ‘코로나 이후의 세계’라는 글에서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세계에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아직 불확실하기만 하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 거대한 실험을 준비해야 할 정치가 더 이상 피 끓는 전투주의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 여야를 불문하고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아니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를 주도해야 우리는 새로운 길을 헤매지 않고 갈 수 있다. 우리 정치권에 필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투쟁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대한 준비다. 그러니 전의에 불타는 투사들보다는 합리적 소통에 익숙한 정치인들에게 더 많은 역할이 부여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우리 정치가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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