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부터 민경욱까지…누가 왜 부정선거를 말하는가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2 10:00
  • 호수 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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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부정선거 논란
진영 논리 따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풍토 조성

4·15 총선이 끝나기 무섭게 ‘부정선거’ 의혹이 횡행하고 있다. 부정선거 의혹은 “사전투표 결과가 조작됐다” “전자개표기를 해킹해 조작이 가능하다” 등으로 집약된다. 부정선거 의혹은 《각설이 타령》의 한 대목처럼 ‘죽지도 않고’ 선거 때마다 등장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제기되고 있는 의혹 역시 이미 역대 선거에서 꾸준히 제기됐던, ‘오래된 레퍼토리’에 불과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그때마다 부정선거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해 왔다. 그러나 부정선거 의혹은 오히려 갈수록 덩치를 키우고 있다. “전자개표기 폐기” “청와대는 총선 관련 국민적 의혹에 대해 직접 진상을 규명하라”는 청와대 청원을 비롯해 미국 백악관에 “한국 선거가 여당과 문재인 정부에 의해 조작됐다”는 청원까지 올라갔다.

기성 정치인도 동조했다. 부정선거 의혹의 선봉장을 자처하고 있는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인천 연수을 낙선)이 대표적이다. 민 의원은 박영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과 조해주 상임위원을 공직선거법 위반·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고, 법원에 투표함 증거보전신청을 했다.

민 의원은 이에 그치지 않고 5월7일 “4·15 총선은 투표조작으로 이뤄진 부정선거다. 재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며 대법원에 총선 무효소송까지 제기한 상태다. 재선에 성공한 박성중 미래통합당 의원조차 “이번에 사전투표가 상당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면서 “(부정선거의) 실증적·구체적 수치도 제시됐다”고 주장했다.

공정선거국민연대가 5월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불복종 인간띠 두르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공정선거국민연대가 5월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불복종 인간띠 두르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해장국 언론’을 원하는 사회

기성 정치인이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에 대해 조작 의혹을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은 이에 동조하는 세력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부정선거 의혹의 확산은 유튜브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유튜브는 이미 기성 언론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지닌 미디어로 성장했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180석을 가져가며 보수진영이 참패하자 보수 성향의 유튜버들이 앞다퉈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월터 미베인 정치학 교수의 “한국 총선에서 부정 투표가 있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근거로 내세우며 부정선거 의혹을 사실인 것처럼 방송했다.

문제는 상당수 시청자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진 데다 유튜브 시대가 열리면서 대중은 자신들의 정치 성향에 맞는 콘텐츠를 선택적으로 찾아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같은 정치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 폐쇄적 집단이 만들어졌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을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뉴스 수용자들은 그들이 인정하는 논객과 선동가의 주장이 노출되는 매체에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누가 나의 속을 후련하게 해 주는가’란 기준에 따라 의인과 참 언론인이 결정된다”면서 “뉴스 수용자들이 해장국 언론을 갈망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유튜브를 통해 부정선거 의혹이 힘을 받으면서 여기에 편승한 세력들도 본격적으로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다. 보수단체들은 그들의 고향인 ‘아스팔트’로 돌아가 거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에 발맞춰 ‘청원인 00만 명 돌파’라는 온라인상의 집단행동과 후원금을 모금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19대 대선부터 7대 지방선거, 21대 총선까지 부정선거 의혹을 계속 제기해 오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19대 대선부터 7대 지방선거, 21대 총선까지 부정선거 의혹을 계속 제기해 오고 있다.

#1: 5월6일 11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대검찰청을 둘러싸는 인간띠 만들기 행사가 벌어졌다. 공정선거국민연대(공정연)가 개최한 ‘4·15 부정선거 국민 불복종’ 집회다. 집회 참가자들은 대검찰청 정문을 중심으로 대로에 서서 피켓을 들고 “총선 부정선거 의혹을 검찰이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연을 중심으로 5월9일 대규모 집회도 열린다. 공정연 측은 “국민 불복종 운동을 위한 시민사회 원탁회의가 열렸다”면서 “전군구국동지연합회, 공명선거쟁취총연합회, 부정선거진상규명연합회, 고대교우 트루스포럼 등이 연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 “부정선거 유엔(UN·국제연합)조사단 파견” 백악관 청원합시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세요. 미국 상원의원이 10만 명 되기를 5월18일까지 기다린답니다.(보수진영 단체대화방 내용)

#3: 용기 있는 사람만이 역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모두 40개 선거구에서 목숨을 건 승부를 걸겠습니다. 재검표 수개표 공탁금이 5000만원일 경우, 40개 선거구라면 20억원이 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 바로 세우기에 함께해 주세요.(가로세로연구소 공지 내용)

 

이와 같은 움직임은 21대 총선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부정선거 의혹은 선거를 치르면서 더욱 조직화되고 있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 의혹은 존재했고, 항상 보수진영이 이를 주도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세 선거 모두 보수진영이 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보수진영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진영 역시 선거에서 승리하기 전까지 부정선거 의혹을 강하게 제기해 왔다. 다큐멘터리 《더 플랜(The Plan)》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4월15일 서울 영등포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 사무원들이 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4월15일 서울 영등포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 사무원들이 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부정선거 의혹, 지는 쪽의 단골 레퍼토리

유튜브 붐이 있기 전에 ‘나는 꼼수다’(나꼼수) 등으로 대표되는 팟캐스트의 열풍이 있었는데, 이때는 진보진영이 대세를 이뤘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유튜버들이 ‘바이블’로 추앙하고 있는 《더 플랜(The Plan)》은 아이러니하게도 진보 성향 방송인 김어준씨의 작품이다.

김씨는 《더 플랜》을 통해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꺾고 승리한 2012년 18대 대선에서 개표 부정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주요 내용은 현재 보수 유튜버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당시 이 다큐멘터리는 개봉 5일 만에 2만 명을 돌파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이는 선거 결과에 따라 패배한 쪽에서 얼마든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자 진보진영에서 부정선거 주장은 자취를 감췄다. 선관위는 《더 플랜》 개봉 후 18대 대선 투표지 재검표를 공개적으로 제안했지만, 김씨 측은 지금까지도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씨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19대 대선은 물론 이후의 선거에서 연패한 보수진영이다. 진보진영에서 18대 대선에 대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것처럼, 19대 대선에 대한 의혹이 보수진영에서 곧바로 터져 나왔다.

2018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으로 돌아가 보자. 1년여 전만 해도 “박근혜(전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촛불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광화문광장은 어느새 “19대 대선은 사기”를 주장하는 ‘태극기 집회’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자 사기대선진상규명본부(사대본)가 즉각 꾸려졌고, 사대본은 2017년 6월7일 “19대 5·9 대선은 선관위에 의해 자행된 부정선거가 확실하다. 선관위가 조직적으로 투표용지를 대규모로 바꿔치기했다”면서 ‘대통령선거 무효의 소’를 대법원에 제기했다.

이들이 주장했던 것은 △전자개표기 불법 사용 △투표용지 불법 사용 △완벽한 법적 근거 마련 없이 사전선거 실시 △사전선거 때 바코드 대신 QR코드 투표용지 불법 사용 △불법투표함(부직포함) 사용 등이다. 이는 이번 총선을 부정선거라고 말하는 세력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8년 6월13일 열린 7대 지방선거에 대한 보이콧 움직임까지 보였다. 이들은 6·13 지방선거에서 ‘전자개표기 사용금지 및 사전투표 거부운동’을 벌였다.

사대본의 뿌리는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했던 보수세력이다. 즉, “박근혜 석방, 탄핵 무효”를 주장했던 세력이 문재인 정부라는 진보정권이 탄생하자 “문재인 퇴진”으로 목소리를 바꾼 것이다. 이는 부정선거라는 주장이 객관적 근거에 따라 제기된 것이 아니라 진영 논리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부정선거 논란, 유튜브 통해 날개 달아

그러나 당시만 해도 사기 대선 등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은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다. 광화문 일대에서 매주 5000여 명에 이르는 집회 참가자들이 “19대 대선 사기”를 외쳤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거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처럼 기성 정치인이 동조할 정도로 부정선거 의혹이 커진 데에는 유튜브가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진보진영이 ‘나꼼수’ 등으로 팟캐스트에 주력하는 사이 보수진영은 유튜브에 일찌감치 둥지를 틀었다. 대선 사기 등 보수진영의 부정선거 의혹은 유튜브를 날개 삼아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보수진영 유튜브 역시 자극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구독자를 쓸어담을 수 있었다.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보수 유튜브인 ‘신의 한수’를 보면, 2018년 사기 대선을 주장했을 당시 구독자 수가 16만여 명에 그쳤는데, 지금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러한 특정 정치 성향 유튜브는 지지층 확대보다 각 진영의 결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해 정치적인 영향력은 작은 것으로 해석돼 왔다. 그러나 대중적 노출 수준과 네트워크 확장성은 매우 커 파급력이 상당히 크다는 해석도 나온다.

사대본을 내란선동 혐의로 고발했던 고(故) 정영모 정의로운시민행동 대표는 “사대본 등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은 사회의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매우 위험한 행동을 계획적으로 저지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이 없다”면서 “이 때문에 직접 나서 사대본을 내란선동 혐의 등으로 고발한 것이다. 사법기관은 사대본과 같은 세력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일부 보수 유튜브, 공포를 먹고 산다 

“은행 망한다” “곧 전쟁 터진다”…허위 정보 넘쳐나

“유튜브에서 코로나(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IMF 때보다 더 크게 나라가 망한다고 하더라. 은행까지 망한다고 하던데…예금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아무개씨(40)는 며칠 전 고향에 있는 아버지에게서 이런 전화를 받았다. 김씨의 아버지(71)는 대학까지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퇴직한 사람이지만, 유튜브 방송을 보고 불안에 떨며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씨는 처음에 “유튜브에서 하는 말을 다 믿지 마시라”며 웃어 넘겼지만, 아버지의 전화가 계속 걸려오자 결국 고향으로 직접 내려가 금융회사 부도 시 국가가 보장해주는 5000만원 한도 내에서 분산해 예치했다.  

유튜브의 영향력은 이미 기성 언론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색깔을 띠고 있는 일부 유튜브에서는 진영 논리에 따라 혐오·공포를 조장하는 허위 정보가 난무하고 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진보진영이 압승을 거두자 보수 성향의 유튜브에서는 경제위기 등 ‘디스토피아’를 바라는 듯한 악성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대북(對北) 뉴스는 단골 소재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설이 떠돌면서 한반도에 전쟁이 곧 닥칠 것이라는 가짜뉴스가 보수 유튜브를 중심으로 횡횡했다. 먼저 김 위원장의 사망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북한이 전쟁준비를 끝냈다”는 식의 가짜뉴스가 나왔다. 보수 유튜브에서는 북한만큼 적대시하는 것이 중국인데, 중국이 김 위원장 유고로 인한 공백으로 북한을 점령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는 뉴스가 뒤따랐다. “중국, 북한 접수 작전 계획 끝냈다” “북중 국경선으로 집결 중인 중국인민해방군” “북한-중국 압록강 인근에서 교전, 중국군 800명 사망”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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