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방사광가속기, 라온(RAON) 교훈 삼아 성공적 사업으로 평가받아야
  • 세종취재본부 김상현 기자 (sisa411@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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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 10여 년 간 순탄치 않았던 모습 참고해야
논의 시작 1년도 안 돼 입지 선정까지 완료, 꼼꼼한 계획 점검 필요

또 하나의 초대형 과학 프로젝트 '다목적 방사광가속기'의 건립 용지가 충청북도 청주시로 최종 선정됐다. 6조7000억원의 경제 효과가 기대된다는 발표 때문인지 여러 언론에서 중점적으로 소식을 다뤘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연단에서 큰절을 할 정도로 기뻐했고, 인근 세종시와 대전시까지 덩달아 들떠있다.

하지만 방사광가속기 구축사업이 결정되고 입지 선정과정이 진행되는 내내 기시감이 느껴지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대전시 신동에 건설되고 있는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의 사례 때문이다.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조감도. Ⓒ충청북도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조감도. Ⓒ충청북도

‘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은 지난 2011년 12월부터 시작해 2021년 12월까지 10년 1개월 동안 총 1조4445억원의 예산을 들여 기초과학원(IBS)에서 진행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현재 대전시 신동의 약 29만 평에서 하나하나 틀을 맞춰가고 있다. 문제는 그동안 모진 풍파을 맞으며 항해해 왔다는 점이다.

 

정권에 따라 바뀌는 고무줄 예산과 사업 기간

이명박 정부가 2011년 12월에 발표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본계획’을 보면 중이온가속기는 원래 2017년까지 완성하기로 돼 있다. 약 6년 만에 구축을 목표로 한 거다. 청주에 건설할 방사광가속기가 2022년 시작해 2028년 완공 목표니까 일정만 보면 비슷하다.

하지만 중이온가속기는 2017년을 지나 2020년인 현재까지도 건설 중이다. 최근엔 핵심 부품 수급에 문제가 생겨 2021년 완공도 자신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당시 중이온가속기 구축에 책정했던 소요예산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사업 전체 예산 5조1700억원 중 4560억원이었다.

이명박 정권이 박근혜 정권으로 바뀌면서 중이온가속기 사업은 2013년 첫 기본계획 변경을 실시한다. 이때 사업 기간이 2019년까지로 늘어난다. 그러다 2015년 4월 또다시 손을 댄다. 총 사업 기간은 2021년까지 늘어났다.

예산도 확 오른다. 2015년 당시 미래창조과학부가 만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본계획 변경’ 문서를 보면 사업 총예산이 1조4445억원으로 늘어난 걸 확인할 수 있다. 무려 1조원 가량 예산이 늘어난 거다. 그에 비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전체 예산은 5조 7471억원으로 약 6000억 가량 늘어났다. 이용자 그룹 육성 목표도 애초 1000명에서 500명으로 줄었다가 다시 ‘선진연구인력 육성을 포함해 확대·강화’로 계속 들쑥날쑥해 왔다.

‘창조경제’에 열을 올리던 박근혜 정부가 탄핵으로 일찍 막을 내리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사업은 다시 한 번 수술대에 오른다. 2018년 4월, 정부는 사업계획 적정성을 재검토하기로 한다. 지난해 6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서 사업 완료 2년여를 남겨두고 이 사업에 대한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 보고서’를 발표한다.

대전시 신동에 건설 중인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 조감도. ⒸIBS
대전시 신동에 건설 중인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 조감도. ⒸIBS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세계 최하위 수준?

이 보고서는 중이온가속기 사업이 애초부터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연구개발수요 파악의 적절성 및 우선순위 설정과정의 합리성'에 대한 조사결과로 '2018년 5월에서야 IBS 본원 내에 별도의 <라온협력 활용센터>를 설립해 가속기 활용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제시된 연구개발 수요와 우선순위는 없는 것으로 조사됨'이라고 명시했다. 2018년이면 최초에 계획했던 사업종료 시점인 2017년이 지난 후다.

또, '기초과학 전문인력 양성(연구자 및 산업체 육성)을 통한 기초과학 선도국가 기반 마련' 부분에 대해서는 가속기 개발 하나만으로 기초과학 선도국가의 기반이 마련되지도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중이온가속기는 외부 연구자에게 가속기를 활용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고 도출된 연구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꾸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라온활용 협력센터’ 설립이 늦어 가속기 구축 이후 상당 기간이 지나야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가속기가 '조사대상국 5개국 중 최하위의 수준'이라고 밝힌 것이다. '차세대 가속기 기술'의 수준을 최고 기술국인 미국과 EU 대비 68.2%, 기술격차는 5.5년으로 평가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사업 계획을 계속 변경하고 평가도 좋지 않으니 사업단 운영이 평탄치 않았던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번 정부에서 내세운 대형가속기 장기 로드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번 정부에서 내세운 대형가속기 장기 로드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청주 방사광가속기 사업은 다를 수 있을까

신규 방사광가속기 구축은 지난 3월24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가 '대형 가속기 장기로드맵 및 운영전략안'을 심의·의결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운영전략안 통과 후 2개월도 안 돼서 입지 선정까지 일사천리로 내달렸다. 운영전략안의 내용에 따르면 이 사업에 대한 의견은 지난해 8월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투자전략 및 혁신대책' 회의에서 처음 나왔다.

원래 2021년까지는 가속기 관련 논의는 하지 않기로 했다. 2017년 2월에 나온 '대형가속기 운영체제 개선방안'에는 중이온가속기 구축이 완료되는 2021년까지 방사광가속기를 포함한 대형가속기의 신규 구축이나 검토는 보류하는 것으로 나와있다. 그런데 갑자기 2019년 8월 방사광가속기 사업 검토를 시작한 거다. 아마 그해 7월 터진 일본과의 무역분쟁이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어찌됐건 올해 1월31일 대형가속기협의회 및 전문가 검토를 시작해 2월에 공청회를 거치고 한 달 만에 과기자문회에서 심의·의결했을 정도로 사업 추진에 거침이 없다. 1조원이 넘는 대형 과학프로젝트의 계획이 두어 달 만에 완성했다는 점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이와 비교해서 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은 2009년 1월 국제과학벨트 종합계획이 확정된 후 2010년 6월이 돼서야 구축계획을 완성했다. 즉, 1년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계획안을 만들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도 사업 기간 동안 2차례나 계획이 대규모 수술을 받았고, 결과물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다.

 

환호 그만하고 라온 반면교사 삼아 반드시 성공해야

과학 하는 사람 중에서 중이온가속기, 중입자가속기, 방사광가속기 등 대규모 실험시설이 국내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거다. 단, 제대로 진행한다면 말이다. 그러기엔 자세히 살펴 봐야할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한 인사는 "방사광가속기 2기를 건설하면서, 핵심기술(초전도 자석, 초전도 가속관) 같은 것의 국산화를 이루지 못했고, 이어진 중이온가속기 사업에서도 이 부분이 기대했던 것만큼 잘 이루어지지 못한 듯하다"라며 "핵심장비의 국산화가 이루어지려면 이용자(실험하는 연구자나 대학교수)가 아닌 실제 구축 경험이 있는 인물이 리더로 사업을 이끌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또 다른 대규모 과학 프로젝트인 '핵융합연구소' 소장 출신으로 2018년 말 IBS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장으로 선임된 권면 단장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중이온가속기 사업이 규모와 비교하면 주어진 인력과 시간이 부족해 힘들다고 토로했다.

KISTEP은 중이온가속기 사업에 대한 보고서의 마지막에 '결국, 동 사업의 완전한 성공은 전문 인력과 활용 지원시스템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국내 관련 전문가의 활용 시스템(파견, 인력 공동활용제 등)에 대한 제도적 장치와 본원(IBS)과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전향적인 독립운영 시스템의 구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적었다. 

부디 청주에 새롭게 건설할 방사광가속기는 라온이 걸어왔던 길을 반면교사 삼아 잡음없는 모범적인 초대형 과학프로젝트 사례로 평가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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