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견제 속 이낙연 출마 고심…김부겸‧홍영표 등도 저울질
더불어민주당 새 원내대표로 4선의 김태년 의원이 선출되면서 이제 여권의 관심은 당 대표 선거로 모아지고 있다. 이해찬 현 대표의 임기는 오는 8월로 끝난다. 이번에 선출되는 당 대표는 대선 관리라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민주당으로선 이번에 누구를 당 대표로 뽑느냐가 정권 재창출의 중요한 분수령이다.
무엇보다 신임 당 대표는 당 경선에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정한 경선 관리를 통해 차기 정부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하기에 그 어느 때보다 책임과 권한이 막중하다. 이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있다면 이번에 뽑힌 당 대표는 차기 정권에서도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번 당 대표는 177석의 거대 여당 대표다. 2000년대 이후 이토록 여당 대표에게 막강한 힘이 실린 적이 흔치 않았다.
친문, ‘이낙연 당 대표’ 선출 놓고 의견 엇갈려
관전 포인트는 몇 가지로 모아진다. 우선 대선주자들이 출마할지가 관심이다. 현재 당내에서 대표적 대선주자로 꼽히는 인물은 이낙연 전 총리다. 이 전 총리 주변에선 그가 다음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데 아무런 이견이 없다. 총리직을 끝마치고 서울 종로에서 화려하게 당선됐기 때문에 대권 도전의 8부 능선은 넘었다.
이 전 총리의 대권가도에 가장 필요한 부분은 당 장악력이다. 거의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본선 경쟁력은 갖추고 있다. 문제는 본선에 오르기 위해선 당내 경선을 먼저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내 든든한 우군이 있어야 수월하게 경선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 전 총리는 호남계의 확실한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노골적으로 뭉치는 게 이 전 총리로선 부담스럽다. 호남 후보라는 프레임이 작동하기 때문에 본선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PK(부산·울산·경남)를 중심으로 한 친문계의 응집력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한 당직자는 “이 전 총리는 과거 열린우리당 분당 시절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적 행보를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성 친문계는 여전히 의문부호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리도 3월19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팬덤(적극적 지지층)이 없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근본적으로는 열린우리당에 동참하지 않은 소수파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이 전 총리는 열린우리당에 참여하지 않고 민주당에 남았다. 다만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표결에 부쳐졌을 때 그는 민주당 소속임에도 반대표를 던졌다. 친문 등 범친노 세력에게 이 전 총리는 분명 버리기도, 갖기도 곤혹스러운 카드다.
민주당의 당헌‧당규상 대선주자는 대선 1년 전 당내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8월에 당선된다고 해도 임기가 내년 3월까지로 7개월에 불과하다. 최근 당 일각에서 “총선이 끝난 만큼 비대위를 구성하자”는 의견이 나온 데 대해 이해찬 대표가 5월10일 열린 비공개 최고위 회의에서 “공천뿐만 아니라 당의 운영도 시스템에 따라, 예측할 수 있게 가야 한다”고 거부하면서 이 전 총리 추대론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자칫 비대위 구성은 이 대표 등 당권파가 특정 후보를 밀어준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서다. 공정성이 훼손될 뿐 아니라 당내 다른 당권 주자들의 반발도 살 수 있다. 이번 총선을 끝으로 사실상 정계 은퇴에 들어가는 이 대표로선 굳이 이러한 공정성 논란까지 낳으며 이 전 총리를 밀어줄 필요가 없다.
결정은 오로지 이 전 총리의 몫이다. 이 전 총리 주변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이 전 총리의 한 측근은 “당내 기반이 없기 때문에 7개월짜리 당 대표라도 하고 안 하고는 차이가 많다”고 말했다. 반면에 또 다른 인사는 “당 대표를 고작 7개월 한다고 해서 당을 확실히 장악하는 것도 아니다”면서 “오히려 당만 혼란스럽게 만들 바에야 대선판으로 직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밝혔다.
일련의 선택에 있어 이 전 총리의 가장 큰 관심은 당내 최대 세력인 친문계가 어떤 선택을 할지다. 총선 직후 당 주변에선 ‘원내대표-당 대표-국회의장’ 등 요직을 모두 친문계 중진들이 장악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됐다. 그러나 지난 5월7일 원내대표 선거에서 강성 친문계가 민 전해철 의원이 떨어지면서 변수가 생겼다. 현재로선 친문 내 ‘진문’(강성 친문)과 ‘당권파’ 사이에 약간의 미묘한 의견차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 주변에선 ‘강성 친문계는 홍영표 의원을 지지한다’는 소문이 돈다. 당 대표까지 친문계가 장악하게 되면 이 전 총리의 활동 폭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중도보수층까지 끌어안으려는 이 전 총리는 종부세 완화 등 일부 정책에 있어 강성 친문계와 시각 차이를 보이고 있다.
송영길‧우원식‧이인영도 조심스레 저울질
당 대표 도전에 성공하기 위해선 민주당 내 이낙연 대세론이 얼마만큼 확산되느냐가 관건이다. 이번에 후원회장직을 수락한 20여 명의 초선의원이 이 전 총리를 얼마만큼 밀어줄지도 중요하다. 뚜렷한 계파가 없는 이 전 총리 입장에서는 이들을 통해 당내에 뿌리를 내리려 한다. 당 대표에 뽑히지 않더라도 차기 대선주자로 여유롭게 1위를 달린다면 마땅한 대안이 없는 친문계로서도 이 전 총리 카드를 집어들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이 전 총리의 당내 영향력은 급속도로 커진다.
확실한 다른 당권주자와의 연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전 총리가 대선으로 직행하기 위해선 다른 주자의 확실한 도움이 절대적이다. 대구 수성을에서의 두 번째 도전에 실패한 김부겸 의원도 주목받는다. 김 의원 역시 대선주자다. 김 의원은 5월12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내 쓰임새가 어디까지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을 아꼈다(시사저널 5월19일자 ‘김부겸 “대구서 민주당 지지율 35%로 끌어올리겠다”’ 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010 기사 참조). 다만 “국민들의 고단한 현실은 정치를 통해 풀어 나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정치인 김부겸이 뭘 할지 고민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혀 여운은 남겼다. 당 일각에선 영남(김 의원)과 호남(이 전 총리)의 지역 간 화합을 위해서도 두 사람 사이에 당권-대권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성 친문계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홍영표 의원에 대해선 비토 분위기도 만만치 않다. 특히 지난 20대 국회에서 패스트트랙 갈등을 만든 연동형비례제 협상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가 홍 의원이었다는 점을 들어 홍 의원의 리더십에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5선에 오른 송영길 의원도 출마를 준비 중이다. 송 의원으로선 두 번째 도전이다. 2년 전 실패 이후 차분하게 선거를 준비한 만큼 해볼 만한 게임이라는 분석이다. 4선인 우원식 의원도 조만간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내 최대 모임인 민평련(민주평화국민연대) 소속 중에선 이인영 의원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
청와대가 누구 손을 들어줄지도 중대한 변수다. 청와대는 하반기 안정적인 국정 수행을 위해선 당·청 간 의견 차가 없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당 대표와 찰떡궁합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확실한 건 누가 되든 이해찬 대표만큼 카리스마 넘치는 군기반장이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