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경찰은 늑장, 교육기관은 누락
  • 인천취재본부 주재홍‧이정용 기자 (jujae84@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9 16:00
  • 호수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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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들끓는데, 아직도 상황 파악 못 하는 경찰과 교육청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통해 파장 일자 뒤늦게 움직여

지난 3월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늘 너 킬(kill)한다”며 술을 먹이고, 제 딸을 합동 강간한 미성년자들을 고발합니다’라는 글이 게재됐다. 이 글은 지난해 12월23일 새벽 3시쯤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 옥상 계단에서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 여중생의 어머니가 직접 작성했다. 이 국민청원에는 21만 명 이상이 동의하는 등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이에 이준섭 인천경찰청장은 3월31일 ‘엄정한 수사’를 주문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00일 만이다. 경찰은 올해 4월9일이 돼서야 여중생을 성폭행한 A군과 B군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강간 등 치상 혐의로 구속했다. 이 사건이 지난해 12월24일 접수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중생을 집단으로 성폭행한 범인들을 구속하는 데 꼬박 109일이 걸린 셈이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늑장·부실수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썼고, 해당 중학교와 인천동부교육지원청, 인천시교육청은 부적절한 대응으로 지적을 받기도 했다. 특히 가해 학생들의 강제전학이 ‘폭탄 돌리기’에 그치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러스트 양선영
ⓒ일러스트 양선영

경찰, 증거자료 미확보…피해자 보호 외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은 3월31일 인천 연수경찰서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청구 내용은 ‘가해자들이 지난해 12월23일 정신을 잃은 피해자를 끌고 가는 폐쇄회로(CC)TV 영상’이다. 하지만 경찰은 “CCTV 영상자료가 없다”면서 ‘부존재’를 통보했다. 앞서 연수서 경찰관 2명은 지난해 12월26일 오전 1시43분부터 9시2분까지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의 관리사무소 상황실에서 범행 과정이 담긴 CCTV 영상과 사진 20여 장을 휴대폰으로 촬영했고, 일부는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담아 갔다.

그러나 CCTV 영상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졌다. 연수서 관계자는 “경찰관이 수사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영상자료가 제대로 촬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며 “아파트단지의 관리사무소 상황실에 다시 찾아갔지만, CCTV 영상 보존기간이 지나 아예 삭제되는 바람에 영상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신변보호 요청도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는 1월3일 학교 인근에서 A군·B군과 마주치는 바람에 도망쳤다가 112 신고 후 경찰의 도움으로 집에 도착했다. 피해자의 가족은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지만, 경찰의 신변보호는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의 가족이 구두로 신변보호를 요청했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의 신변보호는 국민청원이 올라온 후에야 이뤄졌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피해자의 가족은 직접 A군과 B군으로부터 범행을 미리 계획했다는 진술을 확보했고, 경찰관이 고의로 CCTV 영상을 삭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론이 들끓자 인천경찰청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가 미흡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담당 경찰관과 팀장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 또 재발 방지를 위해 인천 지역 10개 경찰서에서 조사 중인 여성청소년 관련 사건에 대한 자체 점검에 돌입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인천지검은 A군의 휴대폰에서 범행 당시 피해자의 나체를 촬영했다가 삭제한 증거를 추가로 확보하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를 추가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

송도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 피의자인 A군(15)과 B군(15)이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위해 4월9일 인천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송도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 피의자인 A군(15)과 B군(15)이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위해 4월9일 인천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교육기관, 중대한 사건으로 판단 안 해

A군과 B군이 다니던 중학교를 관할하는 인천 동부교육지원청은 교육부의 학교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중대한 학교폭력 사안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의 결과를 시교육청에 보고해야 하는데도 이를 누락한 것이다. 이는 동부교육지원청이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을 중대한 사안으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로 교육부와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가 발간한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에 따르면, 일선 학교는 학폭위 회의 결과를 관할 교육지원청에 서면으로 보고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동부교육지원청은 중대한 학교폭력 사안을 시교육청에 보고하고, 시교육청은 전문 상담사 등을 파견해 피해자에 대한 상담을 실시하고 치료비 등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동부교육지원청이 시교육청에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을 보고하지 않으면서, 피해자 측은 시교육청으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중학교도 동부교육지원청에 서면이 아닌 유선으로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은 3월31일 “해당 사안을 보고받지 못했다”며 “보고 체계를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시교육청은 현재 A군과 B군이 다니던 중학교와 동부교육지원청 관계자를 상대로 중대한 학교폭력 사건에 대해 적절히 대응했는지에 대해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천 지역 학부모들은 지난 4월17일 ‘강력소년범 강제전학제도 개정 학부모연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시교육청에 1만4542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서를 전달했다. 중학생은 의무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강제로 퇴학시킬 수 없다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것이다. A군과 B군은 1월3일 남동구의 한 중학교로의 강제전학 처분을 받았다. 비대위 관계자는 “강제전학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며 “해당 학생에 대해 충분한 교정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인천시의회는 스쿨미투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사건을 예방하는 ‘인천교육조례’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조선희 인천시의원은 “청소년 성교육과 관련된 기관이나 단체, 교사들이 공동으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성평등을 기반으로 한 성교육 활성화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친오빠는 “국민청원이 없었다면, 이 사건의 구조적 문제점들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송도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의 첫 공판은 오는 5월22일 오전 10시10분에 인천지방법원 317호 법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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