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24% 《부부의 세계》가 말해 준 것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6 17:00
  • 호수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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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캐슬》 넘어 역대 비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1위

JTBC 《부부의 세계》가 역대 비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1위에 올랐다(14회 24.3%). 비지상파 드라마 기존 1위는 JTBC 《SKY캐슬》의 23.8%였다. 비지상파 역대 전체 시청률 1위는 TV조선 《미스터트롯》의 35.7%다. 《미스터트롯》은 가요계와 예능계의 전체 판도를 뒤흔든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에 일개 인기 프로그램 수준을 벗어난다. 《미스터트롯》의 수치가 워낙 비현실적인 것이었고, 《부부의 세계》가 기록한 시청률도 충분히 놀라운 사건이다.

한류 열풍의 주인공인 tvN 《도깨비》의 최고 시청률이 20.5%였다. 비슷한 인기를 누린 tvN 《미스터 션샤인》은 18.1%였다. 복고 신드롬을 일으켜 TV 정규 뉴스에까지 소개됐던 tvN 《응답하라 1988》은 18.8%였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 지난 총선에 홍준표 후보가 남자 주인공 박새로이 스타일을 따라 하기까지 했던(홍새로이) JTBC 《이태원클라쓰》는 16.5%였다.

JTBC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JTBC
JTBC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JTBC

이렇게 보면 《부부의 세계》가 이 모든 시청률 기록을 깨고 역대 비지상파 드라마 1위에 오른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신드롬적 인기를 누렸다는 뜻이다. 화제성도 폭발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TV 드라마 부문 화제성 지수에서 6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5월11일 기준). 2020년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화제성 점수가 나왔다.

김희애도 같은 기간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에서 6주 연속 1위에 올랐다. 박해준, 한소희 등 다른 출연자들도 계속 높은 순위를 지켰다. CJ ENM이 집계한 콘텐츠 영향력 지수(CPI)에서도 같은 기간 《부부의 세계》가 6주 연속 1위였다. 현시점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드라마였던 것이다.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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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극 역사의 적통을 잇다

단순히 올해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 정도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 수준이다. 《부부의 세계》는 드라마사에 남을 불륜 충격파를 남겼다. 한국 사회를 뒤흔든 1956년 《자유부인》과 1996년작 MBC 《애인》이 역사적인 불륜 충격파였다. 그 전까지 불륜은 추하고 악한 것이었는데 《애인》은 ‘아름다운 불륜’ 콘셉트로 한 시대를 갈랐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고 관대해진, 그리고 욕망이 분출하는 1990년대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불륜 미화 논란으로 방송위원회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고, 국회에서까지 비판 발언이 나왔었다. 당시 이 작품으로 인해 불륜 키워드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2007년엔 《내 남자의 여자》가 불륜 신드롬을 일으켰다. 《부부의 세계》에서 남편을 상간녀에게 뺏기는 역할을 한 김희애가 여기선 상간녀 역할이었다. 대중은 경악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주연급 스타가 불륜녀 역할을 한 것이다. 불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힌 일대 사건이었다. 2014년엔 JTBC 《밀회》가 연하남과의 불륜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여기서도 김희애가 주연이었다. 이런 불륜 콘셉트 신드롬의 역사 끝에 2020년 《부부의 세계》가 섰다.

《부부의 세계》가 장기간 화제성 1위를 독차지하면서 불륜 키워드가 쏟아졌다. 《애인》 당시의 수준까진 아니지만, 불륜코드를 중심으로 대중문화 콘텐츠가 분석되고 일반 사회 뉴스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까지 《부부의 세계》와 불륜코드가 언급될 정도로 관심이 고조됐다. 한 매체는 경찰들의 불륜 사건을 알리는 기사 제목을 ‘경찰판 부부의 세계…기혼자들 간 내연관계에 경찰 조직 ‘발칵’’이라고 뽑기도 했다. 《부부의 세계》가 불륜의 상징이 된 것이다. 조권은 집단감염 사태가 터진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다는 의혹 제기에 “《부부의 세계》 봤어요, 집에서”라고 해명했다. 대중문화계에서 일상적으로 언급되는 키워드가 됐고, 특히 주부 커뮤니티에선 《부부의 세계》를 보지 않고선 대화 참여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럴 정도로 사회적 파급력이 컸다. 가히 불륜극 역사의 한 장을 썼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웰메이드 불륜극의 계보 바깥에선, 작품적으로 인정받거나 공론장에서 의미 있게 회자되진 못하지만 시청률은 국민 드라마 수준으로 나오면서 대중의 욕받이 역할을 하는 불륜 통속극의 역사가 진행됐다. 주말드라마 등에서 그런 흐름이 이어지더니 결국 막장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했다.

ⓒJTBC

불륜극의 혁신에 시청자들 열광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방영된 SBS 《조강지처 클럽》과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방영된 SBS 《아내의 유혹》이 대표적이다. 《조강지처 클럽》의 두 여주인공은 한복수(김혜선), 나화신(오현경)이었다. 합치면 ‘복수의 화신’이다. 한복수의 남편 이기적은 부인을 무시하다가 정나미와 만나 바람을 피운다. 나화신의 남편 한원수는 역시 부인을 무시하다가 모지란과 바람을 피운다. 남편들 이름을 합치면 이기적인 원수가 되고 상간녀들은 정나미 떨어지고 모자란 사람이란 뜻이다. 바람을 피운 남편들은 처절하게 패망하고 결국 본처로부터 냉대를 당한다. 이 구도에 시청자들이 열광했다. 드라마 중반엔 막장이라는 비난이 쇄도했지만, 막판에 바람을 피운 남편들이 패가망신하고 본처의 복수가 완료되자 칭송이 자자했다. 《아내의 유혹》에서도 본처를 무시하던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 하지만 점 찍고 변신한 본처에게 반해 매달리다가 본처의 복수로 패가망신했다. 이때 처절하게 고생한 남편 때문에 ‘개고생’이라는 단어가 유행할 정도로 사회적 파급효과가 컸다. 주부 시청자들이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이런 막장 통속극 흐름이 장르극과 만난 것이 바로 《부부의 세계》다. 《부부의 세계》도 기본적인 구도는 《조강지처 클럽》 《아내의 유혹》과 같다. 불륜을 저지르고 가정을 깬 남편에게 부인이 복수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작품 초반에 김희애가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에서 순간 최고 시청률이 나왔다. 작품 후반엔 김희애가 상간녀에게 ‘너도 당해 보라’는 식으로 “내가 네 남편과 잤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순간 최고 시청률이 찍혔다. 그런 막장 불륜물 구조에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극의 외피를 입혔더니 통속극과는 또 다른 신선한 불륜극이 탄생했다. 시청자들은 이 새로움에 뜨겁게 반응했다.

사회극적 요소도 결합했다. 병원 내의 알력 관계, 재력가가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 위선적인 상류층 사교계, 돈과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 군상들을 리얼하게 묘사한 것이다. 오로지 막장 불륜 복수 한길로만 내달리는 통속극에선 보기 힘든 사회적 깊이다. 인물들 이름이 이기적·정나미인 수준이고, 얼굴에 점 찍고 다른 사람이 된다는 황당한 설정이 나오던 통속극에 비해 뭔가 수준 높은 작품이라는 인식을 줬다. 이렇게 통속적인 불륜코드에 새로운 방식을 덧붙였을 때 치정극의 블루오션이 열릴 수 있다는 걸 《부부의 세계》는 보여줬다. 불륜불패 안방 흥행사를 만들어온 불륜코드의 폭발력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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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의 분노와 인정 욕구가 결국 통했다

《부부의 세계》 신드롬은 이 시대 여성 시청자층의 관심사와 욕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화제를 일으킨 것을 통해 불륜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지적인 연기파 김희애의 존재와 사회파 장르물 설정이 불륜물 시청의 죄책감을 희석해 줘서 여성 시청자들이 마음 놓고 불륜코드에 빠져들 수 있도록 했다.

여성 시청자층에 나타난 불륜에 대한 정서는 대체로 분노였다. 금단의 욕망에 대한 호기심도 있지만 분노가 훨씬 컸다. 극 속에서 여주인공의 남편이 최악의 찌질남으로 그려지고 상간녀도 뻔뻔하게 표현됐다. 보통 수준 높은 극은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반면 통속극은 선악 구분이 용이하도록 단순하게 그리는 경향이 있다. 《부부의 세계》는 수준 높은 웰메이드 극 같은 분위기였지만, 사실 남편을 욕받이로 만든 단순한 구도였다. 여기에 뜨거운 공감이 쏟아진 것은 그만큼 주 시청층인 여성들이 남편, 남성의 바람에 분노한다는 뜻이다. 간혹 등장하는 ‘아름다운 불륜’은 여주인공 본인의 이야기일 뿐이고 보통은 여주인공 남편의 불륜에 대한 분노가 표현된다.

복수의 욕구도 컸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복수는 막장 드라마 때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은 코드였는데, 아직도 그 열기가 식지 않았음을 《부부의 세계》 신드롬이 보여줬다. 간통죄 폐지로 형사 처벌의 길이 막히자 사적 복수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됐다. 현실에선 자기 힘으로 복수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드라마가 대리만족을 해 준다.

주부의 인정 욕구도 있다. 남편과 자식이 평소엔 주부를 무시하지만 결국 그 소중함을 깨닫고 매달린다는 설정에 열광한다. 《부부의 세계》에서 새로 가정을 꾸려 막대한 성공을 거둔 남성이 굳이 전 부인에게 매달릴 이유가 없음에도 소도시로 돌아와 전 부인 곁을 맴돌았다. 엄마 곁을 떠나 아버지에게 갔던 아들도 울면서 엄마 품으로 돌아왔다. 젊고 화려하게 보였던 상간녀는 결국 본처보다 못한 존재임이 확인된다. 여주인공은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다. 직장인 병원에서 남성 병원장은 대소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여주인공의 판단력에 의존한다. 남편도 우유부단한 무능력자로 여주인공에게 의지한다.

이런 설정의 인기는 여성, 특히 주부들이 인정을 제대로 못 받는 현실을 반영한다. 《조강지처 클럽》 《아내의 유혹》에서도 화려한 상간녀를 찾아 떠났던 남편이 결국 여주인공에게 매달리고, 무시당했던 여주인공이 변신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설정이 반복됐다. 드라마는 시청자의 결핍과 욕망을 채워주는 판타지다. 남편 불륜에 대한 분노와 인정 결핍에 의한 인정 욕구가 계속 존재하는 한, 비슷한 판타지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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