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 AI 더해진 ‘비대면’ 시프트, 재계 판도 바꿨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9 10:00
  • 호수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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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재계 순위 지각변동 가속화 “산업 전반에서 승자와 패자 나뉘어”

공정거래위원회가 5월3일 지정한 ‘2020년 자산총액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중 가장 눈에 띈 이름은 IT기업 카카오와 넷마블이었다. 카카오는 계열사를 26곳이나 늘리며 지난해 32위에서 올해 23위로 뛰어올랐다. 넷마블도 공격적인 사업 확대로 57위에서 47위로 부쩍 성장했다. 네이버(45위→41위), 넥슨(47위→42위)도 순위가 상승했다. 대조적으로 중흥건설그룹(37위→46위), 태광그룹(40위→49위), 유진그룹(54위→62위)의 순위는 크게 떨어졌다. 

이런 재계 순위 지각변동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 혁신에 더해진 ‘비대면(언택트)’ 시프트(변화)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포스코, 한화, GS, 현대중공업, 농협 등 재계 순위 10위권 내 그룹의 순위는 거의 바뀌지 않았으나 톱10 유지 여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언택트 소비 급증 속에 3월17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 택배가 수북이 쌓여 있다. ⓒ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언택트 소비 급증 속에 3월17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 택배가 수북이 쌓여 있다. ⓒ 연합뉴스

코로나19로 경제 전반이 침체된 가운데서도 네이버와 카카오의 실적과 주가가 나란히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는 점이 우선 두드러진다. 네이버는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7321억원, 영업이익 2215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6%, 7.4% 증가하며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었다. 카카오의 올 1분기 매출 8684억원, 영업이익 882억원은 모두 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였다. 두 회사 주가도 52주 신고가를 새로 쓰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성공 가도의 핵심 키워드는 언택트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쇼핑·간편결제·콘텐츠 등 핵심 사업부문은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언택트 문화 확산 속에서 가만히 앉아 떼돈을 벌었다. 

네이버 쇼핑의 경우 1분기 스마트스토어 거래액이 작년보다 56% 늘어났고, 지난 1월 800만 명 정도였던 구매자 수는 3월엔 1000만 명을 돌파했다. 덩달아 간편결제 서비스인 네이버 페이 거래액은 지난해 1분기보다 46% 증가하며 5조원을 넘겼다. 결제자 수도 23% 늘어나 1250만 명에 이르렀다. 네이버 웹툰은 전 세계 월간 사용자 6200만 명을 달성했고, 1분기 거래액이 지난해보다 60% 이상 급증하면서 매출은 2배 넘게 치솟았다. 

카카오는 주력 부문인 카카오톡 사업(톡비즈)에서 광고와 쇼핑이 모두 선전하며 매출 2247억원을 올렸다. 카카오 페이의 1분기 거래액은 14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 늘어났다. 

2월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관련 기업인 간담회 ⓒ 연합뉴스
2월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관련 기업인 간담회 ⓒ 연합뉴스

재계 23위 카카오, 코로나19 속 ‘훨훨’  

하지만 다른 대기업들은 규모와 상관없이 대부분 코로나19란 초대형 악재를 맞아 후퇴하고 있다. 현재 자산총액 30위권 그룹 중 언택트 확산의 직접적인 수혜를 입고 있는 곳은 카카오뿐이다. 

신차 효과와 환율 도움 등으로 1분기 실적 추락을 겨우 방어(영업이익 8638억원으로 4.7% 증가)한 재계 2위 현대자동차그룹은 더는 쓸 카드가 없다. 미국·유럽·인도 등 주요 시장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2분기엔 속수무책으로 실적 악화 폭풍을 맞아야 하는 처지다. 자동차 등 전방산업이 부진하면서 자연스레 6위 포스코그룹 실적도 고꾸라졌다. 포스코의 1분기 영업이익은 41.4% 급감한 7053억원이었다. 포스코 측은 “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에 자동차, 건설 등 산업이 불황을 겪으며 철강 수요가 감소하고 제품 가격은 하락하는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14위 한진그룹의 대한항공, 20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아시아나항공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고사 위기에 처했다. 한진은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을 살리기 위해 유상증자 1조원을 포함한 2조2000억원 규모 자금 확충에 나섰다. 한때 재계 7위까지 올라갔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을 HDC현대산업개발에 팔고 60위권 밖으로 밀려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이후 매각 성사조차 불투명해졌다. 졸지에 심각한 자금난과 그룹 전체의 존망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15위 두산그룹도 두산중공업의 경영 위기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코로나19에 따른 건설 경기 악화까지 겹치며 ‘잔인한 2020년’을 지나고 있다. 

코로나19로 항공·건설 못지않게 큰 타격을 입은 업종은 유통이다. 소비자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클릭’이나 ‘터치’로 쇼핑하면서 대기업 오프라인 유통매장들은 몇 달째 썰렁하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국내를 찾지 않아 면세사업은 더 큰 타격을 받았다. 5위 롯데그룹, 11위 신세계그룹, 22위 현대백화점그룹 등 유통을 주력으로 하는 대기업들이 모두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어차피 올 일이 좀 더 빨리 왔을 뿐” 

전자상거래 업체들의 분위기는 딴판이다. 언택트 소비 확산에 매출과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중이다. 김연희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아시아태평양 유통부문 대표는 KBS 특별기획 《코로나19 이후, 대한민국 길을 묻다》에 출연해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은 반면, 아마존·쿠팡 등 전자상거래 업체는 매출이 그야말로 폭등세”라면서 “코로나19가 유통을 비롯한 산업 전반에서 승자와 패자를 나누고 있다”고 진단했다. 

언택트 문화가 코로나19로 갑자기 생겨난 현상은 아니다. 이미 은행에선 창구를 찾는 고객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대신 인터넷과 모바일 뱅킹이 일반적이다. 온라인으로 장을 보고, 식당에 가기보다 집에서 배달 애플리케이션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것 등도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확대되는 추세였다. 

대표적인 전자상거래 업체 쿠팡의 지난해 매출액은 7조1530억원으로, 2018년 4조3545억원보다 64.2%나 뛰었다. 같은 기간 신세계가 올린 ‘사상 최대’ 매출 6조3937억원보다 7000억원 이상 많다. 

노쇠한 ‘유통 공룡’ 롯데쇼핑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4279억원으로 전년 대비 28.3% 감소하는 등 사업 부진이 계속되자 쿠팡을 최대 경쟁자로 설정하고 전면전을 선포했다. 롯데 유통 계열사 7개 쇼핑몰(백화점, 마트, 슈퍼, 닷컴, 롭스, 홈쇼핑, 하이마트)을 한데 합친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ON)’이 4월28일 정식 출범했다. 롯데의 뒤늦은 온라인쇼핑 승부수가 쿠팡의 급성장세를 견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쿠팡의 매출은 2016년 1조9159억원, 2017년 2조6846억원 등 해마다 40~60% 이상 성장하고 있다. 2018년까지 1조원을 넘었던 적자는 7000억원대로 줄어들었다. 손실을 감수하는 공격적인 사업 운영에 대해 일각의 우려도 적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쿠팡엔 오히려 돌파구가 됐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쿠팡의 월 거래액은 지난해보다 60% 이상 성장한 것으로 BCG는 추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언택트 시프트에 대해 “코로나19로 빨라지긴 했지만 어차피 올 일이었다”며 “이제 여러 분야에서 언택트로의 변화와 새로운 산업으로의 진입을 막을 순 없다”고 설명했다. 

재계 순위 역시 코로나19 변수가 없을 때부터 들썩이기 시작했다. 3년 전인 2017년 공정위 지정 대기업집단 명단에는 네이버와 넥슨이 처음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로부터 2년 뒤인 2019년 카카오가 대기업집단으로 편입됐다. 불과 5년여 전만 해도 신흥 IT기업이 대기업 소리를 듣게 되리라고 상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IT기업 중 가장 늦게 대기업집단이 된 카카오는 인터넷 전문은행, 스마트모빌리티 등 혁신 사업을 성공시키며 1년 만에 선두로 치고 나갔다. 

➊ 다자간 대전 (MOBA) 게임인 리그오브레전드의 국내 프로 경기 장면➋ 영국에서 한 소비자가 TV를 통해 아마존의 유료 구독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을 이용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위)다자간 대전 (MOBA) 게임인 리그오브레전드의 국내 프로 경기 장면 (아래)영국에서 한 소비자가 TV를 통해 아마존의 유료 구독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을 이용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규제 완화로 새로운 길 열린 기업들도 

언택트 시대와 맞고, 이에 잘 대비하는 기업 관련 규제가 대폭 완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게임산업의 전망도 확 밝아졌다.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언택트, 디지털 경제가 확산되는 모멘텀에서 게임을 혁신성장 동력으로 적극 육성한다는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5월7일 내놓은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에는 적극적인 규제·제도 개선으로 혁신성장을 지원하고, 창업에서 해외시장 진출까지 단계별 지원을 강화하고, 게임의 긍정적인 가치를 확산시키는 동시에 e스포츠 산업을 육성하고, 게임산업 기반을 강화하는 등의 4대 핵심전략이 담겼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24년까지 국내 게임산업 매출액을 19조9000억원, 수출액을 11조5000억원으로 확대하고, 일자리를 10만2000개로 늘린다는 목표다. 2018년 기준 게임 매출액은 14조3000억원, 수출액은 7조500억원, 일자리는 8만5000개 수준이다. 

성태윤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비약적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한다”며 “코로나19로 많은 대면 업종이 사라지는 동시에 새로운 시장도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4월16~22일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벤처캐피털리스트 36명을 대상으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유망 산업에 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바이오·헬스케어가 31.9%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고, 교육·사무(원격교육, 비대면 오피스 등) 19.4%, AI 8.3% 등이 뒤를 이었다. 

전염병 대유행과 언택트 경제 확산이란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아 바이오·헬스케어 등 차세대 유망 업종에서도 규제 완화 속도가 빨라질 조짐이다. 

시사저널 ‘차세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기업)’ 기획을 통해 소개된 뷰노는 헬스케어 AI 솔루션 개발업체다. 뷰노는 2014년 AI 딥러닝(컴퓨터가 사람의 뇌처럼 사물이나 데이터를 분류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란 무기 하나만 들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헬스케어 산업으로 방향을 정한 뒤론 거침없이 성장하고 규제 완화도 주도해 국내외 모두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올해 중 코스닥 상장에 도전할 계획이고, 헬스케어 기기 분야에서 세계 톱3가 되는 게 목표다. 창업 6년 만에 재계 판도를 뒤바꿀 만한 꿈을 꾸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도 ‘언택트 비즈니스’만 성공 가도 

5월7일(현지시간) 미국 경제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113년 전통의 고급 백화점 니먼마커스가 코로나19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파산 신청을 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니먼마커스는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43개 매장 전체에서 영업을 잠정 중단해야 했다. 

다른 미국 백화점 상황도 비슷하다. 118년 된 JC페니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850개 점포의 문을 닫았다. 곧 니먼마커스처럼 파산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162년 된 메이시스는 최근 투자은행과 만나 자금 조달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들었지만, 사실 온라인·모바일, 언택트라는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오프라인 유통의 최후가 코로나19 사태로 앞당겨졌다는 해석이 더 힘을 얻는다. 같은 시기 아마존을 필두로 한 미국 온라인·모바일 쇼핑업체들은 유통업계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한 모습이다. 미국 증시가 침체에 빠진 데 비해 아마존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김정환 GB투자자문 대표는 “미국 증시에서 아마존 등 유통업체 외에도 애플, 구글 등 언택트 경제를 이끄는 기업들 주가만 훨훨 날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많은 경제 전문가가 (침체에 빠진 전통 업종이 되살아나는 등)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며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국면에서 잘나가는 기업들이 향후 더욱 차별화되며 증시에서도 부각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년간 무려 67개 기업이 미국 포춘지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BCG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미국, 유럽 등의 글로벌 기업들이 2008년처럼 급격히 쇠락하고 일부는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오리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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