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는 왜 ‘정치 검사’ 구로카와를 좋아할까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8 15:00
  • 호수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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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정년 연장’ 시도하다 ‘역풍’… 코로나 대응 미숙 더해져 지지율 추락

‘아베 정부가 추진하려 한 ‘검사의 정년 연장’이 국민과 야당의 반발 끝에 좌초됐다. 그간 일본 정부는 사회 변화에 맞춰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검사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정년 연장의 목적이라고 밝혀 왔다. 그러나 정년 연장을 핵심으로 하는 ‘검찰청법 개정’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일본 정부가 ‘입맛’에 맞는 검사총장(한국의 검찰총장)만 앉히려 ‘법 개악’을 시도했다는 비판을 받는 가운데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현행 일본 검찰청법의 경우 검사총장의 정년은 65세로, 그 외 검찰관(검사)은 63세로 정해져 있다. 개정안대로라면 모든 검사의 정년은 63세에서 65세로 늘어난다. 다만 차장검사나 검사장 등 고위 직책에 있는 검사는 63세가 되면 보직에서 물러나 일반 검사(평검사)가 되도록 하고 있다. 검사총장의 경우 여전히 65세까지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개정안에는 ‘특례’ 조항이 있다. 일본 내각 즉,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검사총장, 검사장 등 간부는 최대 3년간 보직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따라서 검사총장의 경우 68세까지, 나머지 간부는 66세까지 정부의 판단에 따라 보직 유지가 가능해진다. 평검사의 경우에도 법무상(한국의 법무부 장관에 해당)의 판단에 따라 68세까지 일할 수 있다. 정권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검사의 정년이 정해진다고 봐도 무방한 셈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EPA 연합
아베 신조 일본 총리 ⓒEPA 연합

구로카와, 검사 생활 절반 법무성에서 보내

일본의 여론과 야당은 정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검사 정년 연장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위협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은 검찰청법 개정을 강행하려 했다. 그 배경에는 구로카와 히로무(黑川弘務) 도쿄고검 검사장의 정년 연장이 있다. 구로카와 검사장은 1957년 2월8일생이다. 기존의 일본 검찰청법에 따르면 63세가 되는 올해 2월7일 퇴직했어야 했다. 하지만 1월31일 각의에서 구로카와 검사장이 정년 후에도 반 년 동안 더 근무하도록 결정했다. 모리 마사코(森雅子) 일본 법무상은 “검찰청 업무수행의 필요성에 기초해 계속 근무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위법’이자 ‘탈법’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구로카와의 정년이 반 년 연장되면 오는 7월에 바뀌는 검사총장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 야당은 아베 정부가 구로카와의 정년을 법을 위반해서라도 연장하고, 그를 검사총장에 앉히려는 속셈이 있는 것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검찰청법을 개정해 정년 연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구로카와는 1983년 검사로 임관해 도쿄(東京)지방검찰청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니가타(新潟) 지방검찰청, 나고야(名古屋) 지방검찰청 등 지방검찰청에서 근무했고 1998년부터는 일선 수사 현장을 떠나 법무성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형사국 총무과장, 법무상 관방 심의관 등을 거쳐 2016년 8월에는 법무사무차관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2019년 1월18일 도쿄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취임한다. 커리어의 반 이상을 정치인과의 접점이 많은 법무성에서 보낸 후 검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구로카와가 법무성에서 근무하는 동안 감시 사회의 기초를 만드는 것 아니냐고 비판받는 ‘공모죄’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악화가 우려되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또 오부치 유코(小優子) 전 경제산업상의 정치자금규정법 위반 의혹을 비롯해 모리토모 학원 관련 공문서 조작 문제가 유야무야된 데는 구로카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구로카와가 이들 사건에 관여한 적이 없다는 해명도 있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 현 정권과 친밀한 구로카와를 검사총장에 앉히고 아베 총리 퇴임 후를 준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도 크다.

구로카와 히로무 일본 도쿄고검 검사장 ⓒNHK WORLD JAPAN 홈페이지 캡쳐
구로카와 히로무 일본 도쿄고검 검사장 ⓒNHK WORLD JAPAN 홈페이지 캡쳐

재개정 가능성에 ‘완전 철회’ 목소리 커져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자 구로카와 검사장의 정년 연장과 개정안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먼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검사총장을 역임했던 마쓰오 구니히로(松尾邦弘)를 중심으로 한 퇴직 검사들은 법무성에 의견서를 제출해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구로카와 검사장이 정년을 넘겨 근무하는 ‘이상한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개정안은 구로카와의 정년 연장에 대해 법적인 정년 연장을 용인하려는 시도임을 명언했다. 이제껏 이어져온 ‘정계와 검찰 사이에는 검찰의 인사에 정치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확립된 관례’가 존재했고 그것이 지켜져 왔지만, 법 개정을 통해 검찰 인사에 정치권력이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정권의 뜻에 따르지 않는 검사의 행위를 제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변호사들도 나섰다. 검찰청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일본 전국의 변호사들은 ‘법의 지배 위기를 우려하는 변호사들의 모임’을 만들고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거나 현수막을 내거는 활동을 하기도 한다. “검찰관 직무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손상시킬 위험이 있다”며 개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 단체에 2500명 이상의 변호사가 찬성을 표시했다. 법조계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국회에서 개정안에 대한 심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SNS를 통해 ‘#검찰청법 개정안에 항의합니다’라는 투고가 끊이지 않았다. 아사히신문은 “코로나19 검사는 받을 수 있는가, 재난지원금은 지급되는 것인가 하는 불안. 국회가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어 주리라 기대하며 지켜봤지만 정작 당장 필요한 대책 수립에는 소홀하고, 알고 싶은 것에 제대로 답하지 않는 일본 국회. 이에 대한 불만이 SNS상의 ‘#검찰청법개정안에 항의합니다’로 분출됐다”고 분석했다.

아사히가 5월16일, 17일 양일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정안에 찬성하는 목소리는 겨우 15%였다. 반대의 경우는 64%였다. 내각 지지율도 33%로 떨어졌다. NHK의 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다. 코로나 사태 이후 계속 떨어지던 내각 지지율은 5월19일 37%까지 하락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45%로 모리토모 학원 문제가 한창이던 재작년 6월 조사 이후 처음으로 ‘지지한다’를 웃돌았다.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아베 총리는 5월18일 자민당에 이번 국회에서는 개정을 단념한다는 뜻을 밝혔다. ‘자의적’ 인사가 가능해진다는 지적을 부정하며 개정 강행을 시사해 왔던 일본 정부가 주말 사이에 자세를 바꿨다. 바판 여론이 이 정도로 거셀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개정안 통과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닌 듯하다. ‘문제를 뒤로 미룬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대부분인 가운데 개정안의 완전한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많은 시민이 법안의 내용을 이해하고, SNS 등을 통해 이의를 표한 것이 이제껏 강권적인 수법으로 정책을 추진해 온 ‘1강()’ 정권에 제동을 가했다. 그 의의는 크다”고 평가했다.

한편, 구로카와 검사장은 5월21일 코로나19 긴급사태선언 와중에 기자들과 내기 마작을 했다는 보도로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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