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자살 리포트] 청년 자살 줄이려 SNS로 상담하는 일본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5 08:00
  • 호수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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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3만 명→2019년 2만 명으로 줄어…정부가 주도한 ‘자살종합대책 대강’ 큰 효과

1998년 일본의 자살자 수는 약 3만2000명에 달했다. 1897년 자살자 수 통계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연간 자살자 수가 3만 명을 넘어선 것이다. 한 해 전인 1997년에는 약 2만5000명이었던 자살자가 7000명 이상 급격히 늘어났는데, 1998년은 일본 경제의 버블이 붕괴되고 금융기관이 파탄 사태에 이르는 등 경기가 급격히 나빠진 시기였다. 일본도 아시아 금융위기를 피해 갈 수 없었고, 자살자 수는 급격히 늘어 2003년에는 가장 많은 3만4427명(경찰청 발표 기준)을 기록했다. 2008년 리먼 사태 이후인 2009년까지 매년 약 3만2000명이 자살했다.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던 ‘자살의 늪’에 빠졌던 일본. 그러나 2010년부터 자살자 수가 감소 추세를 보이더니 2012년에는 2만 명대로 대폭 줄어들었고, 2019년에는 2만169명을 기록해 1980년대 이후 최소 자살자 수를 기록했다. 일본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UPI 연합
ⓒUPI 연합

지역 맞춤·연령 맞춤형 ‘핀셋 정책’ 시행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따르면 일본은 1998년 이후 주요 7개국(G7) 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안아 왔다. OECD 국가 중에서는 한국 뒤를 이어 항상 2위를 차지해 왔다. 불명예를 씻기 위해 일본 정부는 자살자 수가 3만 명을 넘긴 2003년 이후 대책 수립에 나섰다.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하고 그해 10월부터 시행했다. 자살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서명운동을 벌였고 단기간에 약 10만 명의 서명을 모아 법제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자살 대책은 사회적인 대책으로 실시돼야 하며, 정부와 지방공공단체, 의료기관 등이 밀접히 연계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의 이념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자살 대책 실시의 의무를 지며, 자살 미수자와 자살로 부모를 잃은 아이에 대한 지원, 자살 대책에 참여하는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 자살종합대책회의 설치와 정부에 의한 시책 보고 의무 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2016년에는 ‘자살대책기본법’을 대폭 개정했다. 2017년 7월에는 이전의 대강을 수정해 ‘누구도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자살종합대책 대강’을 각의 결정했다. 이 대강에서는 자살 사망률을 선진국, 미국이나 프랑스 등의 현재 수준까지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수치로는 2026년까지 2015년 대비 30% 이상 감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자살의 대부분이 ‘내몰린 끝에 선택한 죽음’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아이들과 젊은 층의 자살에 대해 한층 더 강화된 대책을 세우는 것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역별, 연령별로 특화된 ‘핀셋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자살종합대책추진센터’가 중심이 돼 지역별로 맞춤형 자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센터는 지난 수년간 일본에서 축적된 자살 관련 통계를 분석해 ‘자살 실태 프로파일’을 구축했다. 이를 일본 각 지자체에 제공해 지역별 특성에 맞는 자살 예방 정책을 수립하게 했다. 자살 사망자 특징을 ‘성별, 나이, 직업 유무, 동거 유무’ 등 6가지로 분류해 지역별 자살 취약계층의 특성을 나눈 후 이에 맞는 대책을 세우게끔 한 것이다. 일례로 A지역은 10대, B지역은 70대가 많이 자살했다면 A지역은 교육을, B지역은 노인복지 관련 대책을 마련하는 식이다.

 

코로나19 이후 자살 급증 우려도 나와

연령별 자살 대책은 최근 가장 문제가 되는 10대 자살률을 낮추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과거 한국처럼 전화상담에 의존하던 자살 상담 정책을 온라인으로 전환한 게 대표적인 예다. 일본재단의 2019년 3월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 거주 중인 18~22세 젊은이들은 4명에 한 명꼴로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있고, 10명 중 한 명은 자살미수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원인의 반 이상이 학교 문제고 그중 반이 ‘이지메(いじめ·따돌림)’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후생노동성은 자살 방지 대책 수립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2018년 3월 ‘자살 방지 SNS 상담사업’을 시작했다. 30곳 이상의 지자체가 젊은 층이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SNS를 통해 상담 활동을 하고 있다. SNS 활용의 장점은 △커뮤니케이션에 서투른 사람도 안심하고 상담할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전문성을 가진 상담원들이 팀을 이뤄 대응할 수 있다는 점 △과거의 상담 이력을 상담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물론 약점도 있다. 사람과 대화하고 있다는 인식이 옅어질 수밖에 없고 전화나 대면상담에 비해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후생노동성의 가이드라인에서는 이러한 약점을 상담원이 파악하고, 되도록 상담자의 속도에 맞춰 기본적으로 짧은 문장으로 응답하는 등 구체적인 상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SNS를 통한 상담 사례집을 마련해 올바른 대응, 잘못된 대응의 예를 제시하고 있다.

2018년 10월부터 2019년 3월에는 6개 단체가 SNS 상담을 실시했는데 총 상담 건수는 1만3177건이었다. SNS에 친구 등록을 한 경우는 모든 상담 단체를 합하면 3만8197건에 이르렀다. 2019년 4월부터는 후생노동성의 보조를 받아 민간단체 4곳이 힘을 합쳐 SNS를 통한 상담을 시작했다. 이들이 운영하는 SNS의 상담창구(生きづらびっと)에서는 매달 150~250건의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4월의 자살자 수는 1455명으로 지난해에 비하면 20% 감소했다. 최근 5년 내 가장 큰 폭의 감소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법률을 만들고 정부와 민간단체의 협동으로 자살자 수 감소에 성공한 일본.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자살자 수가 다시 증가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자살 방지를 위한 상담창구에는 상담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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