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오프라인 중심엔 ‘리셀’이 있다
  • 한다원 시사저널e. 기자 (hdw@sisajournal-e.com)
  • 승인 2020.05.27 15:00
  • 호수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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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판 구하려는 소유욕에 ‘귀한 대접’…터무니없는 가격에 되팔리기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소비 패턴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지고 있는 가운데, 리셀(resell)이 오프라인 시장의 촉매제로 자리 잡고 있다. ‘나만의 것’을 소유하기 위한 소비심리가 작용해 리셀 시장이 활성화되는 분위기다. 한정 상품을 판매하는 곳은 리셀러들의 긴 행렬로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한다.

리셀은 단어 그대로 ‘되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리셀 시장은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Z세대 통칭)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리셀러 사이에선 ‘제품명+재테크’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한정적이고 희소성 높은 제품이 2차 시장을 통해 거래되면서 일종의 재테크 형식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10만원대 스니커즈 한 켤레가 30만원에 되팔린다. 일부 개인 리셀러는 월 400만~600만원의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온라인 경매’ 프리뷰 전시에 참석한 한 방문객이 ‘나이키 에어 조던 4 x 카우스’ 운동화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온라인 경매’ 프리뷰 전시에 참석한 한 방문객이 ‘나이키 에어 조던 4 x 카우스’ 운동화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희소성’ 제품에 대한 욕구로 커진 리셀 시장

리셀 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대부분 희소성 있는 제품에 대한 구매욕에서 시작한다. 남들이 갖지 못한 희소성 있는 제품을 사고파는 것인데, 시간이 흘러 제품에 대한 위상이 높아져 희소성이 더 커졌을 때 수요자에게 원가보다 더 높은 가격에 되팔아 이익을 취한다. 이들이 한정판 제품을 구하기 위해 밤낮으로 줄을 서는 이유다.

거래 방식도 간단하다. 판매자들은 리셀 제품을 온라인 중고나라 사이트, 개인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을 통해 업로드해 댓글, DM(다이렉트 메시지) 등을 통해 거래한다. 판매자들은 구매한 상품의 영수증, 구매 인증 사진을 올려놓기도 한다. 이는 온라인 쇼핑 방식과 비슷하다. 최근엔 리셀과 관련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대거 등장했다.

하지만 리셀은 중고 거래와는 또 다르다. 리셀 시장에선 표면적으로 중고 제품을 되파는 것이지만 그 중심엔 희소성 있는,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제품을 사고파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다 보니 과거 고가 브랜드 위주로 형성됐던 리셀 시장은 스니커즈, 빈티지 가구, 아트토이 등으로 품목이 다변화되고 있다. 최근 가장 인기를 끌었던 제품은 샤넬, 갤럭시Z플립 톰브라운 에디션, 닌텐도 스위치 등이다.

기자가 최근에 만난 리셀러들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리셀 관련 사이트에서 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은 모두 원가보다 비싸게 팔리는 제품임에도 쉽게 구하지 못하는 제품을 소유했다는 데 큰 의미를 뒀다.

직장인 이현주씨(29)는 지난해 프랑스 백화점에서 구하지 못한 한정판 명품 가방을 구매했다. 원가보다 60만원가량 더 주고 구매했지만, 구하지 못했던 제품을 갖게 됐다는 것에 의미를 뒀다. 이씨는 “프랑스에서 사려던 제품을 리셀 사이트에서 구매했다”면서 “한정 제품이어서 나중에 웃돈을 붙여 되팔 수 있어 고민하지 않고 구입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유나현씨(26)는 최근 샤넬 지갑을 사려고 오픈런(백화점 문이 열자마자 달려가 줄을 서는 현상)을 했다. 샤넬이 5월14일부로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식에 백화점 샤넬 매장에 직접 방문한 것이다. 유씨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찾아보며 샤넬 지갑을 구하기 위해 서울 지역 백화점에 오프런을 했다”면서 “구하기 어려운 제품이라 나중에 리셀숍에서 비싸게 팔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구하기 힘든 제품일수록 수요가 높아 가격도 비싼 편”이라며 “가격이 비싸도 남들이 갖지 않은 제품을 손에 쥐었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리셀은 전 세계적인 트렌드다. 미국 중고의류 업체 스레드업에 따르면 올해 세계 리셀 시장 규모는 약 48조원이다. 특히 세계 스니커즈 리셀 시장은 지난해 20억 달러에 달했고, 오는 2025년까지는 6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높아지는 리셀 인기에 유통업계도 한정판 제품 판매에 동참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5월21일까지 컨버스 브랜드의 한정판 상품인 ‘런스타하이크’를 본점과 부산본점 컨버스 팝업 매장에서 한정 수량 판매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12월에도 JW앤더슨·컨버스가 협업한 런스타하이크 스니커즈와 오프화이트·나이키가 콜라보한 ‘척테일러 70’ 스니커즈를 한정 판매해 이른바 ‘완판 사례’를 만들어냈다. 또 지난해 11월 프라다가 아디다스와 손잡고 스니커즈 캡슐 컬렉션을 발매하고, 디올은 나이키와 합작 스니커즈를 선보여 리셀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리셀 제품 가격엔 ‘시간’도 포함

일각에선 리셀러들의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적한다. 인기 제품이나 희소성 높은 제품은 수요가 커 리셀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지만 그 가격이 투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또 해외직구 상품을 되파는 것은 관세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로 간주돼 리셀러들의 주의도 요구된다.

한 리셀러는 “리셀 제품 가격에 대한 기준이 없어 같은 제품이라도 리셀러마다 가격이 다르게 적용되지만, 그 가격에는 제품을 구하기 위해 들인 시간도 포함된 것”이라며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는 것이라 부당한 경제활동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향후 리셀 시장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교수는 “소비자들의 경제 수준이 이전보다 높아지면서 시간의 가치를 중시하고 있다”면서 “리셀 시장에서 웃돈을 주고 사더라도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며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업체 입장에선 한정판으로 출시한 제품이 리셀 시장에서 매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면 해당 제품에 대한 가치, 인지도를 높이는 동시에 소비자들 평가가 좋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면서 “한정판, 업체 간 콜라보 제품을 구하지 못한 소비자들은 결국 리셀 시장에 관심을 갖게 돼 리셀 시장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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