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눈물’ 뒤 1년…달라진 것은 없었다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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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주춤했던 홍콩 시위, 보안법 추진에 재점화
1년 전 홍콩시위 선두였던 밀레니얼 4인방 다시 찾아보니
“달라진 것 없어 차라리 이민 간다”…회의적 반응도

1년 전 찾은 홍콩의 여름은 그 어느 곳보다 뜨거웠다. 작열하던 태양이 자취를 감추면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이 뜨거운 함성을 내지르며 거리를 가득 채웠다. 6월부터 100일 넘게 이어졌던 일명 ‘반중(反中)’ 시위 현장이었다.

그 열기가 다시 재연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주춤했던 시위가 다시 점화하면서다. 지난해 수백만 명의 가두시위를 촉발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은 철회된 지 오래. 이번엔 중국 본토에서 추진 중인 홍콩 국가보안법(국가법)이 발단이 됐다. 홍콩 일각에서는 중국이 국가법을 통해 홍콩의 자치권을 침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결국 지난 24일 홍콩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에서는 국가법에 반대하는 시위대 수천 명이 경찰과 강하게 충돌했다. 살수차와 최루탄이 1년 만에 다시 등장했고, 시위대 200여 명이 현장에서 체포됐다.

19일 새벽 홍콩 야우마테 인근에서 홍콩시위대와 대립하고있던 경찰이 시위대 진압에 나서고 있다. ⓒ고성준 기자
지난해 11월19일 새벽 홍콩 야우마테 인근에서 홍콩시위대와 대립하고있던 경찰이 시위대 진압에 나서는 모습 ⓒ고성준 기자

시위 길어져도 中 태도 안 변해…“차라리 이민 간다”

표면적으로는 국가법이 시위를 다시 촉발했지만, 그 이면에는 홍콩 시민들의 회의감이 있다. ‘지난 1년 동안의 시위에도 중국의 태도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심경이다. 지난해 홍콩 시위현장에서 만났던 이들을 1년 만에 다시 찾았더니 이러한 반응을 보였다. (☞1559호 기사 참고 《[르포] 홍콩 시위 한복판에서 밀레니얼 세대를 만나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과거의 홍콩은 이미 끝났다”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유창한 한국어로 시위대의 외신 대응 업무를 맡았던 제니 황(Jenny wong·27)은 “대규모 시위에도 달라진 게 없다 보니 절망을 느끼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며 “주변에 이민을 계획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열릴 시위들이 지난해만큼 화력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했다. 

낮에는 유통회사 직원으로 일하다 밤이 되면 시위대 최전방에서 경찰이 쏘는 최루탄을 쳐냈던 안손 찬(Anson Chan·25) 역시 “홍콩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크지만, 덩달아 정부의 대응 수준도 보다 강경해졌기 때문에 실제 시위에 참여하는 숫자는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두 명 모두 지난 24일 열린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24일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가 열린 코즈베이웨이 일대에 배치된 홍콩 경찰 ⓒ 연합뉴스
24일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가 열린 코즈베이웨이 일대에 배치된 홍콩 경찰 ⓒ 연합뉴스

“일국양제 안 지키면 차라리 독립한다” 中 강경대응에 커지는 독립 요구

그러나 중국에 대한 분노는 1년 전 시위 때보다 커졌다. 안손은 “중국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토로했다. 그는 “중국이 국가법을 추진하는 것을 보고 ‘일국양제’는 모두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홍콩과 중국 본토의 관계는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져 신뢰를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제니 역시 “중국이 노골적으로 홍콩에 대한 간섭을 시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홍콩 시민들은 5대 요구(△송환법 완전 철폐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를 주장해 왔지만 중국의 태도를 보아 하니 전혀 현실성 없는 외침이었다”면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5대 요구를 넘어 ‘독립’을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직접 제정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홍콩 시민들이 24일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로 몰려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직접 제정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홍콩 시민들이 24일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로 몰려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들은 일상에서 홍콩의 자유를 위한 운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제니는 “소비를 하기 이전에 그 가게의 정치성향을 따져보고 구입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면서 “이는 우리의 힘이 한 가게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운동을 ‘황색경제권(黃色經濟圈)’이라고 설명하고는 “정부가 시위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도 우리의 소비활동까지 간섭할 순 없다”면서 “이 운동에 지속적으로 동참하면서 큰 힘을 보탤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손은 한국 독자들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당신 눈앞에서 16살 소년이 머리에 고무탄을 맞고 쓰러졌다고 상상해 보라.

나는 최루탄 안개 속에서 그 소년을 끌어냈다.

그 아이는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했고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금, 민주주의 국가라는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자유는 모든 인간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다.

홍콩을 응원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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