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차이잉원 연임’에 시진핑은 한숨, 트럼프는 미소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9 16:00
  • 호수 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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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대만 총통, ‘친미 노선’ 노골화
中 “일국양제 훼손 용납 못 해” 반발

5월20일 대만 타이베이의 총통부. 지난 1월11일 치러진 선거를 통해 15대 총통으로 당선된 차이잉원의 취임식이 거행됐다. 대만의 총통 취임식은 아주 독특하다. 총통부의 중앙홀에서 열리는데, 총통이 벽면에 걸린 대만 국기와 쑨원 초상화를 보고 취임 선서를 한다. 그에 따라 차이 총통은 식순에 맞춰 부통령과 함께 취임식을 치렀다. 하지만 취임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곧바로 총통부 앞 야외무대에서 경축식이 거행된다. 이는 대만이 1996년부터 국민들의 직접선거로 총통을 뽑기 시작한 이래 이어져 온 전통이다.

이날 취임식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속에 최초로 치러지는 국가원수의 취임식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축식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이날 차이 총통은 취임식 직후 타이베이호텔 야외무대로 이동했다. 야외무대에는 특별 초청된 정·관·재계 및 군부 등의 인사와 외국 축하사절만 참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축식을 대폭 간소화한 것이다.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차이 총통의 취임 연설에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국민들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바다 건너 한 국가, 미국이 차이 총통의 취임식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EPA·AP 연합
ⓒEPA·AP 연합

‘역대급 지지율’에 거칠 것 없는 차이 총통

차이 총통은 재선에 승리했기에 집권 2기를 맞는다. 과거 대만 총통들은 연임에 성공해도 첫해의 국정 지지율이 40%대에 머물렀다. 치열했던 선거 후유증으로 반대세력의 비토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전례가 없다. 1월 중순과 2월 상순을 제외하고 줄곧 60% 이상의 고공행진 중이다. 4월19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76.9%까지 찍었다. 비록 이후 5월 들어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취임 당일 발표된 여론조사의 지지율은 61%였다.

차이 총통이 이렇게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배경에는 코로나19 사태가 있다. 5월27일까지 대만에서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441명, 사망자는 7명에 불과하다. 소수의 해외 유입 사례를 제외하면, 이미 한 달 넘게 지역 내 감염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세를 통제하고자 대만 정부가 신속하게 입경 제한과 방역 강화 조치를 시행한 덕분이다. 대만은 2월7일부터 중국·홍콩·마카오에서 오는 비(非)대만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 귀국하는 대만인을 2주간 자가격리 하도록 조치했다. 이는 코로나19의 진원지인 중국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코로나19 사태는 차이 총통에게 대외적으로도 유리한 국면을 조성해 주었다. 미국이 코로나19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부각시키면서 대만을 지렛대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5월18일 개최된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 대만을 옵서버 자격으로 초청했다. 대만의 코로나19 방역 성공을 부각시키면서 다른 나라들을 설득했다. 이런 미국의 외교전은 중국의 극렬한 방해로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중국이 코로나19에 대해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은 차이 총통은 ‘친미·반중 행보’를 더 노골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27분 넘게 이어진 취임 연설의 중간에서는 중국을 겨냥한 발언을 쏟아냈다. “우리는 베이징 당국이 일국양제(一國兩制)로 대만을 왜소화시켜 대만해협의 현 상태를 파괴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것은 우리의 움직이지 않는 굳건한 원칙”이라고 밝힌 것이다. 일국양제는 ‘한 국가 두 체제’라는 중국의 통일원칙이다. 덩샤오핑이 처음 주창해 1997년 홍콩, 1999년 마카오를 성공적으로 반환받았다. 그다음은 대만 차례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대만 입장에서는 자국이 중국의 일부분임을 인정해야 한다. 중국과 대등한 국가 자격으로 협상하려는 대만으로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방안이다.

 

“대만, 美·中 힘 대결의 최전선 될 것”

다만 차이 총통은 “양안 관계가 역사적 전환점에 처해 있다”며 “대립과 분열이 확대되는 걸 피하겠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바다 건너편 지도자’로 부르며 “책임을 갖고 양안 관계의 장기적 발전을 함께 도모하자”고 제안했다. 취임 연설이 끝나자마자, 중국 정부의 즉각적인 반응이 나왔다. 중국의 ‘대만사무판공실’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우리는 일국양제의 기본원칙을 관철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성명에서 차이 총통을 ‘민진당 당국의 지도자’로 격하시키면서, “대만 독립을 획책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차이 총통의 연설은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그에 반해 중국의 반응은 예전보다 훨씬 민감했다.

미국은 대만 정권에 힘을 실어주며, 중국 견제에 나선 모양새다. 5월19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차이 총통과 함께 대만과의 동반자 관계가 계속 번성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은 대만을 세계의 선한 세력이자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간주해 왔다”며 “대만에 대한 지지는 초당적이고 만장일치”라고 밝혔다. 미국 국무장관이 공개 성명을 통해 대만 총통의 취임을 축하한 것은 1979년 단교한 이래 처음이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을 더 이상 고려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가 잘 드러난다. 더군다나 5월20일에는 1억8000만 달러(약 2200억원)의 무기를 대만에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움직임에 중국은 격렬히 반발했다. 5월22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정부 업무보고에서 리커창 총리는 “대만의 독립 추구를 용인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또한 올해 국방예산을 전년보다 6.6% 늘린 1조2680억 위안(약 218조6412억원)으로 결정했다. 코로나19로 경기 하락세가 뚜렷한 상황에서 이례적인 국방비 증액이다. 게다가 중국은 대만 남동부의 필리핀 해역에서 항모 전단을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계획하고 있다. 그로 인해 중화권 언론들은 코로나19 사태로 격화되는 중국과 미국의 힘 대결에서 대만이 최전선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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