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웅 "어려운 시기, 좋은 작품으로 치유할 것"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5.30 14:00
  • 호수 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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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간》 으로 전매특허 형사 역할로 복귀한 배우 조진웅

언젠가 배우 이하늬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녀는 같은 소속사 식구이자 선배 배우 조진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함께 작업을 하면서 왜 조진웅이라는 배우가 충무로에서 사랑을 받는지 공감이 됐어요. 삶의 온 방향이 영화로 가 있는 사람인데, 그걸 누가 당해 내겠어요. 술을 마시는 것도 영화 때문이고, 기분이 좋은 것도 영화 때문인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영화를 중심으로 우주가 도는 사람이랄까요. 왕왕대는 그 큰 에너지를 옆에서 직접 보고 느낀 점이 많아요.”

그는 그런 사람이다. 호불호 없이 영화판 대다수 배우와 감독이 사랑하는 배우. 데뷔 16년, 여전히 영화에 미쳐 있는 배우. 그 진심이 느껴져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기대심을 주는 배우, 바로 조진웅이다. 그가 전매특허 캐릭터 ‘형사’로 돌아왔다. 영화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극 중 조진웅은 하루아침에 삶이 송두리째 뒤바뀐 형사 형구 역을 맡았다.

《사라진 시간》은 영화 《왕의 남자》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 등에 출연한 33년 경력의 배우 정진영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감독 데뷔작이기도 하다. 정진영 감독은 시나리오 구상을 시작할 때부터 조진웅을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고 썼고, 초고를 탈고하자마자 그에게 시나리오를 건넸다는 후문이다. 개봉은 6월18일이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출연한 계기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맛이 있었다. 해저 깊은 곳에 있는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지금껏 보지 못한 색다르고 기묘한 이야기를 함께 영화로 만들어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시나리오를 받은 지 만 하루 만에 출연을 결정했다.”

 

정진영 감독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염두에 둔 배우라고 들었다.

“처음에 왜 저를 염두에 두고 쓰셨을까 생각했다. 솔직히 선배로서의 출연 위압이 있었다. 하하. 작품에 출연한 이유는, 시나리오 때문이었다. 감독님 본인도 쓰고 느꼈을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해저 깊은 곳에 있는 보물이 나온 기분이었다. 정말 본인이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섭외에 응하면서 술을 마셨는데, 정 감독은 기쁨의 술을 마시고, 나는 의혹의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도 정말로 본인이 쓴 거냐, 원작이 있는 게 아니냐고 물어봤다. 조금이라도 표절이 없냐고 밝혀 달라고 계속 물었다. 작업을 하면서 천재적인 내러티브에 홀렸다. 천재적인 사람이다. 감탄했다.”

 

이에 정 감독은 “저도 출연 제안을 받을 때 ‘너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캐스팅하려고 거짓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한데 내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면서 인물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다 보니 어떤 배우를 대입해서 쓰게 되더라. 자연스럽게 조진웅이 떠올랐다. 초고가 나오자마자 조진웅에게 전달했는데 그다음 날 바로 하겠다는 답이 왔다. 나는 기쁨의 술을 마셨는데 조진웅은 의혹의 술을 마신 것 같더라(웃음)”라고 조진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이 작품이 조진웅이 하던 작품보다는 스케일이 작기도 하고, 선배라는 이유로 출연할까봐 제안할 때 주저하기도 했다. 한데 ‘신나게 해 봅시다’라는 조진웅의 말이 너무 큰 힘이 됐다. 조진웅이 합류하면서 좀 더 완성도 있는 영화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진영은 조진웅의 연기에 대해 “형구가 술을 마시는 장면이 있다. 복잡한 심리가 묘사되는 원테이크 신이었다. 긴 장면임에도 명연기를 보여줬다. 아름다운 연기에 감탄했다”고 극찬했다.

 

배우 출신 감독만의 특징이 있나.

“정진영 감독님은 배우의 심리를 잘 아는 감독이다. 배우로서 경험이 많으셔서 제가 어디가 가려운지를 정확하게 아신다. 덕분에 굉장히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옆에서 본 감독 정진영은 어땠나.

“배우 정진영, 감독 정진영 모습을 모두 만났다. 물론 포지션이 달라졌다. 그 외에는 변함이 없었다. 작품을 대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본질은 변함없다고 느꼈다. 많은 배우에게 귀감이 될 것 같다. 덕분에 감독이라 부르는 게 자연스러웠다. 감독으로서 키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나와 이야기를 할 때도 전혀 본질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작업할 때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나도 감독이 될 수 있다면, 이렇게 할 것이라는 롤모델을 제시해 줬다.”

 

역으로 감독이 된다면 정진영을 캐스팅할 생각이 있나.

“정진영이라는 배우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배우다. 선배의 연기를 보면서 자라왔던 후배로서, 정진영이 한 장면에 들어가면 많은 시너지를 내기 때문에 꼭 필요한 포지션이라고 생각해 왔다. 내가 감독으로서 정진영 선배를 섭외한다면 그걸 기대해서 출연 제안을 할 것 같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영화 《독전》 《끝까지 간다》, 드라마 《시그널》에 이어 또다시 형사 역할을 맡게 됐다.

“기존의 형사들과는 다르다. 일상에 많이 노출돼 있는 생활형 형사다. 제 친구 중에도 형사가 있다. 그런 친구인 거 같다. 다른 영화에서 형사 캐릭터들은 집요하거나 막무가내고 정의를 위해 직진한다는 게 있다면, 형구는 형사로서 정의 의식은 갖고 있으나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사 캐릭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사실 영화계의 상황이 좋지 않다. 그에 대한 부담은 없나.

“모든 분이 코로나19 사태 속에 경제활동을 이어가며 고된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예술활동 또한 중요하다. 문화의 가치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 높아질 것이다. 힘든 시기지만 문화예술로 치유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사태를 조금 더 자각해 대중에게 좋은 문화예술을 선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사태를 유연하게 넘길 수 있는 자세인 것 같다.”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지금이 어려운 시기인 건 분명히 맞다. 어떻게 다닥다닥 붙어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겠나. 하지만 《사라진 시간》을 꼭 관람해 달라. 꼭 극장이 아니더라도 확인해 주셨으면 좋겠다. 지금 이 시기쯤에 자신의 삶에 대한 시선을 느껴보게 하는 블랙 코미디 요소가 들어 있어 상당히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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