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험 삼아 맛보지 말라
  • 송혜진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3 16:00
  • 호수 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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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쯤, 한 선비가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국립의료원에 근무하던 중 좋은 약재가 많이 생산되는 강원도에 파견됐던 어느 의사의 목격담이다. 이 의사가 강원도에 처음 소임을 맡아 갔을 때, 약초 캐는 동료 인부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이들을 보게 됐다. 같이 어울리기는커녕 치를 떨면서 밥도 같이 안 먹고 사람 취급도 안 한다. 이유인즉, 그들이 ‘뱀을 씹어 먹는 놈들’이라는 것이었다. 이 의사는 이듬해에도 그곳에 갔다. 그런데 그 전 해까지만 해도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던 ‘뱀 먹는 자’들이 다른 인부들과 허물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 또 갔을 때는 인부들 사이에서 아예 뱀 먹는 자들을 비난하는 말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진 의사가 전후 사정을 자세히 살펴봤다. 놀랍게도 약초 캐는 인부들이 모두 작은 도구를 가지고 다니면서 어디서든 뱀을 마주치면 망설이지 않고 잡아 구워 먹고 있었다. 개중에는 중독으로 죽는 이도 있었다.

이 얘기를 들은 한 선비는 상황을 이렇게 풀이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뱀을 보면 무서워 피하며 벌벌 떨고 싫어한다. 이게 본성이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뱀을 잡아먹는 것을 보면 배척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생긴 모양으로 보면 뱀이나 가물치가 뭐가 다르냐. 한번 맛이나 보라’며 권하고, 시험 삼아 맛본 사람들은 ‘괜찮네~~’라며 차츰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 아예 뱀을 먹는 것이 풍습이 되어 주저함이 없게 되고, 뱀을 먹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모르게 된다. 이쯤 되면 처음에 ‘뱀 씹어 먹는 놈’들이라며 나무라고 외면했던 사람들도 생각이 바뀌게 된다. ‘저이들도 사람인데, 그 맛을 즐기는 이유가 있겠지. 아마 그 속에 진미가 있나 보다. 내가 뭘 모르고 비난했던 것은 아닐까. 그들 또한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을 내가 어찌 알 수 있으랴’라며 그 분위기에 물들게 된다. 

그리고 선비는 이 에피소드를 활용해 아들에게 명심하라며 글을 지어 전했다. ‘지나친 탐욕은 남에게 천대를 받는 짓이요, 몸을 더럽히고 집안을 망치는 것은 두려운 것인 줄을 누구나 모르겠는가만, 그러나 시험 삼아 맛을 본다고 하다가 마침내 그 부끄러움을 잊게 되는 것이니, 어찌 치를 떨고, 조소하는 말이 들릴 수 있겠느냐. 너는 마땅히 그 기미를 살펴서 경솔히 하지 말라.’

이 얘기는 조선 전기의 뛰어난 문장가이자 관리로서도 유능했던 강희맹(姜希孟·1434~1483)이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일화를 들어 지은 《훈자오설(訓子五說)》 중 한 가지다. 비유가 좀 자극적이긴 해도 주제가 선명해서 머릿속에 쏙 박힌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정의기억연대 사무실 ⓒ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정의기억연대 사무실 ⓒ시사저널 박정훈

이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은 예나 오늘이 다르지 않기에 강희맹 선생이 마치 요즘 뉴스를 듣고 들려주시는 얘기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한 단체의 후원금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그 뉴스 말이다. 처음에는 뱀을 먹는 자들이 소수였으나 이에 동조하는 이가 많아지면 처음에는 잘못된 것이라 여겨 본능적으로 배척하던 이들조차 ‘내가 잘못 생각했나?’라며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옛글 속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기미를 살펴 경솔히 하지 말라는 당부’의 울림이 유난히 큰 즈음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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