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제국] ‘그레이존’ 순식간에 먹어치우며 금융 역사 바꿔버린 카뱅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1 10:00
  • 호수 159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카카오, 뱅크·페이 쌍두마차로 ‘핀테크’ ‘언택트’ 시대 장악

국제정치 무대에서 탄생한 용어 ‘그레이존(gray zone)’은 어느 초강대국의 세력권에 속해 있는지 분명치 않은 지역을 의미한다. 무력전보다 경제전이 많아지고 기업 환경도 급변하면서 그레이존의 의미는 더욱 확장됐다. 법령이나 질서가 새로운 경제 환경에 발맞추지 못해 영역 구분이 불분명해진 상황이나 집단 역시 그레이존이라 지칭한다. 이 그레이존을 해소하고 장악하는 기업이 하루아침에 시장 판도를 바꿔버리는 게 다반사다. 

120년 넘는 한국 금융사(史)도 그레이존을 순식간에 먹어치운 카카오가 다시 쓰고 있다. 카카오는 4400만 명 회원을 보유한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 금융사업에서 승승장구해 왔다. 

카카오뱅크는 출범 첫해인 2017년에 1045억원 적자, 2018년엔 201억원 적자를 기록한 뒤 3년째인 2019년 흑자(순이익 137억원)로 돌아섰다. 올해 들어선 잠재 가치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카카오뱅크는 올 1분기에 이미 지난 한 해 순이익을 거둬들였다. 

ⓒ시사저널 박정훈·freepik
ⓒ시사저널 박정훈·freepik

1분기 순익, 지난해 전체보다 많아 

카카오뱅크는 올 1분기 당기순이익이 18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1.3% 증가했다고 5월6일 밝혔다. 대출 자산 성장에 이자수익이 늘어난 데다 수수료 부문 적자 폭도 개선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카카오뱅크의 총자산은 3월말 현재 23조4000억원이다. 수신액(예치받은 돈 액수)은 21조3000억원, 여신액(빌려준 돈 액수)은 16조7000억원이다. 수신과 여신 규모는 2017년 말과 비교해 각각 4배, 3배 이상 불어났다. 

카카오뱅크의 슬로건은 ‘같지만 다른 은행’이다. 시중은행과 같은 점은 예·적금과 대출 상품을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것 정도다. 이 밖에 다른 점들은 고스란히 차별점이 됐다. 우선 카카오뱅크의 영업은 오프라인 점포가 아닌 모바일 네트워크로 이뤄진다. 

점포 운영비, 인건비 등을 최소화해 시중은행보다 예금 금리를 높이고 대출 금리는 낮출 수 있었다. 2017년 7월27일 출범한 카카오뱅크는 연 2% 금리의 예·적금 상품과 최대 1억5000만원까지 최저 2.86% 금리로 빌려주는 대출 상품 등으로 무장해 무섭게 고객을 불려갔다. 2017년 7월 100만 명, 이듬해 1월 500만 명을 돌파했고 2019년 7월엔 1000만 명 고지를 넘어섰다. 직장인 조현용씨(가명·38)는 “은행 방문도 서류 제출도 필요 없이 5분 만에 수천만원을 빌릴 수 있는 카카오뱅크 ‘마이너스 통장 대출’은 주변에 이용 안 해 본 동료가 없을 정도”라며 “중도상환 수수료 없이 빌렸다 갚았다 하기 편해 돈이 필요할 때 정말 유용하다”고 말했다. 

카카오뱅크는 중금리 대출로 중·저신용자 고객들의 발길도 붙들었다. 지난해 1월 중금리 대출을 시작한 이래 올해 1월8일까지 빌려준 돈은 총 1조원에 이른다. 카카오뱅크 중금리 대출의 평균 금리는 5.99%로, 지난해 3분기 기준 시중은행 평균(6.94%)보다 0.95%포인트 낮았다. 

‘탈(脫)공인인증서’에서 시작된 사용자 편의 강화 방침은 20~30대 고객들에게 어필했다. 기존 은행 모바일 앱은 비밀번호를 매번 입력해야 하는 공인인증서 인증 절차가 필수였다. 카카오뱅크는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없앴다. 프리랜서 이어령씨(27)는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 없이 손쉽게 계좌이체를 할 수 있어 너무 편하다”며 “어떤 현금자동인출기(ATM)를 이용해도 출금 수수료가 무료라, 예전처럼 수수료 아까워 할 필요도 없다”고 전했다. 

카카오뱅크가 지난해 12월 선보인 잔돈 모으기 서비스 ‘저금통’은 2030 세대의 ‘짠테크(짠돌이+재테크)’ 트렌드를 저격했다. 매일 카카오뱅크 입출금 계좌에 있는 1000원 미만 잔돈을 자동으로 모아주는 소액 저축 상품이다. 저금통은 출시 4개월 만에 가입자 200만 명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20~30대 가입 비율이 70%에 달했다. 

카카오뱅크와 함께 카카오 금융을 이끄는 카카오페이도 무서운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카카오페이의 올 1분기 거래액은 14조3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39% 늘었다. 새로 개시한 증권계좌로 업그레이드한 이용자는 100만 명에 육박했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카카오 플랫폼과 카카오페이, 카카오페이증권, 카카오페이보험, 카카오뱅크로 이어지는 카카오 금융 포트폴리오가 완성되면 카카오는 핀테크(Fin-Tech·금융과 IT의 융합) 영역에서 강자로 거듭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긴장 넘어 위기 느끼는 기존 금융사들 

이렇게 손대는 금융사업마다 잘되는 카카오에 가장 긴장하고 있는 쪽은 단연 기존 금융사들이다. 최근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공시 자료에는 공통적으로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하면서 온라인 업무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 금융기관들의 상품 개발 촉진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반면 시중은행의 추가 진입에 따른 가격 경쟁, 수익성 저하 등 부정적 효과도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카드사들은 따로 공시를 통해 “인터넷전문은행이 신용카드 사업 인가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이 실제로 진입해 오게 되면 경쟁은 한층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자체 플랫폼이란 무기를 가진 카카오뱅크는 출범 직후부터 시중은행에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시중은행 입장에서 그레이존에 있던 고객층을 대상으로 마케팅에 나섰고, 실제로 그런 고객들을 빼앗아갔다”면서 “이후 각 은행은 카카오뱅크처럼 비대면 플랫폼 구축과 영업에 더욱 박차를 가해 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카카오뱅크가 아직 엄청나게 위협적이라고 할 정도까진 아니다. 금융사 수익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액 자산가 고객, 그룹사 연계 상품 판매 등의 측면에서 시중은행 등이 훨씬 앞서 있다”며 “그러나 기존 금융사들도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혁신을 시도하고 변화해 나가는 속도에선 카카오가 압도적”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