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억원 줬는데 쓴 곳 몰라…‘회계구멍’ 난 공익법인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3 10:00
  • 호수 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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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상위 100개 공익법인 전수분석] 41곳은 기부금 지출 내역 없거나 6건 미만

온누리선교재단은 자산 2700억원대의 대형 공익법인이다. 선교교육방송국 CGNTV 등을 운영하는 이 재단은 기부금품 의존도가 비교적 높다. 2018년 거둬들인 기부금은 363억원으로, 총 수익의 85%를 차지했다. 그런데 기부자는 이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알 길이 없다. 공시한 서류 목록에서 기부금 지출 내역만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공익법인의 ‘깜깜이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부실회계 의혹에 휩싸이면서 공익법인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다. 일각에선 “공익법인들이 공익이란 미명을 내세워 감시망을 피해 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의연을 둘러싼 회계 의혹이 쏟아져 나온 창구는 국세청 홈택스에 올라온 공익법인 결산서류다. 종교단체를 제외한 모든 공익법인은 홈택스에 결산서류를 공시해야 한다. 

10곳 중 4곳이 '부실 공시'

시사저널은 기부금을 받은 국내 공익법인 중 수입(2018년 기준) 상위 100곳의 결산서류를 분석해 봤다. 조사 대상은 비영리단체 정보제공 업체인 한국가이드스타의 자료를 토대로 뽑았다. 단 국민연금공단, 서울산업진흥원 등 국가·지자체가 설립해 감사원 검사를 따로 받는 공익법인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 공공 출자 연구기관과 공익법인 회계기준을 적용받지 않는 학교·의료법인도 뺐다. 대신 대학 내 산학협력단은 정부 지원금이 들어가고 기부금을 받는다는 점에서 포함시켰다.

조사 대상 100곳 중 기부금품의 지출 내역을 자세히 공시하지 않은 법인이 41곳에 달했다. 이들 법인은 지출 내역을 기재하지 않거나 지급처를 6건 이내로 뭉뚱그려 올렸다. 온누리선교재단과 미래국제재단 등 두 곳은 아예 지출 내역을 적는 문서(기부금품의 수집 및 지출 명세서)를 통째로 공개하지 않았다. 

삼동회는 원불교가 세운 사회복지법인이다. 복지사회 건설에 이바지하겠다는 목적으로 1981년 설립됐다. 전국에서 약 90개의 복지시설을 운영하며 노인과 아동, 장애인 복지 등에 힘쓴다고 알려져 있다. 이 법인이 2018년 외부로부터 받은 기부금은 36억여원. 하지만 지출 내역은 텅텅 비어 있다.

또 다른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구 은평천사원)은 기부금 32억원의 지출 내역에 지급처를 5곳만 적었다. 이 중에는 ‘인건비’ 목적으로 589명에게 지급된 7억7944만원도 포함돼 있었다. 1인당 평균 132만원꼴이다. 

그런데 각각 누구에게 얼마가 주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급처에 대표자 한 명만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 규정한 결산서류 작성방법에 어긋난다. 결산서류 서식에 따르면, 연 100만원 이상을 준 개별 지급자가 있을 경우 그 이름을 기재해야 한다. 개인은 물론 단체도 마찬가지다. 

기부금을 모두 인건비로?…불명세한 명세서

물론 내역을 자세히 공시했다고 해서 100% 투명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장애인을 위해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천성원은 기부금 32억원을 12건에 걸쳐 총 400명에게 지급했다고 밝혔다. 지출 목적은 모두 ‘운영비’, 대표 지급처는 윤아무개씨다. 윤씨는 천성원의 사무과장이다. 

윤 과장은 “매달 지급된 운영비를 12개월로 나눴기 때문에 12건으로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인건비는 많지 않지만 매달 지급처가 다양하다 보니 정기적으로 지급된 급여의 대표자를 썼다”고 했다. 즉 각종 운영비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인건비로 일괄 표기한 셈이다. 

아동과 소외 이웃을 돕는 대한사회복지회는 기부금 27억원의 지출 목적을 대략 5100번으로 나눠 밝혔다. 그런데 대표 지급처는 예외 없이 전부 ‘대한사회복지회’였다. 복지회 관계자는 “지자체에 보고할 때 쓰는 양식을 적용해 (국세청에) 공시했는데, 그 양식에는 지급처를 적는 난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국세청에 보고할 때 쓰는 결산서류와 양식이 다르다보니 빚어진 오류였다"라고 덧붙였다.

산학협력단 사이에서는 학교별로 회계 공개 수준이 달랐다. 기부금 18억원을 비롯해 약 3680억원의 수익을 올린 연세대 산학협력단은 1만원 미만의 버스비 결제 내역도 공개했다. 돈가스집, 칼국숫집, 초밥집 등 식사비를 쓴 가게는 그 이름을 밝혔다. 연세대를 포함해 수익금 1000억원 이상의 산학협력단을 보유한 학교는 총 11곳이다. 이 중 경북대, 전남대, 인하대 등 3곳의 산학협력단 또한 20건이 넘는 기부금품 지출 내역을 모두 실명으로 공개했다. 반면에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나머지 8곳은 지출 내역을 밝히지 않거나 공개한 내역도 6건이 안 됐다. 

그 밖에 시사저널은 2018년 사회복지분야 공익법인 중 개인 기부금이 많은 20곳을 대상으로 회계 현황을 따로 조사했다. 주로 불우이웃을 돕는 사회복지법인은 기부금의 용처에 대한 감시가 특히 중요한 공익법인으로 꼽힌다.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나눔의 집을 운영하는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집’도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돼 있다. 나눔의 집은 정의연과 함께 회계 부정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조사한 사회복지법인 중 안나의집은 기부금 지출 내역을 한 줄밖에 적지 않았다. 목적사업을 위해 1777명에게 37억원을 썼다는 내용이다. 총 기부금 수익(58억원)과 비교해 21억원 차이가 날뿐더러 지급처로는 김아무개 대표 한 명만 적혀 있다. 

안나의집 회계 담당자는 “그해 건물을 짓게 돼 모금액이 상당히 많이 들어왔다”면서 “여기에 들어간 비용과 인건비, 운영비 등을 모두 목적사업으로 봐서 그렇게 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수정 공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노숙자를 지원하는 안나의집은 수익 중 기부금 의존율이 70%에 가깝다. 

기독교대한감리회사회복지재단은 기부금 의존율이 99.6%다. 다른 수익사업은 거의 없고 기부금만으로 운영한다는 뜻이다. 이 재단은 기부금 48억원을 12건에 걸쳐 집행했는데, 각각의 수혜 인원 수를 모두 ‘10000’으로 적었다. 정의연 역시 같은 항목에 ‘99’ ‘999’ 등으로 임의의 숫자를 기재해 뭇매를 맞은 바 있다. 

5월21일 검찰이 마포구 정의기억연대 쉼터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을 차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5월21일 검찰이 마포구 정의기억연대 쉼터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을 차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법 어긴 공익 추구는 거짓말”

어떻게 해야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까. 정부는 감시망을 넓히기로 했다. 기존에는 자산 5억원 이상이거나 기부금 등 수입이 3억원 이상인 공익법인만 결산서류 공시 대상이었다. 국세청은 올해부터 공시 대상 범위를 모든 공익법인으로 확대했다. 나아가 수입액과 출연재산액 합계가 50억원이 넘으면 외부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 국세청은 “기부금 모금액과 활용 실적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 지정기부금 단체 지정을 취소하거나 불성실 기부금단체로 명단을 공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익법인을 아우르는 비영리단체는 시민사회가 주류인데, 이를 정부가 규제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민간기구가 공익법인의 회계 자료를 분석하고 인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원금이 생명인 공익법인 입장에선 신뢰도를 위해서라도 인증에 공을 들일 것이란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비영리단체 정보제공 업체인 한국가이드스타는 공익법인의 회계 자료를 평가하고 있다. 이곳의 박두준 연구위원은 “일단 공시한 회계 자료가 잘못되면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없다”며 “국세청이 검증 시스템을 갖추고 필요하면 재공시를 요청하거나 가산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법을 안 지키면서 공익을 추구한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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