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단체 투명성 확보, 모욕 말고 제도로 풀자
  •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3 10:00
  • 호수 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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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기업과 다른 비영리단체의 회계 투명성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부실회계 의혹에 휩싸였다. 이 문제가 단지 시민단체의 회계 투명성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전 국민이 다 안다. 정치적 이슈를 걷어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잠시 옆으로 밀어놓고 비영리단체의 투명성 문제만 차분하게 논의해 보자. 이건 중요하다. 왜? 정의연에 대한 검찰수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횡령, 회계규정의 모호함, 단순 실수의 가능성이 혼재되어 있다. 그러나 경험상 사실관계와는 상관없이 모든 비영리단체에 후폭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상장회사 연구는 지배구조가 나쁜 기업에서 회계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감시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부실회계에 대한 조사는 감독기관이 한다. 심각한 범죄가 발견되면 이후 다양한 일들이 기업에 일어난다. 감독기관과 시장은 기업과 CEO에게 책임을 묻는다.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었으니 여기서부터 출발해 보자. 이후 비영리단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할까. 상장기업과 비영리단체는 같을 수 없다. 

정의기억연대 주최 정기 수요집회가 5월20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정의기억연대 주최 정기 수요집회가 5월20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기부자들이 문제 제기할 통로 만들어야

첫째,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부분은 관계자들의 횡령이 있었을 경우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다. 이건 기본이다. 오히려 제도적 문제는 횡령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다. 영국 사례를 고려해 볼 만하다. 영국의 경우 일반으로부터 기부 관련 불만을 접수하는 창구가 운영되고 있는데, 횡령 등 명백한 범법행위일 때는 경찰에 신고할 것과 일반적 문제는 민간 규율기구에 신고할 것을 정부가 안내하고 있다. 당연히 이 기관들은 조사 및 처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한국도 이와 유사한 정부 신고 채널이 있는데 활성화시켜야 한다. 핵심은 기부자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향후 비영리단체 투명성을 둘러싼 다양한 제도 개선 방향들이 나올 것이다. 대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비영리단체에 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비영리단체는 투명성이 핵심이라는 거다. 맞다. 그럼에도 정도가 있다.

2002년 분식회계로 강력한 처벌을 받았던 미국 기업 엔론의 2000년 매출액은 1010억 달러(111조원)였다. 분식회계 액수는 13억 달러(1조4300억원)다. 2017년 기준 비영리 공익법인 규모 상위권 303개의 평균 총자산은 22억원, 기부금은 3억6000만원이다. 주식회사조차 이 정도 규모면 규제를 받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이미 외부감사 및 공시 규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또 언론의 높은 주목도로 인해 이슈가 터지면 기부금은 급감한다. 이미 엄격하고 어찌 보면 가혹할 정도의 시장 규율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셋째, 모든 비영리단체에 대한 외부회계기관 감사 의무화 등의 강성 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이미 비영리단체에 대한 투명성 이슈가 여러 번 발생했다. 그래서 2019년 세법개정안은 기존 자산 5억원, 수입 3억원 이상인 의무공시 대상 공익법인을 모든 공익법인으로 확대했고, 외부감사 기준을 모금액 20억원 이상으로 낮추었다. 

이것 자체도 타당한가 하는 문제가 있다. 상근직원 4명에 불과한 조직인데 2월에 주무부처 보고, 3월에 법인세 신고, 4월에 상증세법에 따른 공익법인 신고 및 공시를 진행해야 한다. 각각의 요구 서식도 다르다. 이 와중에 직접적으로 감사 비용, 간접적으로 행정 비용을 부과하는 게 과연 적정한가?

여기서 대안으로 고려해 볼 만한 것은 미국에 있는 민간 투명성 인증 시스템 ‘글라스포켓(Glasspocket)이다. 민간기구에서 구축한 자율규제 시스템으로 회계 투명성 등 비영리단체에 대한 정보와 평가를 제공한다. 여력이 되는 비영리단체들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인증을 받는다. 

기부자들은 이 시스템을 통해 비영리단체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의견을 제시한다. 이 제도가 잘 정착되면 시스템에서 인증받지 못하는 기관은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기부금을 모으지 못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보공개에 있어 기부자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거다. 정보공개의 최종 수혜자가 기부자여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망각한다.  

 

지배구조 가이드라인 제정해야 

넷째, 비영리단체 자체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주식회사처럼 이사회에 회계 전문가를 영입해 감시기능을 강화하는 식으로 풀기는 어렵다. 비영리 공익법인 규모 상위권 303개의 평균 직원 연봉은 2500만원, 상근 직원은 4명이다. 이런 조직에서 회계 전문가를 영입한다는 게 가능한가? 

현재 비영리단체의 역량을 감안했을 때 방법은 비영리단체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것이다. 이 책임은 일반적으로 규율기관이 맡는다. 회계처리, 정보공개, 윤리규정 등에 대한 최적의 사례를 제시해 주고 이를 따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았을 경우 왜 그랬는지 설명하는 ‘준수 또는 설명(comply or explain) 의무’를 부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섯째, 비영리단체 투명성 제고 방안은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진행시켜야 한다. 이번 정의연 사례를 되짚어보자.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몇몇 비영리법인 회계 전문가는 부실한 회계가 본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복지배분단체 중심의 자료입력 서식(이것 때문에 유명한 ‘99’ ‘999’식 기입이 생김), 비영리단체 보조금 회계처리의 어려움(정부보조금 수입지출 누락) 등이다.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이 크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이 있다. 조금만 관심 있게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기부단체 투명성 확보와 관련된 정부, 학계, 시민단체 비영리 전문가들의 의견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정의연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 이런 내용을 언급하는 언론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내어놓는 것은 모욕 주기와 일괄적 규제 도입이다. 이런 것들이 과연 소중한 기부금이 제대로 쓰이는 데 도움이 될까? 비영리단체는 한국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정치적 이슈가 모든 것을 덮어버리면 상처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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