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권위 있는 당의 리더십을 만드는 게 중요”
  • 송창섭‧박성의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2 10:00
  • 호수 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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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인터뷰(上)]
20대 국회 마지막 원내사령탑 이인영 민주당 의원 “미‧중 패권다툼으로 한반도 안보 위기”

지난해 4월21일 이인영 민주당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 승리의 야전사령관이 되겠다”며 당내 원내대표 경선에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이 의원은 “차기 원내대표의 사명은 첫째도 둘째도 총선 승리”라며 “지도부가 아니라 상임위 위주로 운영하겠다”고 말해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할 뜻을 밝혔다.

1년 뒤 열린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사상 유례없는 압승을 거뒀다. 그러다 보니 이 의원에 대한 당내 평가 역시 우호적인 기류 일색이다. 무엇보다 동료 의원들과 스킨십을 늘리며 당내 소통을 많이 한 것에 대해 상당수 의원들이 합격점을 주고 있다. 대야 협상도 무난하게 이끌었다는 평가다. 이해찬 당 대표와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도 별다른 잡음이 없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당 대표 출마 않고, 대중 통일운동 모색”

전대협 1기 의장 출신의 4선 의원인 데다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가 사회 주류로 등장한 상황에서 이 의원의 다음 행보는 정가의 비상한 관심이다. 민주당은 오늘 8월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당 대표를 뽑는다. 이 의원은 당내 최대 의원모임인 민평련(민주평화국민연대)을 비롯해 86세대 의원들이 주도하는 ‘더좋은미래’와도 관계가 돈독하다.

이 의원은 5월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대신 자신의 정치철학이자 정치 입문 목표인 통일운동의 대중화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미‧중 갈등으로 세계가 신냉전 시대로 접어드는 지금, 남북관계도 위험에 직면했다”면서 “우리 쪽의 적극적 화해 제스처도 필요하지만, 북한도 남한과의 관계 회복이 북‧미 관계 개선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정의기억연대 사태와 관련해선 “진실 규명 우선이 중요하다”며 정확한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4선에 성공했다. 총선 압승 예상했나.

“원래 (국회의원을) 10년쯤 하려 했는데 너무 오래 했다(웃음). 국민 덕분에 이겼다. 초반부터 느낌이 좋았다.”

지난 1년간 원내대표 활동의 소회를 밝힌다면.

“사람들이 전쟁 같은 시간 아니었냐고 물어보는데, 그렇게 말하고 싶진 않다. 단지 격렬한 결승전을 치렀을 뿐이다. 물론 총선과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우리가 완승했지만 대결과 대치를 반복하는 한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앞으로는 더 겸손해지고 낮아져서 민생을 제대로 챙기는 능력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는 게 중요하다.”

원내대표 수행에 대한 의원들의 평가가 좋다. 어떤 원칙으로 당을 이끌었나.

“상임위 간사단 회의를 정례화하고, 소통도 매주 정기적으로 했다. 당‧정‧청 관계에서도 (청와대를) 일방적으로 추종하지 않았다. 물론 공천에서도 큰 잡음이 없었다.”

원내대표 경험이 '정치인 이인영'에게는 큰 자산이 된 것 같다.

“다 잊으려 한다(웃음). 비워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고, 잘 잊어야 잘 기억할 수 있다.”

통합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었을 때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민주당도 비슷하게 위성정당을 만들었는데.

“실제로 강하게 비판한 것도 진심이고, 나중에 물러서서 위성정당을 만든 것도 또 다른 면에선 진심이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선거였다. 좀 민망하고 겸연쩍지만 꼭 이겨야 한다는 절박성이 있었다.”

86세대가 주류로 부상했다.

“작두날에 선 심정이다. 아주 잘해야 한다. 잘못하면 언제든지 자리 비우고 후배들이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 그러나 잘해 보고 싶다. 잘해서 새 시대의 가치, 협력과 연대, 이런 문제를 직접 책임지고 감당하고 돌파해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통일 열기가 많이 식은 것 같다.

“통일운동은 폭발적이기도 하지만 쉽게 차가워지기도 한다. 한 번 더 남북관계가 풀리면 완전한 평화로 가지 않겠나. 그 전까지 2~3번은 이런 크고 작은 냉온을 반복할 것이라고 본다.”

정작 국민들은 ‘먹고살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러한 때 통일운동을 말하는 것 자체가 86세대 정치인의 한계 아닌가.

“지금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겐 아직 세월이 많이 남아 있다. 또 후배 세대들이 가슴 뜨겁게 통일을 맞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준비된 통일이 아니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통일을 포기하는 평화가 맞을까. 평화가 시작되면 남북 모두 제2의 도약과 번영의 길로 갈 것이다. 그럼 세계경제 10강으로 가는 길도 열린다. 결국 통일을 뺀 평화는 없다. 적어도 미‧중 패권 질서 아래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평화는 없다.”

미‧중 패권 다툼이 통일운동을 방해할 것이란 얘기인가.

“남과 북이 한민족으로서 협력하기보다는 양강(兩强)의 원심력에 빨려갈 가능성이 크다.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이 앞으로 본격적으로 작동하면 한반도에 안정적인 평화가 올 수 있을까. 과연 남과 북이 다시 대결로 돌아가지 않고 안정적 평화로 가는, 그런 동력을 가질 수 있을까. 최소한 2개의 체제를 인정하더라도 시장에서부터의 통일은 시작해야 한다.”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자는 말인가.

“한반도 내 2개의 국가, 이걸 부정하기 어렵다. 불가피하게도 2개의 국가, 2개의 체제다. 과거에는 하나의 연방국가로 통일하자는 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정치 연방 문제는 뒤로 놓고 시장의 통일을 앞으로 가져오도록 설계해야 한다.”

 

“북도 남과의 협상에 유연해져야 한다”

현실적으로 북‧미 대화가 중단된 상태인데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기 어렵지 않나.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의 종속변수가 돼선 안 된다. 따로 가야 한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북‧미 관계는 하노이 노딜 이후 교착상태다. 적어도 다음 미국 대선 이후까지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결국 남북관계는 독립성이 있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 관계 개선의 큰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고 본다. 북한과의 관계는 상호작용하는 것이지 선후의 문제는 아니다.”

임종석 전 실장이 한미워킹그룹에서 통일부가 빠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글쎄… 비서실장을 했기에 거버넌스(관리) 중심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남북 문제를 푸는 것과 워킹그룹에서 다뤄야 할 주제는 구분돼야 한다. 한‧미 간 공조와 남북관계 진척 문제는 다르단 얘기다. 워킹그룹에서 (남북 문제와 관련해) 답을 못 내면 남북관계는 올스톱해야 하나. 이걸 넘어서야 한다. 워킹그룹에 (통일부가) 들어가고 빠지는 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형식이 내용을 왜곡한다고 할 수도 있으나, 나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남북관계는 남북관계대로 작동하는 메커니즘만 만들면 된다.”

솔직히 지금 김정은 위원장은 핵 억제력 강화를 말하며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고 있지 않나.

“북이 자꾸 대결적 자세를 취하는 건 한반도 평화에 절대 유익하지 않다. 북이 이루고자 하는 경제 발전 목표에도 장애가 된다. 북이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 북은 협상을 통해 100을 못 얻고 70~80만 얻어도 성공이라 생각해야 한다.”

 

“기본소득 도입? 일자리 문제 논의 우선돼야”

21대 국회를 앞두고 개헌도 화두다.

“지금은 개헌 얘기를 안 했으면 좋겠다. ‘포스트 코로나’ 사태가 어찌 될지 모른다. 코로나19가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모르는데 개헌부터 얘기했다가는 정답을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재난지원금에 이어 기본소득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재난지원금 문제는 개념 설계부터 잘못했다. 기본소득과는 다른 문제다. 기본소득은 지속적이지만 재난지원금은 일시적 소비 촉진만을 노린 것이다. 처음 몇몇 사람들이 기본소득과 연계해 (재난지원금 문제를) 왜곡했다. 물론 기본소득 문제는 어느 시점에선가 우리가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글쎄… 그렇다 하더라도 기본소득으로 먼저 바로 가는 게 맞을까. 일자리를 통해 그걸(기본소득 도입을) 건너뛰거나 나중으로 미룰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기본소득 도입을 정치 쟁점화하는 건 시기상조란 말인가.

“잘 모르겠다. 이미 (기본소득 도입이) 어느 정도 됐다고 볼 수도 있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이미 (청년 수당 등) 실현되고 있지 않나. 내가 단정 지어 말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분명한 건 일자리를 건너뛰고 (기본소득 도입을)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여러 어젠다를 이끌기 위해선 차기 당 대표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 당은 이미 충분히 강력하다. 역대 정당들이 못 이룬 성과를 냈다. 그만큼 더 겸손하게, 당당하게 가야 한다. 권위 있는 당의 리더십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당 메시지에 금융 및 관계 당국 등도 실력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리더십을 갖고 다음 대선을 치러야 한다.”

당 대표로 직접 나설 생각은 없나.

“안 나갈 것이다. 하겠다는 분들도 이미 많고. 난 에너지를 새로 충전해야 한다.”

윤미향 당선인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어느 시점에서 지도부가 정리할 것이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진실이 우선이다. 또 지난 30년간 수요집회와 정의기억연대의 활동이 훼손돼선 안 된다.”

왜 논란이 되고 있다고 보는가.

“정확히 모르겠다. 더군다나 검찰이 관련 자료를 다 가져가서 더욱 아쉽다. 객관적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주체는 이제 검찰밖에 없는 것 아닌가. 왜 검찰이 그랬을까?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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