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코로나 걱정에도 쿠팡 물류센터 알바 못 끊는 이들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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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대수야? 하루 벌어 살기도 힘들어”
배송 물건 줄었는데 알바 수요는 많아 ‘치열’
쿠팡 측, 방역지침 철저히 지켜…마스크 안 쓰면 제재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거대한 컨테이너 창고 안. 덜컹거리는 컨베이어 벨트 위로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화물이 쏟아졌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20대 여성은 자기 몸집보다 8배는 돼 보이는 화물을 능숙하게 들어 올린 뒤 랩으로 칭칭 감쌌다. 여성은 화물 뒤에 숨어 마스크를 잠깐 내리고는, 먼지로 얼룩진 빨간 목장갑으로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을 닦았다. 6월1일 쿠팡 덕평 물류센터 작업장 안의 모습이었다.

6월1일 오전 7시45분. 쿠팡 덕평물류센터 앞에 발열체크를 기다리는 근로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 시사저널 조문희
6월1일 오전 7시45분. 쿠팡 덕평물류센터 앞에 발열체크를 기다리는 근로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 시사저널 조문희

진입장벽 낮은 쿠팡 알바…시급도 높아 여전히 ‘인기’

쿠팡 물류센터발 코로나19 확진자가 112명 발생하면서 감염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도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향한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다른 알바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데다 시급이 높아서다. ‘코로나19 무서워 쿠팡을 끊는다’는 걱정은 기우였다. 근로자는 넘쳐났고, 택배 물량도 쏟아졌다. 6월1일 쿠팡 '덕평HUB'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45분까지 하루 알바를 하며 체험한 결과였다.

쿠팡 덕평HUB의 시급은 9310원. 최저시급보다 무려 720원 높다. 일하는 시간대에 따라 최소 9만5000원부터 13만원까지 벌 수 있다. 지원도 간단하다. 문자 한 통이면 다음 날 바로 출근할 수 있다. 별다른 면접은 없다. 통근 셔틀버스도 있기 때문에 가까운 정류장에 시간 맞춰 나가기만 하면 일을 할 수 있다. 기자는 1일 새벽 6시10분 수유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덕평으로 출발했다. 버스 안에는 30명이 있었다. 중년 남녀 4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앳된 얼굴이었다. 남자 넷, 여자 둘은 한 무리의 친구 사이였고, 연인끼리 온 사람들도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혼자였다.

오전조 출근 시간인 7시45분이 되자 버스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입구에서 발열체크를 하기 위해 긴 줄을 섰다. 안전거리는 지켜지지 않았고 다닥다닥 붙어 섰다. 기자가 앞사람과의 간격 유지를 위해 멀찍이 서자, 뒷사람은 “빨리 좀 갑시다”라며 재촉했다. 출근 전 피곤에 절은 기색은 없었다. 저마다 스트레칭을 하며 줄이 줄어들길 기다리고 있었다.

6월1일 오전 7시45분. 쿠팡 덕평물류센터 앞에 발열체크를 기다리는 근로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 시사저널 조문희
쿠팡 덕평물류센터 안에서 관리자가 열화상 카메라로 근로자들의 발열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 시사저널 조문희

코로나보다 일당이 우선…“먹고살기 힘들어”

26살 여성 김하나씨도 이날 근무가 처음이었다. 김씨는 기자가 권역별로 분류한 상품들을 파레트 위에 적재하는 업무를 맡았다. 팔목은 앙상한데 힘은 장사였다. 무거운 박스를 한 번에 네 개씩 실어 날랐다. 김씨는 공기업 취업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취업 준비가 길어지니까 부모님에게 죄송해서 돈 벌러 왔다”고 했다. “다른 알바는 공고도 없고 면접 보기도 귀찮아서 쿠팡에 왔다”고도 말했다. 코로나19 걸리는 게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눈칫밥 먹으며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고 웃으며 답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오려고 했으나, 친구가 늦게 지원하는 바람에 못 왔다고 말했다. “코로나 걱정돼서 택배 안 시키고 알바도 안 한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 같아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물이 물밀듯 들어왔다. 

기자와 함께 분류 작업을 한 50대 여성 김옥순씨는 벌써 3주째 근무 중이었다. 왼쪽 다리가 불편해 절룩이던 그는 “오래 서 있는 일이 죽을 만큼 힘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받아 주는 데가 여기밖에 없어서” 이날도 출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기도 수원의 한 음식점에서 주방 일을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터진 이후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실직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라며 말을 흐렸다. 김씨와는 잠시 정리할 화물이 없어졌을 때 박스 위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이내 멀리서 관리자가 다가오더니 “사원님, 앉으시면 안 돼요”라고 소리쳤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45분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한 쉬는 시간은 단 두 번. 그마저도 10분씩 교대로 쉬었다. 해당 시간을 제외하고는 앉을 수도,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다. 휴식시간이 되자 근로자의 절반이 사무실에 모였다. 지인끼리 온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영웅담’을 나눴다. “오늘따라 화물이 많네”라거나 “동탄 사람들은 무거운 것만 시키나봐” 따위의 소리가 들렸다. “할 만 한데?” 혹은 “다신 안 온다” 같은 대화도 나눴다.

6월1일 오전 7시45분. 쿠팡 덕평물류센터 앞에 발열체크를 기다리는 근로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 시사저널 조문희
쿠팡 덕평물류센터 안에 비치된 현수막 뒤로 근로자들이 핸드폰을 보고 있다. 한 여성이 마스크를 내리고 있자 관리자가 다가와 마스크를 써달라고 재촉했다. ⓒ 시사저널 조문희

마스크 안 쓰면 혼나고 밥 먹으며 대화해도 지적

쿠팡 측은 코로나19 방역 관리에 예민한 모습이었다. 휴식시간에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다. 마스크를 조금이라도 내리면 관리자가 “제대로 써주세요”라면서 제재했다. 작업 중간에 발열 체크를 했고, 소독약을 뿌렸다. 사무실 출입 전후로 손소독제 사용을 강제했다. 문제가 됐던 식사시간에는 테이블 당 두 명씩 교차하여 앉고 착석 명부를 적도록 했다. 식사 중 대화를 자제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다만 인원이 워낙 많다보니 방역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진 않았다. 가령 식사 대기 줄을 설 때, 쿠팡 측은 1m 간격을 유지해달라고 지시했으나 사람들은 이를 무시하고 다닥다닥 붙어 섰다. 관리자에게 “그렇게 하면 밥은 언제 먹느냐”고 비속어를 쓰며 항의하는 사원도 있었다. 또 컨베이어벨트 사이로 오래된 먼지가 한 가득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청소를 하거나 소독을 하진 않는다는 의미였다. 화물을 올리고 내릴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게 보였다.

퇴근 시간, 반납했던 핸드폰과 신분증을 돌려받았다. 목이 말라 자판기 앞에 섰지만 300원짜리 물은 품절이었다. 정수기 4대의 물도 동 났다. 비타민 음료도 재고가 없었다. 이온 음료 하나를 사들고 서울로 가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땀냄새와 발냄새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서로 한 마디 말도 없이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8시간 15분가량 일하고 받은 급여는 8만5000여원. 일당에 근육통도 딸려 왔다.

2010년 창업한 쿠팡은 처음에는 소셜커머스 업체로 분류됐지만 로켓배송을 도입하면서 종합물류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쿠팡맨 ⓒ 시사저널 고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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