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건영 얽힌 차명계좌 의혹의 실체
  • 공성윤 기자·전혁수 객원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5 15:00
  • 호수 159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래발전연구원 법인통장과 비교해 보니
입출금 내역 ‘뒤죽박죽’

5629만원 중 3807만원. 전자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1년 한국미래발전연구원(미래연) 재직 시절 운용한 직원 명의 통장에 조성된 자금이다. 후자는 이 통장에서 윤 의원을 포함한 임직원들에게 흘러 들어간 것으로 밝혀진 액수다. 과반이 넘는 67.6%를 차지한다. 여기에는 인건비나 상환금 등 법인회계 세출예산으로 처리해야 하는 항목이 포함돼 있다. 직원통장을 미래연의 차명계좌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가 된 통장의 명의자는 미래연의 전 직원 김아무개씨다. 시사저널은 김씨로부터 관련 자료를 입수해 지난 5월29일 “윤 의원이 직원통장을 별개로 운용했다”고 단독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윤 의원은 김씨 명의 통장에 대해 불법 차명계좌가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미래연 법인통장과 김씨 통장을 비교 분석한 결과, 불법성을 띤 차명계좌로 의심 가는 부분이 속속 드러났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의혹① 대금은 직원통장 입금, 비용은 법인통장 출금

시사저널이 입수한 미래연 자료와 김씨의 증언을 토대로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윤 의원은 지난 2011년 5월17일 김씨에게 현금 1100만원을 건네며 별도의 개인계좌를 개설할 것을 지시했다. 당시 윤 의원은 미래연의 기획실장을 맡고 있었고, 김씨는 회계를 담당했던 신입 직원이었다. 김씨는 현금 가방을 들고 국민은행 광흥창역 지점에 가서 계좌를 만든 뒤 오후 4시쯤 돈을 넣었다. 차명계좌가 열리게 된 배경이다. 

김씨가 입금한 1100만원은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당시 미래연 원장)이 받아왔다는 무크지(잡지 형태의 비정기 간행물) 용역 대금으로 알려졌다. 이는 김씨가 정리한 미래연 내부 회계 정리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윤 의원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5월28일 시사저널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처음 (김씨 통장에) 입금된 돈은 당시 유행하던 무크지를 미래연도 한 번 만들어보자는 여러 사람의 제안과 후원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무크지 제작 비용은 김씨 통장이 아닌 미래연 법인통장에서 빠져나갔다. 법인통장의 ‘월간수지 보고’ 자료에 따르면, 2011년 9월23일과 26일 양일간 무크지 제작과 관련해 ‘과제별 연구비’ 명목으로 336만8800원이 출금됐다. 용역 대금은 직원통장으로 받아 놓고, 용역 수행에 들어가는 돈은 법인통장에서 쓴 것이다. 즉 비용(용역 수행)은 법인계좌로, 수입(용역 대금)은 차명계좌로 처리한 셈이다.  

 

의혹② 법인통장 거쳐 직원통장으로 들어간 용역 수입

지자체가 발주한 연구 용역사업의 대금 일부가 미래연 법인통장을 거쳐 김씨 통장으로 들어간 정황도 포착됐다. 이번에는 용역 수입을 법인계좌와 차명계좌로 나눠 잡았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법인통장의 ‘현금출납부’를 보면, 지난 2011년 2월에 611만8400원이 ‘성북구청 용역(수입)’ 명목으로 입금된 사실이 확인된다. 2월9일 229만4400원, 2월10일 382만4000원 등 두 번에 걸쳐 들어왔다. 

이후 2011년 5월14일 법인통장에 ‘강XX 이체오류’ 명목으로 478만원이 입금됐다. ‘강XX’는 당시 미래연의 직원이었던 강아무개씨다. 이에 대해 김씨는 “이체오류로 표시됐지만 실제로는 성북구청으로부터 들어온 용역 대금”이라고 주장했다. 김씨가 미래연 내부에 보고했다는 법인통장 월계표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478만원은 이틀 뒤인 5월16일 ‘강XX 이체오류 환불’ 명목으로 다시 빠져나갔다. 이후 똑같은 액수의 돈이 5월24일 강씨 이름으로 김씨 통장에 들어왔다. 즉 법인통장으로 가야 할 용역 대금 총액 1089만8400원 중 478만원이 이체오류 명목으로 둔갑해 김씨 통장에 꽂혔다는 것이다. 그사이 용역사업 수행비는 또 법인통장에서 사용됐다. 구체적으로 설문지 배송 비용, 여론조사 비용, 실무회의 비용 등으로 2011년 2월부터 6개월간 148만1700원이 쓰였다. 

당시 용역사업을 발주했다는 성북구청 측은 사업 내용에 대해 확인이 안 된다고 밝혔다. 구청 재무과 관계자는 “2011년 미래연과 맺은 용역계약 서류가 없고, 거래 내역도 남아 있지 않다”며 “서류보존기한 5년이 지나 파기했을 가능성이 있으니 정보공개를 청구하라”고 했다. 2011년 성북구청장은 김영배 민주당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노무현 정부 때 윤 의원과 함께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이력이 있다.

2011년 미래연 법인통장 월간수지 보고서 중 5월 월계표 일부 ⓒ미래연 전 직원 김씨 제공
2011년 미래연 법인통장 월간수지 보고서 중 5월 월계표 일부 ⓒ미래연 전 직원 김씨 제공

의혹③ 윤건영 인건비, 법인·직원통장 양쪽에서 지출

미래연이 써야 할 비용을 김씨 통장에서 인출한 기록도 확인됐다. 윤 의원이 재직 기간 동안 받아야 할 급여가 김씨 통장에서 나간 것이다. 또 윤 의원이 퇴직한 뒤엔 미지급된 급여가 법인통장에서 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명목의 비용(급여)을 법인계좌와 차명계좌로 나눠 처리한 셈이 된다. 

김씨 통장의 입출금 내역에는 2011년 6~12월 윤 의원에게 6건에 걸쳐 총 2289만원이 이체된 기록이 나온다. 해당 기간은 윤 의원의 미래연 재직 기간(2011년 2월~2012년 1월)과 겹친다. 또 김씨가 미래연에 보고했다는 ‘실장님 차입금’ 파일에 따르면, 이체 내역 6건 중 1건(10월28일 80만원)을 뺀 나머지 2209만원의 지출 명목은 ‘윤건영 차입금 상환’이었다. 

이후 법인통장에서 같은 명목으로 2012년 1월12일 500만원, 3월12일 431만원이 윤 의원에게 이체됐다고 한다. 윤 의원이 미래연에서 나올 무렵이다. 모두 합하면 차입금 상환 명목으로 총 3140만원이 윤 의원에게 지급됐다. 김씨는 이에 대해 “실제론 미래연이 윤 의원에게 주기로 한 급여”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실장님 차입금’ 파일을 보면, 2011년 3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0일에 윤 의원 앞으로 300만원이 기록돼 있다. 11월10일과 12월10일은 250만원씩이다. 모두 ‘윤건영 인건비 미지급’ 명목으로 잡힌 돈이다. 또 7월21일은 40만원, 9월20일은 200만원이 ‘윤건영 차입금’ 명목으로 적혀 있다. 이들의 총액은 3140만원. 차입금 상환 명목으로 모인 액수와 맞아떨어진다. 즉 윤 의원이 차입금(240만원)과 월급(250만~300만원)을 책정해 뒀다가, 법인계좌와 차명계좌에서 이를 모두 회수해 갔다는 뜻이 된다. 

윤 의원은 양쪽 계좌에서 급여 조로 돈을 받아갔음을 시인했다. 단 “차입금 및 인건비를 몇 번에 걸쳐 나눠 받았던 것”이라며 “(김씨 통장은) 불법적인 용도나 목적의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6월3일 추가 입장문을 통해 “퇴직한 이후의 일은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윤 의원이 서류상 미래연의 유급직원이 아니었던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미래연의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로 등록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시사저널이 2011년 6월자 미래연 건강보험 산출내역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다. 윤 의원은 “초기 미래연 상황이 어려워 그랬던 것으로 짐작한다”고 해명했다.

윤건영 의원의 지시로 2011년 5월 개설했다는 김아무개씨 명의의 통장 거래내역. 2011년 5월27일부터 그해 12월15일까지 윤건영 의원과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당시 미래연 원장), 김씨 등 3명에게 총 3807만원이 김씨 통장에서 지급됐다.
윤건영 의원의 지시로 2011년 5월 개설했다는 김아무개씨 명의의 통장 거래내역. 2011년 5월27일부터 그해 12월15일까지 윤건영 의원과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당시 미래연 원장), 김씨 등 3명에게 총 3807만원이 김씨 통장에서 지급됐다.

의혹④ 수상한 직원통장 재원

한편 차명계좌의 명의자인 김씨의 급여도 해당 계좌에서 지급됐다. 또 그 돈의 출처는 국회사무처로 밝혀졌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국회의원 재직 시절 의원실에서 김씨를 인턴으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시기는 2011년 8월부터 12월까지다. 그런데 김씨는 “2011년 12월15일까지 미래연에서 근무했고 백원우 의원실에는 가 본 적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윤 의원의 제안으로 백원우 의원실에 인턴 등록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인턴 등록 사실은 국회사무처가 발급한 경력증명서로 입증된다. 국회사무처는 인턴 계약기간 동안 월급 109만원을 김씨 통장(미래연 차명계좌)에 입금했다. 김씨는 여기에 차명계좌 자금 49만원을 더한 158만원을 자신의 다른 통장으로 보냈다. 

이는 김씨가 기존에 미래연으로부터 받던 월급 액수와 같다. 결국 국회사무처가 무노동 인턴 급여로 김씨 월급 상당부분을 대준 셈이다. 윤 의원은 “10년 전 일이라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먼저 인턴 채용을 부탁한 기억은 전혀 없다”며 “다만 미래연의 설립 목적 및 백원우 의원실의 필요성 등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회계사)는 “전형적인 차명계좌 운용 사례”라며 “회계업계 은어로 B통장 혹은 비밀통장이라고 하는데, 별도로 차명계좌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박경수 법무법인 광명 변호사는 “통장에서 오간 돈의 흐름과 명목을 봤을 때 미래연의 차명계좌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분석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