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는 어쩌다 ‘법死위’가 되었나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5 11:00
  • 호수 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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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기한 내 합의 안 되면 자동으로 본회의 회부토록 해야” 의견도

국회에서 여야 간 고성이 가장 많이 오가는 곳. 그래서 18개 상임위원회 중 가장 많은 파행과 정회가 일어나는 곳. 단연 법제사법위원회다. 법사위는 각 상임위에서 논의해 통과된 모든 법안들이 본회의에 오르기 직전 거치는 마지막 길목이다. 그만큼 입법 과정 가운데 여야 간 가장 치열하게 정쟁이 벌어지는 ‘최전선’이다. 각 당이 원 구성 때마다 법사위에 법조 출신이 아님에도 유독 ‘전투력’ 강한 의원들을 포진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법사위원장 쟁탈전인 듯 보였던 여야 간 ‘법사위 전쟁’은 법사위의 주요 권한인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둘러싼 논쟁으로 번져 더욱 첨예해졌다. 법사위로 넘어온 법안이 기존 법률 또는 헌법과 부딪히는 부분은 없는지, 용어 등의 오류는 없는지 살피는 체계·자구 심사권은 지난 수년간 여야가 번갈아 폐지를 언급해 온 ‘쟁점 권한’이다. 이번엔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 ‘일하는 국회 추진단’이 폐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그 실현 가능성도 높아진 상태다.

20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에 넘어왔다가 임기 만료로 최종 폐기된 법안은 총 91건에 이른다. 이 숫자에 대한 여야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연합뉴스
20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에 넘어왔다가 임기 만료로 최종 폐기된 법안은 총 91건에 이른다. 이 숫자에 대한 여야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연합뉴스

20대 법사위서 법안 91건 폐기…해석 제각각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의 ‘사’자는 죽을 사(死)자다. 법이 죽는 곳이다.” 민주당은 20대 국회가 일하지 않은 국회가 된 이유 중 하나로 법사위가 심사 권한을 쥐고 각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들을 뭉갰기 때문으로 본다. 그 근거가 되는 수치는 역대 최저인 20대 국회 법안 처리율(36%)과 법사위에 막혀 끝내 폐기된 법안의 수다. 국회 사무처에 확인한 결과, 20대 국회에서 각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 3217건 가운데 91건이 길게는 3년 이상 법사위 단계에 계류돼 있다가 폐기됐다. 자세히 보면 이들 중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버려진 법안이 19개, 전체회의에 상정됐지만 법의 체계·자구를 심사하는 법사위 내 제2소위로까지 넘어가지 못한 법안은 24개다. 2소위로 넘어왔지만 끝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법안도 48개에 이른다.

이 수치에 대한 여야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민주당은 법사위에서 폐기된 91건의 법안 외에 최종적으로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 중에도 법사위에서 시간이 지나치게 지체된 경우가 많았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2016년 6월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해 2018년 3월 법사위로 넘어간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특별법’ 개정안이 꼽힌다. 이는 세월호 피해자 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으로, 여야 합의로 소관 상임위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이후 법사위 논의는 2년 넘게 진행되지 않았다.

지난 5월20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앞두고 법사위가 계류돼 있던 법안 100여 건을 밀린 숙제하듯 한 번에 본회의로 올린 것 또한 진작 처리할 수 있던 법안을 불필요하게 잡아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낳았다. 법사위 내 체계·자구 심사 기능이 사실 대부분의 법안 심사에서 극히 형식적 수준으로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19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 출신인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법사위가 그간 심사권을 빙자해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폐해를 자주 저질러 왔다”며 “권리이기에 앞서 의무인 자신들의 체계·자구 심사 역할을 다하지 않고, 가결도 부결도 않으며 뭉개고 외면하는 태도를 보인 데 대한 개선이 분명 필요할 때”라고 밝혔다.

 

야당 “법안 더 쉽게 통과시키려는 여당 꼼수”

반면에 야당 측은 민주당의 주장에 대해 “미흡했던 20대 국회 책임을 ‘법사위’에 돌리며 권한을 없애려는 것은 일종의 ‘속임수’”라고 지적한다. 바로 이전 법사위원장인 여상규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여당의 주장은 법사위 힘을 빼서 본인들이 원하는 법을 더 편하게 통과시키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그는 “20대 국회 법안 처리가 결코 미흡하지 않았다. 법안 처리율이 낮았던 건 의원들이 마구잡이로 법안들을 많이 발의했기 때문이지, 처리 ‘건수’로 보면 이전 국회보다 더 많았다”며 “낮은 처리율만 강조하며 일하는 국회를 내세우는 건 여당이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활용하는 걸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검찰 출신 김웅 통합당 의원 역시 “법을 많이 통과시키는 게 일을 많이 하는 거라는 건 낙후된 발상”이라며 “법안을 한 번 더 걸러주는 ‘상원’이 있는 나라들은 다 일하지 않는 시스템을 가진 것이라고 봐야 하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각 상임위는 이익단체의 로비를 직접적으로 받는 곳이다. 따라서 일단 상임위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면 법사위에서 어느 정도 막아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게 우리 국회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은 외면하고 이상론만 들고 권한 폐지를 주장하는 건 국민을 속이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여야 모두 법안의 체계·자구 심사 과정의 필요성엔 공감한다. 특정 부처와 이해관계가 있는 각 소관 상임위에서 해당 기능을 소화하기엔 분명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단 이를 법사위에서 빼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주당에선 이 역할을 국회의장 산하 기구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야당의 반발은 크다. 여상규 전 의원은 “의장 권한만 더욱 비대하게 만드는 일”이라면서 “설령 별도 기구를 만든다 해도 그 구성원 중 여야 의원이 포함된다면 지금과 무엇이 달라지겠나”라고 반문했다. 해당 기구를 전문위원 위주로 채우겠다는 민주당 의견에 대해 김웅 의원은 “전문위원들이 국민의 대표라고 볼 수 있나. 국회의원이 해야 정치적 정당성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본질적인 문제는 해당 권한의 주체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권한 자체가 지닌 미비성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상민 의원은 “해당 권한이 어디에 있든, 법안 처리에 대한 시한을 두고 그 안에 처리토록 의무 지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당 기한 내 논의를 맺지 않으면 자동으로 본회의에 회부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여야가 심사 권한의 주체를 두고 정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법사위에 이 기능을 둔 채 이와 같은 제어 장치만 마련해 둬도 이전보다 훨씬 효율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웅 의원은 “지금까진 법안이 법안소위에 가면 위원들의 만장일치가 이뤄져야만 통과되는 시스템이었는데, 만장일치가 안 됐을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다시 소관 상임위로 돌려보내 그곳에서 대신 표결을 하게 하는 등의 장치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꾸준히 법사위의 심사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해 온 참여연대는 “별도의 조직에 법안 체계·자구 심사권을 맡기기에 앞서 각 소관 상임위에서 해당 법안의 정합성과 다른 법과의 상충 지점을 최대한으로 검토하는 게 가장 당연하고 기본적인 일인데 그동안 이 부분에 대한 강조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법도 지키지 않고 원 구성을 늦추면서 심사권을 18개 상임위원장 쟁탈전을 위한 하나의 카드로 활용하는 모습은 국회 개원 시점에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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