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반기 든 국방장관…‘항명파동’으로 번진 시위
  • 이혜영 객원기자 (applekroop@naver.com)
  • 승인 2020.06.0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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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퍼 장관 “폭동진압법 발동 지지하지 않는다” 트럼프에 대립각
생중계 된 브리핑에서 ‘공개 항명’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 연합뉴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 연합뉴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시위 진압에 군을 동원하겠다고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반기를 들었다. 대표적인 '예스맨'으로 분류되던 국방장관이 '공개 항명' 행보를 보이면서 백악관은 더 큰 혼란에 빠져 들었다.

에스퍼 장관은 3일(현지 시각) 브리핑을 자청해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법 집행에 병력을 동원하는 선택지는 마지막 수단으로만, 가장 시급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만 사용돼야 한다"면서 "우리는 지금 그런 상황에 있지 않다. 나는 (군 동원을 위한) 폭동진압법 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사들이 주방위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지 않으면 군을 동원해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이날 국가안보 수장인 국방장관이 TV로 생중계된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지시를 정면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에스퍼 장관은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에서 '충성파' 라인으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미국 사회와 정치권은 이번 발언에 대한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에스퍼 장관은 브리핑에서 시위의 단초가 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대해 "끔찍한 범죄다. 인종주의는 미국에 실재하고 우리는 이를 인정하고 대응하고 뿌리뽑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며 공권력의 과잉진압을 인정했다. 

또 최근 시위현장을 '전장(戰場)'으로 표현했던 데 대해서도 "다른 표현을 썼어야 했다"고 한발 물러섰다. 워싱턴DC의 시위현장에 의무수송용 헬기가 저공비행해 시위대 해산을 시도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교회 방문 이벤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에스퍼 장관은 자신이 교회 방문에 동행하게 될 것은 알았지만, 사진촬영은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평화시위대를 해산시키고 백악관 앞 교회를 방문, 에스퍼 장관 등 핵심 참모들과 카메라 앞에 섰다가 비난을 샀다.

에스퍼 장관은 군이 정치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나는 국방부가 정치에서 떨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대선이 가까워지고 있어 매우 힘들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스퍼 장관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CNN방송이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사석에서 에스퍼 장관에 대한 답답함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핵심 참모들도 에스퍼 장관이 장악력이 약하고, 대통령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불만을 가진 상황이었다고 CNN은 전했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필요하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폭동진압법을 사용할 것"이라며 에스퍼 장관의 발언에 선을 그었다. 그는 "그러나 지금 대통령은 주방위군에 기대고 있고 워싱턴DC와 (사망 사건이 발생한) 미네소타에서도 잘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에스퍼 장관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는 즉답하지 않은 채 "현재까지 에스퍼 장관은 여전히 장관"이라고만 답했다.

미 주요 언론은 이날 브리핑으로 에스퍼 장관의 자리가 더욱 위태롭게 됐다며 경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에선 미 전역에 시위가 이어지고 있고, 대선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국방장관을 경질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에스퍼 장관은 당초 미 각지에서 워싱턴DC 인근에 집결한 병력 중 200명을 노스캐롤라이나로 복귀시키라고 지시했으나, 이날 백악관 회의에 다녀온 후 이를 번복했다고 AP통신이 보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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