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영웅본색》 좋아했던 아버지가 ‘영웅’으로 이름 지어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7 10:00
  • 호수 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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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트롯》 7인방의 인생역전 스토리

임영웅은 1991년 6월16일 경기도 포천시에서 태어났다. 현재 포천시 홍보대사인데, 《미스터트롯》 우승 당시 포천엔 ‘시민의 열정이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포천의 아들 임영웅!’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이동막걸리, 돼지갈비와 더불어 포천의 상징이 됐다.

주윤발의 홍콩영화 《영웅본색》을 좋아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구하는 영웅, 우리의 영웅’이라는 의미를 담아 아들 이름을 영웅으로 지었다고 한다. 임영웅에게 《영웅본색》 스타일의 트렌치코트가 잘 어울리는 점이 공교롭다. 이름이 영웅이라서 팬들이 ‘임히어로’라고 부른다. 임영웅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도 ‘im_hero____’다. 젊은 신인임에도 특유의 의젓하고 당당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도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마인드 컨트롤 하면서 자라왔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TV조선 제공
ⓒTV조선 제공

5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미스터트롯》 결승전 당일이 아버지 기일이었다. 어머니가 머리미용을 하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속에서도 임영웅은 “엄마, 내가 뭐 도와줄까?”라고 어머니에게 인사하며 힘이 돼 드리려고 애썼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넘어져서 얼굴을 찧어 크게 다쳤다. 형편 때문에 제대로 된 수술을 받지 못했다 . 흉터가 남았는데 “엄마, 내 얼굴엔 나이키가 있어. 이거 보조개 같지 않아?”라며 어머니를 위로했다고 한다. 지금도 얼굴 표정을 지을 때 좌우대칭이 잘 안돼 흉터 부분에 힘을 더 줘야만 한다. 《미스터트롯》 이후 흉터 수술을 해 주겠다는 성형외과의 연락이 쏟아졌는데, “팬들이 저의 흉터마저도 좋아해 주셔서 수술은 당분간 하지 않을 것 같다”고 임영웅은 말했다.

어머니 생일 때 현금 1억원 선물로 드린 인간적 hero

어려운 형편에도 중학교 3년 내내 반장을 맡을 만큼 리더십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축구선수였고 중학교 땐 태권도를 했다. 30세 전에 메시가 뛰는 FC바르셀로나 경기를 직접 보는 게 소원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 따라 음악학원에 갔다가 친구는 떨어지고 그만 붙었다. 경복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진학해 발라드 가수를 꿈꿨다. 하지만 발라드로 대회에 나갔을 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포천의 한 가요제에서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불러 최우수상을 받았다. KBS 《전국노래자랑》에서도 트로트곡 《일소일소 일노일노》로 최우수상을 받으며 트로트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무명 가수 시절은 생활고의 연속이었다. 편의점, 카페, 식당, 가구공장, 군고구마 장수 등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 2017년 KBS 《아침마당》 출연으로 얼굴을 조금이나마 알리기 시작했고, 2020년 《미스터트롯》으로 일약 트로트 히어로가 됐다. 실력을 타고난 것 같지만 지독한 연습의 결과라고 한다. 하루 10시간 이상 최적의 소리가 몸에 익을 때까지 연습한 것이 지금 《사랑의 콜센타》에서 돌발 신청곡도 안정되게 소화하는 힘이 됐다.

백골부대 군복무 당시 어머니 면회 때 그렇게 눈물이 났단다. 자신을 혼자 키워오신 세월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데뷔할 때 달력에 ‘2020년 엄마 생일 때 현금 1억원을 꼭 드리겠다’고 적었다. 올해 거짓말처럼 《미스터트롯》 진 상금 1억원을 받았고, 세금으로 빠진 부분까지 더해 총 1억원을 정말 드렸다. 《미스터트롯》 첫 경연곡 《바램》이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선곡한 것이었고, 마지막 곡 《배신자》는 아버지의 애창곡이었다. 이런 스토리들이 임영웅의 인간적 매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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